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3] ‪‎나는 오늘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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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 디스토피아 소설 씨앗글)

나는 오늘만 살아간다. 내일을 살지 않는다. 오늘 하루만 살아가기에도, 하루를 버텨내기에도, 이 슬프고 저주같은 짧은 시간을 보내기에도 벅차다. 인생 앞에서 나는 외소하고 가냘프고 약하다. 작은 바람에도 갈대보다 더 심하게 흔들리는 마음은 지옥같은 세상을 살아가기엔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오늘만 살아간다. 오늘만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미래를, 내일을, 당장의 코 앞에 있는 어떤 것도 장담할 수 없기에 오늘조차 두렵고 힘이든다. 나는 사무치는듯한 외로움을 타다가 그것이 운명임을 깨닫고는 씁쓸하게 인정한다. 내가 바꿀 수 있는건 없다.

왜? 도대체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유감스럽게도 나는 또 다른 오늘을 감내해야한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내일은 곧 오늘이 되고, 오늘은 곧 어제가된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 다다음날도 똑같다. 나는 벌거벗은채로 양쪽 어깨에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느끼며 시간이라는 산을 올랐다가 다시 내려간다. 그리고 그것은 반복된다. 짊어진 짐덩어리는 하루가 갈수록 늘어나는 탓에 점점 더 산을 오르기가 어렵다. 하지만 또 다시 올라가야한다. 용기란 내 사전에 있는 단어가 아니다. 패기나 열정같은 불타듯 뜨겁고 아름다운 요소는 내면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지긋지긋한 인생을 스스로 끝장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죽음이란걸 알지만, 죽음조차 스스로 선택할 수 없을만큼 연약해서 아무런 불평불만없이 악마의 징벌을 평생토록 받으며 겨우내 숨 쉴 뿐이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나는 오늘만 살아간다. 과학이나 수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감히 범접할 수도 없는 어떤 거대한 지옥의 문지기가 내 온 몸에 보이지 않는 실을 묶고 나라는 인형을 이리저리 움직인다. 나는 내가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고있다고 느꼈지만 실상은 조종당하는 하나의 장난감일 뿐이었다. 지금까지 경험했던 기쁘고 슬픈 일들 모두 우연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정해진 대본에 따라 흘러갈 수 밖에 없는 영화 한편처럼 이미 만들어진 것이었기에 어제를 후회한들 소용없고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한들 의미가 없다.

내일을 걱정하고 준비하는 사람에겐 희망이 있다. 희망없이 미래를 준비하는 인간은 없다. 당장 1분 뒤의 일을 결정할 때도 기대나 포부를 가지기 마련이다. 희망이 없는 인간에게 준비란 무의미한 것이다. 그 어떤것도, 심지어 나쁜 일조차 기대할 수 없는데 어떻게 희망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힘을 내라며 등을 두드리는 친구에게도, 내 미래를 계획해주고 예언해주는 인생 선배에게도,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는 그 누군가에게도 나는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않는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란게 애초에 내 것이 아니다. 나는 기계적으로 잠깐이나마 감정을 느꼈다가 금세 차갑게 식은 로봇의 그것으로 원상복귀한다. 만약 감동, 호감, 웃음, 행복, 안정, 편안함 같은 호의적인 감정을 살짝이라도 느낀다면 나는 보라빛 저주에 의해 무릎을 꿇고 고개를 떨궈야한다. 그런 다음엔 계속해서 암울한 오늘이라는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야한다. 눈물, 분노, 파괴, 절망에 묶인 수 많은 오늘을 말이다.

나는 오늘 하루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 내일은 내일 생각하자. 나에겐 오늘과 내일이 어차피 다르지않다. 그것이 돈이든 시간이든 힘이든 생각이든 똑같다. 나는 마치 해군에게 체포된 해적처럼 목을 죽 빼고 차라리 빨리 죽여달라고 고함을 치는 죄인과도 같다. 만약 내게 허락된 시간이 조금 더 존재한다면 나는 어떻게든 내일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않다면 내 오늘은 오늘로서 마무리 될 것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는 내 운명에 저항하지 않는다. 아니 그렇게 하지 못한다. 우주에서 가장 착한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물을 떠놓고 절을하면서, 나를 위해 신에게 기도해준다해도 이 저주는 풀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에게 부탁을 할 수도,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이 그저 그렇게 오늘만을 살아가야한다.

모든걸 투자해서라도 오늘을 살아야한다. 뭔가를 아껴두거나 비축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내겐 무언가를 준비하거나 계획하는거 자체가 사치가된다. 모든걸 걸자. 당장을 위해, 1분 1초를 위해, 눈 앞에 어떤 것을 위해 불나방처럼 뛰어들자. 그렇게하지 않으면... 내 오늘은 너무나 가혹하니까.


Featured photo credit: Wonderlane via flickr 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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