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내가 살아있는 나에게. 네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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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편지

이 곳에서 나는 단 한편의 시를 짓지 않고도 최고의 시인이 되었고, 한 폭의 그림도 그리지 않았지만 최고의 화가가 되었다네. 사방에 펼쳐진 이 위대한 자연을 어찌 시나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세계 최고의 시인이나 화가가 오더라도 여기에서는 그저 취미로 즐기는 그런 사람들로 여겨진다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지나가는 세월에 몸을 맡긴 다음 그냥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시인과 화가가 될 수 있으니까. 지금껏 이토록 위대한 자연을 본 적도, 들은 적도, 누군가에게 말한 적도 없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이 풍경을 누군가에게 전달한다면 그 사람은 글짓기나 그림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겠지.



동료여, 오늘은 이 곳에서 나와 함께 많은 교류를 하는 내 친구 한명을 소개할까하네. 나는 몇 해 전 이곳에서 한 명의 젊은이를 알게되었네. 패기넘치는 눈 빛과 뜨거운 가슴을 지닌 친구지. 어쩌다 우연히 말동무를 하게 되었는데, 그 이후부터 우리는 꽤 가깝게 지냈다네. 내가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된건 그의 별명을 듣고 난 후부터인데, 별명이 '똥돌이'라고 하더군. 그 별명을 듣고 뱃속과 허파가 간질간질해지더니 목젖이 떨리며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네. 도저히 참을수가 없었네. 어떤 상황에서든 굳이 웃음을 참을 필요가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보네. 유머와 웃음은 우리를 행복하게해주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 아닌가.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지금이라면 나는 장례식에서도 유머를 말하고 눈물이 날 정도로 웃을 수 있을 것만 같네. 아무튼 나는 그 친구에게 그 별명에 대한 어원을 묻지 않을 수 없었네. 그것을 물어보는 그 짧은 순간에도 내 머리속에서는 상상력이란 자석 N극이 추론이라는 S극에 달려가듯 다양한 시나리오가 펼쳐지고 있었네. '어릴 때 마을 한 복판에서 똥을 싼 건 아닐까?'에서부터 '대변을 참지 못하는 특이한 병이 있다면?'이라든가 '너무나도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인데, 수업시간에 배아픔이 느껴졌지만 선생님께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는 말을 못해 그대로 교실에서 저질러버렸다면?' 등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이 샘솟았지. 그가 내게 말했네.

"어릴 때 제 얼굴이 귀엽게 동글동글했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말랐지만 당시엔 살도 통통했다나봐요. 얼굴이 너무 동글동글해서 별명이 동돌이 였다는데, 동돌이는 발음하기에 심심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똥돌이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하하. 내가 생각했던 모든 시나리오가 빗나갔지. 너무 어렵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네. 그의 원래 이름이 있지만 나는 계속해서 그의 별명을 부를것이야. 왜냐하면 재미있기 때문이지. 이 사건을 통해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고 한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네. 이따금씩은 함께 커피를 마시며 눈 앞에 펼쳐진 호수를 바라보며 서로의 취미를 물어보기도 했고 저녁노을이 질 때면 조금은 진지해진 마음상태로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포부를 서로 묻고 대답하기도 했었네. 그러다가 과거 이야기를 하게되었는데.... 아아. '똥돌이'의 겉모습에서 비춰지는 활기와 웃음 때문에 나는 그가 행복한 어린시절을 보냈을 것이라고 쉽게 단정해버렸지 뭔가. 그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듣고 나는 가슴이 먹먹해지며 눈물을 짓지 않을 수 없었네. 감수성이 풍부한 자네도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심장이 짠해지겠지. 저 산 위에있는 저택 앞마당에는 엄청나게 큰 바위가 하나있는데, 똥돌이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들으면 그 바위도 울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네. 다른 사람의 슬픈 과거를 누군가에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아주 조심스러운 일이네. 그래서 나는 그에게 평생을 함께한, 믿을 수 있는 단 한명의 친구에게 편지로 이 이야기를 전해도 좋겠느냐고 물었고, 그는 좋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지. 그래서 자네에게 똥돌이의 이야기를 해줄 수 있게 되었다네.

"부모님은 이혼을 했죠. 4살 때 였을거에요. 흑백사진처럼 어둡고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게 엄마가 대문을 열고 울면서 뛰쳐나가는 모습이죠. 지금은 엄마의 얼굴도, 모습도, 목소리나 손모양 조차 기억나지 않아 슬픕니다. 그때부터 저는 아빠와 함께 살게되었죠. 아빠는 술을 좋아하는 술고래였고, 동네에서도 알아주는 대장부였습니다. 몸집도 크고 힘도 세었죠. 산 속에서 호랑이가 내려와도 아빠에겐 이길 수 없었을 거에요. 당시에는 어릴때라 몰랐었죠. 아빠 홀로 나를 키우며 얼마나 힘들어했을지를요. 지금은 어느정도 이해가 가요. 아빠 역시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많이 삐뚤어진 어린시절을 보냈었죠. 아빠가 힘들게 모아놓은 돈을 몰래 훔쳐 친구들과 흥청망청 써버리기도 했습니다. 10살 정도밖에 되지않은 꼬맹이였던 제가요. 한 두번이 아니라 여러번 그랬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손버릇이 나빠져서 도둑질도 일삼지 않았었죠. 동네 어른들의 소문에 의하면 아빠는 술버릇이 고약했습니다. 알코올 중독이었죠. 술만 먹으면 그전까지 알던 사람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곤 했었습니다. 폭력을 휘둘렀고 집안에 있는 집기나 가전기기를 깨부수는 건 일도 아니었죠. 엄마와의 이혼 후 점점 더 술을 찾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땐 아빠가 왜 술을 먹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죠. 왜냐하면 전 꼬맹이였고 경험이 부족했으니까요. 저는 나쁜짓을 일삼았지만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소년원에 가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다행이죠. 아무튼 저는 컸고 어느덧 성인이 되었습니다. 아, 마지막으로 봤던 아빠의 모습이 기억나네요. 당뇨병과 합병증 때문에 엄청 마르고 쭈글쭈글해진 모습이었죠. 그 우람하고 건장했던 아빠가 말입니다. 하.... "

친구여. 오늘은 여기까지 쓰고 펜을 내려놓아야겠네. 똥돌이 이야기를 하던 중 마침 똥돌이가 손님으로 찾아왔지 뭔가.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그 친구도 양반은 못되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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