실패하는 프레젠테이션이 아닌 마무리가 찝찝한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여기에 있다. 그것은 프레젠테이션에 있는 모든 슬라이드를 미리 출력하여(그것이 풀컬러이든 흑백이든) 유인물로 만든 후, 청중에게 배포하는것이다.





▶ 좀비 프레젠테이션

당신은 이렇게 할 경우 무슨 현상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다.
발표자가 겨우 자기소개나 3번째 슬라이드 쯤을 말하고 있을 때, 청중들 중 절반 이상은 이번 프레젠테이션의 내용 전체를 파악하고, 뒤에 무슨 슬라이드가 나올지, 나중에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를 예측할 수 있게 되어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지루하고 거칠고 하품만 나오는 프레젠테이션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좀비 프레젠테이션'이라고 부른다.

나누어준 유인물의 분량이 아무리 많다고 할지라도, 발표자의 이야기 속도보다는 청중의 눈이 훨씬 빠르다. 청중이 읽는 속도는 발표자가 말하는 속도보다 못해도 3배 이상은 빠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발표자가 프레젠테이션을 끝마칠 때 쯤이면, 청중은 유인물을 처음부터 끝까지 3번 이상 반복해서 읽을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당신이 프레젠테이션을 성공시키고 싶다거나, 적어도 실패하지 않게 만들고 싶다면, 유인물은 아주 나쁜 전략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말 무섭고 소름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신이 무언가를 말하기도 전에 수십명 이상의 청중이 당신의 생각을 알고있고, 당신이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더 심각한 문제는 청중들 중 그 누구도 당신에게 눈빛을 주지 않고, 오로지 책상에 머리를 박고 유인물에만 집중한다는 사실이다. 이때 당신이 들을 수 있는것은 수십명의 숨소리와 유인물 종이가 휘리릭 넘어가는 소리 정도 뿐이다. 계절이 겨울이고 감기 환자가 있다면 기침소리도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 실패하는 프레젠테이션이라면 이런 소리가 무조건 들린다.

성공적인 프레젠테이션 혹은 지극히 정상적인 프레젠테이션이라면 들리는 소리 자체부터 차이가난다. 청중들은 '음~', '아하~'등을 연발하고, 가끔 '와우'라든지 '오~'같은 감탄사가 나오기도 하고, 고개를 연방 끄덕거리고, 노트에다가 무언가를 메모하면서 나는 샤삭거리는 펜 소리가 강의장 전체를 거쳐 무대에까지 들려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당신이 발표자일 때 슬라이드 출력물 따위만 배포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하루에도 수백, 수천번 이상의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되고 끝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프레젠테이션에서 유인물을 만들어 배포하기 위해 종이, 잉크, 전기, 토너, 시간, 에너지를 낭비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프린터가 고장나서 A/S비용이 소비되거나 유인물을 실컷 출력해놨었는데 알고봤더니 오타가 발견되어 재출력을 하면서 중요한 약속을 취소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실패하는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싶지 않다면, 유인물 배포는 당장에 중단해야한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한것처럼, 유인물을 나누어주는 순간 '좀비 프레젠테이션'이 되고 만다.


유인물이 오히려 기억에 남지 않는다.

내가 지금껏 청중으로 참여했던 특강, 강연, 교육, 아카데미, 발표 등에서 유인물을 나누어준 프레젠테이션은 거의 모두가 지루했다. 발표자가 무슨말을 했는지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발표자가 누구인지, 발표의 내용과 메시지가 무엇이었는지도 도무지 기억해낼 수 없다. 그야말로 시간만 증발하고 아무것도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다. 심지어 발표자가 누구였는지, 장소는 어디였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다. 나는 분명히 프레젠테이션에 참가했었다. 청중으로 열심히 들을려고 노력했다. 하품도 몇 번 했고, 커피 생각이 간절한 적도 있었지만 어쨋거나 최대한의 노력으로 프레젠테이션에 집중하려고 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노력했어도, 슬라이드가 출력된 유인물에만 관심이 자꾸 가는 바람에, 결국에는 듣지 않은것과 비슷하게 되어버렸다. 지금 남아 있는것이라곤 고작해봐야 책상위에 준비되어 있던 유인물을 이리저리 살피면서 가끔 괜찮아 보이는 내용들을 살짝 메모했던 기억뿐이다. 그리고 유인물은 프레젠테이션이 끝난 후, 두 번 다시 살펴보지 않았다.

