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시언의 맛있는 책 읽기(195) : 조지 오웰의 1984, 전체주의는 모든걸 통제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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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시언의 맛있는 책 읽기(195) : 조지 오웰의 1984, 전체주의는 모든걸 통제할 수 있는가?

조지오웰의 책은 묘한 마력이 있다. 그의 글은 슬프고 우울하면서도 속도감이 있고 좁은 세계관을 표현하면서도 많은 것들을 느끼게한다. 조지 오웰하면 떠오르는 <동물농장>과 <1984>는 명실공 걸작이라 할만하다. 내가 <1984>를 처음 접한 것은 학창시절 도서관에서였다. 당시에 나는 만화책, 특히 일본 만화책에 미쳐있었는데, 마침 기생수라는 만화책과 교묘한 공통점이 있어보이는 신기한 제목과 표지때문에 집어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초반 도입부를 읽다가 도무지 이해되지않는 내용과 암울한 분위기 때문에 다시 책꽂이에 모셔두었었다.

최근에 고전들, 특히 문학고전들을 읽는데 심취해있다보니 다시금 <1984>를 읽었다. 고전은 흔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전혀 다른책이 된다고한다. 누군가의 말을 빌리면 "같은 책을 2번 읽는건 불가능하다" 이 책은 확실히 그랬다. 학창시절 겉핥기 식으로 훑었던 내용과 집중해서 읽은 지금의 내용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1984>는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세계적 디스토피아 소설이라 할만한데 날카로운 풍자와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게 특징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명언을 탁월하게 형상화한 작품으로 '절대 권력'앞에 한 명의 개인이 얼마나 비참하고 무기력해질 수 있는지를 노골적으로 표현하고있다.

책 밑줄긋기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스토리 전체를 이끌어가는 주요 소재는 '빅 브라더'로 일컬어지는 최대의 적군이자 강력한 '당'이다. 온 세상이 아이러니 투성이고 이해하지 못할 것들 뿐이다.

소설에서 '당'의 권력은 마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떠오르게한다. 폭력, 감금, 고문, 살인 등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전체주의의 어두운 면모가 당연하게 이루어진다. 인간들을 관리하는 가장 쉽고 정확한 방법은 두려움을 심어주는 것이라는 전제아래 모든 행위엔 정당성이 부여된다. 게다가 반역을 꾀하거나 애초에 그런 생각 자체를 할 수 없도록 24시간 내내 텔레스크린, 헬기, 마이크로폰 등으로 감시를 받는다. 조금만 이상한 행동을하면 텔레스크린에 적발당해 곧장 처형당할지도 모른다. 모든 과거가 조작되지만 증거까지 함께 조작되기에 조작되는 순간부터 새로운 과거가 원래의 과거가된다는 설정은 가히 충격적이라 할만했다. 과거란 기록의 결과가 아니던가!

주인공 윈스턴이, 그리고 독자들이 느끼는 가장 강력한 감정은 그 어떤 폭력을 쓰더라도 인간의 마음까진 통제할 수 없다는 믿음이다. 인간의 속마음, 그러니까 양심이나 정신을 제외하면 '당'은 모든걸 완벽하게 컨트롤하고있다. 그러나 소설 후반에 각종 고문에 따라 주인공 또한 자신이 하지 않은 행동까지 거짓말로 자백하고 사랑했던 줄리아에게 죄를 덮어씌우는가하면 스스로를 세뇌한다. 단지 잠깐의 고통, 아니 죽기보다 더 참기어려운 고통을 거부하기 위해서다. 더 이상 정신이나 양심 따윈 안중에도 없다. 당장의 참기힘든 고통만 벗어날 수 있으면된다.

책 밑줄긋기

"윈스턴, 어떻게 하면 타인에게 자기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겠나?"
윈스턴은 곰곰이 생각한 끝에 대답했다.
"타인을 괴롭힘으로써 행사할 수 있을 겁니다."
"맞았네. 권력은 타인을 괴롭힘으로써 행사할 수가 있지. 복종으로는 충분하지 않네. 괴롭히지 않고, 어떻게 권력자의 의사에 복종하는지 안 하는지 알 수 있겠는가? 권력은 고통과 모욕을 주는 가운데 존재하는 걸세. 그리고 권력은 인간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서 권력자가 원하는 새로운 형태로 다시 뜯어 맞추는 거라네. 자네는 우리가 어떤 세계를 창조하려는지 이제 좀 알것 같나? 이건 옛날의 개혁자들이 상상했던 어리석은 쾌락주의적 유토피아와는 정반대의 것이네. 공포와 반역과 고뇌의 세계이지."

즉, 전체주의는 모든걸 통제하게된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았던 사람의 마음까지도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1984>의 가장 강력한 메시지이자 조지 오웰이 소설 속에서 미래로 예견했던 전체주의의 가장 마지막 맥락이었다. 과거에 <1984>는 미래소설이었지만 지금은 과거소설이 되어버렸다.

개인적인 느낌으로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해야할 부분은 정치나 정보보호 쪽이 아니라 무의식 쪽이다. 문명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점점 더 무식해진다. 겉보기엔 똑똑해질지 몰라도 실제론 무식해지는 것이다. 아니 무지해진다. 자신만의 신념이나 가치관은 옅어지고 결국에 사라진다. 뚝딱하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에서 구태여 깊숙하게 공부하거나 외워야할 필요를 느끼지못하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를들어 부모님 전화번호를 외우고있는 사람을 생각해보자. 심지어 자기 자신의 전화번호도 가끔은 깜빡한다. 이제 집주소 같은건 외우는게 더 이상한 세상이다.
문명으로 우리는 과거보다 더 편리한 삶을 살아가지만 신체적으로는 더 퇴보한다. 우리는 추위와 더위를 버텨내기 위해 많은 기술을 발전시켰다. 덕분에 피부는 더 얇아지고 약해졌다. 피부병에 더 쉽게 걸리고 더 많은 알레르기를 경험한다. 세균 면역성이 극도로 낮아지고, 완벽하게 깨끗한 환경이 아니면 비염이든 편두통이든 뭔가 몸이 정상이 아니게된다.

모두가 무지해진다는건 결과적으로 '정신적 전체주의'가 실행된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문명의 발전이 언제나 옳다고만은 볼 수 없다. 1년에 책 한권 읽지않는 사람이 엄청 많은 세상에서 조지 오웰이 예견했던 1984년처럼, 디스토피아는 멀지 않은 세상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수십년뒤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1984 - 10점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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