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편지

간 밤에 별 일은 없었는가? 잠이라는건 정말 중요한 것이야. 자네와 나, 우리 모두 나중에는 영원한 안식을 얻고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골면서 영원한 단잠에 빠져들 것이네. 영구적인 잠꾸러기가 되는 것이지. 아름다운 꿈을 꾸거나 악몽에 시달릴수도 있을테야. 나는 이따금씩 자네와 내가 살아가는 인생 전체가 하룻밤의 꿈이 아닐까 상상을 해보곤 한다네. 수십년짜리 꿈이지. 아주 생생하고 피부에 와닿는 그런 꿈. 이것은 경우에 따라서 고통스러운 꿈이 될수도, 놓치기 싫은 황홀한 꿈이 될 수도 있겠지만, 꿈이든 현실이든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점이 맹점이라네. 따지고보면 우리는 인생에 대한 연금술사가 되는 것이야.
일생에서 잠으로 보내는 시간이 정말 많지만 또 잠을 거부하고 살아갈 수도 없도록 만들어진 우리 신체를 거부하진 말게나. 자네의 지친 신체의 모든 기능을 회복하고 정신적인 상처를 치유해 줄 유일한 방법이니까.



나는 이 곳에서 정말 잘 자고 있다네. 세상 그 어디에서도 이토록 잠을 잘 잘 수는 없을걸세. 호화로운 호텔이나 미녀들로 둘러쌓인 침대 따위는 전혀 부럽지 않지. 아름다운 자연 옆, 아래에서 그것을 베게삼고 이불삼아, 땅으로부터 왔던 내가 그 땅에 다시 되돌아갈 준비를 하는 것 마냥 잠을 자고나면 엄청난 것을 성취한듯 기분이 좋아진다네.

이 곳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네. 나처럼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사색하며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쉴새없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고, 아침부터 밤까지 논쟁과 토론을 벌여서 자신의 지식을 입증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다네. 그것 뿐인가? 이 위대한 자연배경을 도화지 한 장에 담아보기위해 연필과 물감질을 쉬지않는 축도 있고 시를 쓰거나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는 축, 지나가는 사람들의 운세를 봐준답시고 추상적인 이야기라서 누구나 들으면 공감할만한 이야기를 하는 축, 조직적인 연합을 만들고싶어하는 축, 그냥 아무것도 바라지않고 가만히 있는 사람도 있지. 한마디로 이곳은 사회이고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라네. 자네는 요즘 어디에서 지내고 있는가? 만약 우리가 동료로서 함께했던 그곳에 지금까지 계속 살고있다면 이 곳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그곳과 여기가 다르지 않다는 것뿐일세. 굳이 차이점을 찾자면 위대한 자연의 풍경이 훼손되었느냐 그렇지 않느냐 정도일 것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하다네. 그래서 자네와 나는 아주 멀리 떨어져있지만 아주 가깝게 있는것과 같고, 영원히 만날 수 없을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매일 함께하는것과 것과 같다네.

친구여, 나는 자네의 소식이 궁금하여 이 편지를 쓴다네. 내가 자네의 소식이 궁금하듯이 자네 역시 나의 일상이 궁금할걸세. 그래도 조금만 참아주게나. 앞으로 내 여력이 되는한 미약하나마 이 펜을 통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놓을테니 말이야. 숨김없이 이야기할걸세. 동료여, 자네와 나 사이에 숨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또 숨긴다한들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그러니 안심하고 천천히 기다려주게나.