유인물이나 슬라이드를 그대로 출력하여 책자 형태로 만든 자료가 있는 프레젠테이션들은 모두가 이런 기억뿐이다. 나는 최대한의 노력으로 모든 정보를 머릿속에 집어넣고자 했으나, 두뇌를 비롯한 나의 감정과 심리가 그것을 적극적으로 방어해버린것이다. 결국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으며, 나는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는 상태에 빠졌다.

당신이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나누어준 유인물은 대체로 두 번 이상 청중들의 눈길을 받지 못한다. 프레젠테이션 할 때만 살짝 관심을 가질 뿐, 그것이 끝나면 곧장 세절기로 직행하거나 책상 서랍속이나 책장에서 몇 년동안 먼지만 쌓여갈 뿐이다. 그리고 청중은 시간이 지나면 당신의 프레젠테이션에서 도대체 무엇을 했는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대부분이 이런식이다.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것 같은 유인물 배포를 왜 시간과 비용을 들여 하려하는가?
차라리 그시간에 옷 매무새를 점검하고 어떤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이야기중에 빠진 부분은 없는지, 청중들과 어떻게 함께 호흡할것인지를 고민해보는게 낫지 않겠는가?

당신이 프레젠테이션을 하려고 한다면, 당신은 발표자다. 절대로 학교 선생이나 교수, 교주, 가수, 책 판매원, 유인물 읽기 권유자, 얼마나 깨끗하게 슬라이드를 출력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서바이벌 참가자가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행동하면 안된다. 당신이 지금 하려고하는것은 메시지 전달 및 설득과 관련된 사항이며, 절대로 어떤 지식을 주입시키거나 청중들로 하여금 눈 앞에 있는 텍스트를 읽게하는것이 목적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정말로, 진짜 마지노선에서, 아무리 양보하고 양보하더라도 꼭 유인물을 만들어서 나누어줘야만 직성이 풀린다면, 프레젠테이션이 모두 끝난 뒤에 나눠줘라. 그나마 이 방법이 제일 낫다. 이것이 무언가 예의에 어긋난다는 생각이 드는가? 절대로 그렇지않다. 사전에 양해를 구할 수도 있다. 인쇄물을 준비해놓고 나누어주지 않은 상태에서 프레젠테이션이 끝나면 곧바로 나누어드릴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면 된다. 프레젠테이션에서 발표자의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법칙처럼 작용하기 때문이다. 즉, 어떤 경우라도 발표자는 그 무대를 리드할 수 있고, 컨트롤 할 수 있다.

당신은 사람이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사람들은 읽으면서 동시에 들을 순 있지만, 읽고 듣는것 모두를 흡수할 순 없다.
즉, 유인물을 나누어주는 순간 당신은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말을 해도 그만,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똑같은 결과가 나오는 상황을 맞이한다. 청중들 대부분이 유인물에 관심을 보이고, 마치 사탕을 갈구하는 아이처럼 유인물 종이를 넘기기에 바쁜 상황에서 당신이 말하는 이야기는 청중들의 귓전만을 스칠 뿐이다.

실패하는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싶다면 모든 슬라이드가 출력된 유인물을 청중에게 배포하면 된다. 만약 당신의 도전정신이 탁월해서 유인물을 준비하지 않고 프레젠테이션을 해본다면, 당신은 청중들의 관심과 경청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게 될 것이며, 당신이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얻고자 하는것이 무엇이든 훨씬 빨리, 훨씬 많이 얻게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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