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이방인 - 알베르 카뮈



상당히 이상한 책이다.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되는 이 책은 주인공 뫼르소라는 인물의 죽음으로 끝난다. 죽음으로 시작해서 죽음으로 끝나는 책인 것이다. 게다가 뫼르소는 정상적이라 할 수 없는 정신상태와 공황에 빠져있는 듯한 생각들을 통해 행동하는데, 도무지 짐작하거나 예측할 수 없다. 그로인해 책의 제목처럼 독자가 마치 '이방인'이 되어버린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주인공과 독자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에, 나는 주인공을 이해할 수 없고, 주인공 역시 자신을 이해할 수 없는 나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리라.



이 책의 작가는 알베르 카뮈. 프랑스 문단에 이방인처럼 나타난 알베르 카뮈는 샤르트르, 프란츠 카프카 등으로 알려진 '실존주의'문학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실존주의란 단어 그대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본질이나 현상, 심지어 신보다도 자신의 존재 이유가 먼저 있다는 개념이다. 즉, 세상이 존재하기 때문에 내가 있다기 보다는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세상이 있다는 시선, 말하자면 모든 것을 '나'로부터 출발시키는 생각이다. 이것은 그 어떤 마취제보다도 독하다.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노골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마주해야하기 때문이다. 세계 1차대전과 2차대전 등 연이은 세계전쟁으로 범지구적으로 사람들은 공황상태에 빠지게되었다. 대한민국 역시 6.25 전쟁을 겪었는데, 전쟁이 끝난 후(실제론 휴전이었고 이것은 여전히 유효하다)엄청난 허무함과 공황을 느꼈을 것이다. 종교적인 믿음은 신화적으로 재탄생한 이야기들로 현실을 마취했는데, 전쟁에 있어서 만큼은 그들이 믿는 '신' 역시 손길이 닿지 않았다. 전쟁 후 바라본 시선에선 모든게 파괴되었고, 모든게 불타 없어졌으며, 모든게 바뀌어 있었다.

알베르 카뮈는 <이방인>이라는 책을 통해 공황상태에서 이어진 주인공의 모습을 아주 '실존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 뫼르소는 별다른 관심사도 없고, 꿈도 미래도 바라지 않는 인물이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은 커녕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는다. 실존적으로 인간은 누구나 죽기 때문인데, 여전히 살아있는 뫼르소는 자기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는 느낄 수 있다. 장례식에서 느끼는거라곤 고작해봐야 '약간 피곤하다'정도다.

이러한 현상이야말로 <이방인>의 작품을 전세계 베스트셀러로 올려놓은 기반이 된다.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상 자체가 모순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부조리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실존주의'에서는 '나'를 세계와 연결시켜 주변을 이해해야하는데, 세계가 매우 부조리하고 이해하지 못할 이유가 너무나도 많은 까닭에 연결 자체가 안되는 상황이 나타난 것이다! 세계와 동떨어진 나. 진정한 의미의 <이방인>인 것이다.

상당히 어두운 작품이다. 죽음으로 시작해서 죽음으로 끝나고, 소설에 전반적으로 허무함과 공허함이 밑바탕되어 있어서 암울한 기분까지든다. 이상할 정도로 모든 것에 '무관심'한 주인공은 일종의 정신 파괴상태에서 살아가는 듯 보인다. 


실존주의, 아니 그 이전에 <이방인>이라는 이 작품은 독자로하여금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만든다는 점에서 아주 뛰어난 문학작품이다. 남들의 죽음을 통해 자기 자신의 삶을 생각해봐야 한다니. 이것 또한 부조리라면 부조리일까.

만약 아무런 빛이 없는 칠흙같은 방 안에서 누군가와 싸움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행동해야할까? 우선은 상대가 움직이는지 아닌지를 '봐'야하는데 빛이 없기 때문에 '볼 수'가 없다. 따라서 시각보다는 청각 등에 집중해야 하는데, 청각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눈을 감아야한다. 눈을 감아야 더 잘 볼 수 있다는 모순. 이런 현상은 고도화된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세계와 멀어져야 자기 자신과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범람하는 자기계발 서적이나 서양식 자기계발담론도 어떤 의미에서는 '실존주의'를 기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면, <이방인>은 최상위에 위치해있는 자기계발 서적이 될 것이다. 중요한건 어떻게 죽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 것일테니까.