얼마전, 그러니까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는 묘한 날이었지. 나는 식당에서 어떤 한 중년신사와 함께 식사를 하게되었다네. 이 식당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인상은 좋지만 몸매는 뚱뚱한 주인아주머니의 솜씨가 일품인 곳이지. 그녀의 손 맛은 예술이야. 자네가 나중에 이곳을 여행하기위해 찾는다면 꼭 한번 소개해줄테니 기대하게나. 많은 사람들이 찾는 시끌벅적한 곳이라네. 정말 많은 사람들을 새롭게 만날 수 있는 만남의 광장같은 곳이기도 한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외로움과 정열에 사로잡힌 젊은 남녀들은 이곳에서 새로운 짝을 찾는다고 하더군. 이곳은 허름한 내부와 광활한 수평선이 보이는 테라스에 식탁이 마련되어 있는데, 워낙 많은 사람들이 빈틈없이 찾아오는 관계로 매번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합석하여 식사를 할 수 밖에 없다네. 이곳만의 독특한 문화지. 그 신사는 누가봐도 깔끔한 외모를 갖추고 있어서 그 진취적인 성격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네. 깨끗한 정장차림에 지저분하지 않은 머리, 적당히 돋아난 수염과 안경 낀 얼굴에서 상당한 지식과 용기를 겸비한듯 보였어. 아무튼 그 중년신사와 식사를 하면서 그의 이야기를 어쩌다 듣게 되었다네. 그는 괜찮은 일을 했고 경제적으로도 적당히 만족스러운 젊은 시절을 보냈다고 했다네. 평생을 자기 자신, 가족, 내가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열심히 헌신했고 일을 하고, 돈을 번다음 먹고 마시고 즐기면서 살았다고 하더군. 상당히 괜찮은 인생이 아닌가? 자네가 보기엔 어떤가? 하지만 그 중년신사는 다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 볼때마다 후회스러웠다고 하소연했다네. 왜그런고 물어보니 단 한번뿐인 인생을 너무 무언가에 집착하며 살았다는 것이야. 그는 꼭 그렇게 살지않고 다르게 살았으면 어땠을까 하고 후회했다네. 한숨을 푹푹 쉬더군. 그는 건강한 외모와는 다르게 정신상태는 폐가처럼 망가졌고 피폐했다네. 내 장담하건대, 그의 정신세계에는 못해도 유령 한마리쯤을 살고 있을 것이야. 그만큼 어두웠고 침침했다네. 그는 평생을 후회하며 살다가 더 이상 후회하지 않기 위해 이곳으로 여행온 것이라 털어놓았는데, 활기찬 미래를 꿈꾸기보다는 자신이 후회했던 일들을 자꾸 회상하며 그것들을 후회하느라 하루 시간을 다보내고 있었네. 식사도 제대로 못하면서. 동시에 과거에 후회하며 살았던 자신을 또 후회하느라 시간을 몽땅 써버리고는 그렇게 후회한 자신을 또 다시 후회하고 있었지. 한 번 시작된 후회라는 악마의 손이 그의 몸와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지. 아마도 그의 눈에는 이 아름다운 자연환경도 지옥불이나 가시덤불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네. 나는 그 신사에게 더 이상 후회하지말고 앞으로는 좀 더 즐겁고 행복한 내일을 상상하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 살아보면 어떻겠느냐고 말해주려다 곧 그만두었네. 혹여나 나의 말로 인해 그가 또 그것을 후회하면 어쩌는가?

나 역시 참 많은 세월을 후회하고 있지. 후회라는 체계에 전문가가 있다면 바로 내가 1순위 일걸세. 꿈을 품은 우주의 아들이자 영원한 동반자여, 내가 알기로 자네는 후회하는 성격은 아니네만(그래서 내가 자네를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네) 노파심에 한마디 하자면 후회란것은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것이라네. 말하자면 후회하거나 후회하지 않거나 지나간 일은 바뀌지 않는다는 걸세. 과거가 어쩌니 예전이 어쩌니 같은 말은 사실 다 쓸모가 없네. 벚꽃 나무가 작년에 꽃을 피우지 못한 것을 후회하느라 올해에도 꽃을 피우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자네는 원체 후회하지 않는 성격으로 알고있네. 그럼에도 아예 후회를 하지 않고 살아가진 못하겠지. 만약 이 편지를 탐독하고나서 찾아오는 후회라는 악마의 손길이 느껴진다면, 그 악마의 손에게 정중한 악수를 청한다음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한 표정으로 웃어보게나. 이것이야말로 미래지향적인 마음가짐이자 후회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길이라네.


Featured photo credit: Kristina Ruth via flickr 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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