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는 '긴장'하고 프로는 '흥분'한다

수 십 혹은 수 백명의 청중이 저마다의 눈으로 한 곳을 응시한다. 그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다. 다리를 꼬는 이, 하품을 하는 사람, 팔짱을 끼는 축이 있는가하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축도 있다. 주최측의 소개가 이어지고 나는 천천히, 하지만 느리지않게 무대로 올라간다. 옷차림은 내가 입을 수 있는 가장 신사적인 모습이다. 사람들은 등장하는 나를 보면서 강사가 젊다는 사실에 매번, 그리고 살짝 놀란다. 모름지기 연단에 오르는 강사라고하면 백발이 성한 노인이거나 어느정도 연배가 있을법하다는 통념이 있는 탓이다. 나는 자신감에 찬 미소를 띄며 입장한다. 화장실 거울 앞에서 재차 확인했다. 넥타이의 적당한 조임은 알 수 없는 긴장감을 준다. 단추 흐트러진 곳 없고 셔츠의 빳빳함이 내가 중요한 일을 하고있음을 일깨운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청중의 눈 빛을 전체적으로 훑어본다. 이제 이야기를 시작할 차례다.

많은 강의를 진행했지만, 여전히 나는 강의 시작 전에 몸을 떤다. 심한 수준은 아니다. 과거에는 감당할 수 없을만큼 긴장하면서 사시나무떨듯 '덜덜'거리고 무언가 안심될만한 것들을 찾곤했다. 막상 강연 할 때엔 떨리는 느낌은 별로 없다. 가장 떨리는 순간은 무대에 오르기 직전이다. '매도 먼저 맞는게 낫다'는 말처럼, 강연이 시작되면 떨림은 멈춘다.

긴장인지, 흥분인지, 아니면 긴장과 흥분이 동시에 느껴지는 것인지 정확하게 판단하긴 어렵다. 손이 자동으로 떨리면서 무릎이 꺾인다. 집중력은 얼추 유지되는 듯하다. 하지만 준비해왔던 강의 자료를 순서대로 훑어보라고 누군가가 시킨다면 할 수 없을 것이다. 머리는 백지같고 마치 아무도없는 사막에 홀로서있는 산티아고(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의 주인공)처럼 멍한 기분이다. 이 멍한 기분이야말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다. 동 트기전이 가장 어둡듯 나는 중요한 순간 직전에서야 내가 내가 아닌 듯한...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기분을 느낀다. 그리곤 만끽한다. 이 순간만큼은 내가 내가 아니다. 나는 그저 허술한 강사일 뿐이다. 준비했던 이야기들을 아낌없이 쏟아부을 준비가 완료되어있다. 몸에서 엔돌핀이 미친듯이 나오기 시작한다. 살아있음을 비로소 느낀다.

나는 확실히 무대체질인가보다. 연습이나 리허설에서는 알 수 없는 모호함 때문에 정력을 100% 쏟아내기 어렵다. 자리가 만들어지고, 무대에 오른다음 조명이 켜지고 사람들이 집중하기 시작하면 동시에 나도 집중할 수 있게된다. 크건 작건 무대는 내 적성에 맞는 것 같다. 나는 카메라 공포증이 있는 것 같지만 무대 공포증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긴장 때문에 일을 그르칠 순 없다.

나는 단시간에 청중들로부터 주목받는게 즐겁다. 그들의 시선이 나에게 에너지를 부여하는 것만같다. 사람들은 나를 쳐다보고있고 나는 그들과 눈을 맞춘다. 우리는 한 공간에서 같이 호흡한다. 나는 알지만 그들은 잘 모르는 어떤 사소한 지식이라도 전달할때면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감동적인 현실을 경험한다. 희열. 내가 엄청 뛰어나거나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서 더욱 그렇다. 나는 이 강연이라는 행위가 너무나도 재미있어서 여력만 된다면 매일이라도 할 지경이다.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걸로 돈을 벌 수 있어서 좋고, 그 돈으로 의식주를 해결하면서 더 오랜기간동안 강연을 할 수 있게되어 좋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일이기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이 강의의 결과물에 책임이 있고, 전적으로 내 덕이거나 내 탓임을 안다. 직장상사가 시켜 억지로 하는 일과는 반대로, 쪽잠을 자면서 밤새도록 강의 준비를 해도 전혀 억울하지않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변명을 할 수도 없다. 주인의식이다. 에어컨 빵빵한 한여름이든 눈보라 몰아치는 한겨울이든 강의가 끝나면 내 온 몸은 땀으로 범벅된다. 셔츠가 남아나질 않고 속옷이 흠뻑 젖는게 일상이다. 쥐어짜면 물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축축한 속옷을 느끼면서 강의를 마무리하고나면 비로소 뭔가 제대로 된 일을 한 기분이 든다.

아마추어는 중요한 순간에 긴장한다. 수십번 연습했든 수백번 연습했든 실전에서 긴장한다. 이 긴장감을 조금이나마 줄여보기 위해 연습을 거듭하는 것이다. 연습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전략이겠지만 실전에서 긴장하면 전부 도루묵이다. 프로는 흥분한다. 닥쳐올 상황을 완벽하게 조정하고 관리할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흥분이란건 결과물에 대한 확신일 수 있다. 가령, 100% 합격이 보장된 세계최고 기업의 면접이라면 긴장은 없고 흥분만 남지 않을까. 안하면 몰라도, 이왕 하기로했으면 확신을 가지자. 긴장이 사라질 것이다.

기본베팅 300홍콩달러짜리 마카오 베네치안 호텔 카지노의 블랙잭 딜러 앞이라면 흥분하지말고 냉정함을 유지해야한다. 가끔은 흥분해서 일을 망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심한 긴장은 어떤 일이든 망치게 한다. 닥쳐올 모든 예외상황에 대비할 순 없다. 중요한건 어떤 예외상황을 마주치더라도 침착하게 대응할 유연함을 갖는 일이다. 긴장은 금물. 긴장할꺼라면 차라리 흥분하는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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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표』,『인생을 바꾸는 기적의 블로그』,『1인분 청춘』의 저자, 작가, 강사, 글쟁이, 블로거, 문화 콘텐츠 매니저, skatldj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