뫼르소는 사형선고 직전에 살아있다는 것에 대해 느끼게된다. 그전까지는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조차 깨닫지 못할만큼 그렇게 살았던 것이다. 우발적으로 아랍인을 총으로 살해한 뫼르소는 사형 선고를 받게되는데, 진정으로 인정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사형을 당하는 것은 자기가 원해서가 아니라, 단지 다른 사람에 의해서(아랍인, 판사, 사제, 다른 사람들, 심지어 신까지)만들어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도 누군가를 살인했다는 점에서 똑같은 모순상황에 빠지기도 하고, 특히나 죽음직전에 느끼는 본능적인 욕구인 '살고싶다'를 느끼기도한다. 하지만 두려움을 이겨내고 자신의 죽음과 정면으로 대면한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아간다. 뫼르소가 자기 자신을 이해했을 때 <이방인>이 되었던 것처럼, 어쩌면 우리도 이 사회라는 세계안에서 <이방인>일지 모른다. 어쩌면 <이방인>이 되지 않기위해 사회속에 파묻혀 살아가고 자기 자신과 노골적으로 대면하길 거부하고 있는지도 모를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테고 또 지금은 여전히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차라리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임무이지 않을까.

부조리. 아이러니. 모순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알베르 카뮈나 21세기 현대인들이나 똑같다. 그래서 우리는 궁극적으로 <이방인>이다.


알베르 카뮈

작가소개

1913년 11월 7일 알제리 동부 몽도비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반 시절 장 그르니에를 만나 큰 영향을 받고 알제 대학 철학과에 진학하지만 궁핍한 환경에서 얻은 결핵이 재발해 학업을 중단했다. 1938년 좌파 성향의 일간지 <알제 레퓌블리캥>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레지스탕스 기관지 <콩바>의 편집국장, 주간지 <렉스프레스>의 논설위원을 지냈다. 『페스트』 『전락』 『적지와 왕국』 등 소설과 산문, 희곡을 꾸준히 발표했으며 1957년에는 43세의 젊은 나이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로부터 3년이 안 된 1960년 1월 4일, 친구 미셸 갈리마르가 모는 차를 타고 루르마랭에서 파리로 가던 중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베스트트랜스

역자소개

세계 여러 곳에 숨겨진 작품을 발굴·기획하고 번역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번역뿐만 아니라 창작 집필을 하며 우리 콘텐츠를 국외에 알리는 일에 열정을 쏟고 있다. 베스트트랜스는 기존의 번역가가 번역한 작품을 편집자가 편집하는 방식을 탈피한 새로운 번역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번역가와 편집자가 한 팀을 이뤄 잘 읽히는 작품으로 다듬기 위한 번역과 책임편집이 동시에 이뤄지는 방식이다. 번역 단계에서는 직역직해가 아닌 원문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우리말의 장점을 살려 좀 더 매끄럽고 유려한 문장으로 손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레 미제라블 명문·명대사》는 편집 단계에서 꼽은 주요 명문과 어휘를 보기 쉽게 엮은 책이다. 《레 미제라블》도 읽고, 어학서로도 활용할 수 있게 만든 참신한 어학서이다.


책 밑줄긋기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인간은 모두가 사형수다.


지금 죽든 20년 후에 죽든, 어쨌든 죽는 것은 항상 나였다. 다만, 추론을 하면서 그 대목에 이르렀을 때 약간 곤란했던 것은, 앞으로 살 수 있을 20년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내 안에 어마어마한 흥분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나로서는, 그 20년을 살고 어쨌든 다시 이런 상황에 이르렀다 할 때, 그때 내 생각은 과연 어떠할 것인지를 상상하며 흥분을 억누르는 방법밖에 없었다. 사람이 죽는 순간을 놓고 보면, 언제 어떻게 죽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어느 날이었다. 간수가 내게 말을 걸더니 내가 감옥에 들어온 지 다섯 달이 되었다고 했다. 나는 그의 말을 믿기는 했지만 이해할 수는 없었다. 내게는 모든 게 언제나 독방 안에서 펼쳐지는 똑같은 하루, 한결같이 수행해야 하는 똑같은 임무였으니 말이다.


엄마의 장례식 날 간호사가 했던 얘기가 비로소 머릿 속에 떠올랐다. 그렇다. 출구는 없었다. 그리고 감옥에서의 저녁나절이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나는 꼼짝하지 않는 아랍인의 몸에 대고 또다시 네 발을 더 쏘았다. 총알들은 바깥으로 흔적을 드러내는 대신 몸뚱이 깊숙이 박혀 들었다. 그 네 발의 총성이 내게는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와도 같았다.




이방인 - 전2권 (한글판 + 영문판) - 10점
알베르 카뮈 지음, 베스트트랜스 옮김/더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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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콘텐츠 크리에이터. 작가. 강사. 파워블로거 me@namsieon.com, skatldj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