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친구2 - 친구없는 친구는 친구가 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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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라는 두 글자는 삶에서 매우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때로는 가족보다 더 가깝게, 때로는 친하지 않게, 또 때로는 원수가 되기도 하고 영화에서처럼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에 이르기까지... 친구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친구는 가지기 힘들다는 모순적인 상황을 떠올리게한다.




영화 친구 2에서는 친구 1의 연장선상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친구 1에서의 사건이 있은지 17년이 지난 시점에 포커스를 두고있다. 영화의 주인공이자 젊은 피, 그리고 스토리를 이끌어나가는 역할을 하는 최성훈(김우빈)은 친구 1의 대표 주인공 이준석(유오성)과 호흡을 맞추게 되는데, 이 둘을 부자(父子)지간으로 봐야할지 친구관계로 봐야할지는 막상 판단하기 어렵다. 시나리오 상의 나이대가(최성훈의 아버지가 되는 장동건과 유오성이 친구이기 때문에)맞아 들어갈 뿐만 아니라, 친구 2에서 이철주(주진모, 이준석의 아버지)가 자주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별다른 친족관계가 없는 이준석이라는 슬픈 인간에게 철없던 자신으로 인해 결과적으로는 죽어버린 친구의 남겨진 아들과 부인은 어떻게 바라봐야할까?




영화에서 이준석은 돈으로 그것을 해결하고자했다. 오토바이를 사주고, 룸싸롱 운영권을 맡기기도 하면서 자신의 과오를 보답하고자 했지만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아버지 그 자체 혹은 아버지의 복수와 어머니의 행복(최성훈 입장)이었고, 불행한 어린시절을 살아온 아들의 건강한 미래(혜지 입장, 아버지처럼 죽지 않길 바라는 마음)였다.

친구 2는 여전히 친구라는 주제를 가지고 제작된 영화이지만 전편 친구와는 또 다른 장르가 되었다. 메인테마는 친구가 아닌 '과거 누군가와 친구였던 시절의 한 부분'일 뿐이다. 전편에서 장동건의 죽음으로 인해 발생한 여러가지 사건들을 풀어나가는 이야기인듯한 착각을 일으키곤 하지만, 실제로는 누군가의 죽음과는 관계없는, 그러니까 이미 끝나버린 친구 관계보다 자신의 목적과 원하는 바를 쟁취하기 위해 움직이는 '친구'들에 대한 스토리다. 끝나버린 친구 관계는 더 이상 친구로서의 효력이 없게되는건가. 복수 역시 친구와의 우정때문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복수'하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면 친구와의 의리나 우정, 결과적으로 친구와의 의식적/무의식적인 약속 모두가 요즘같은 시대엔 의미 없는게 아닐까?

친구 2에서 주인공 2명은 모두 가장 친한 친구가 죽어버렸고, 그 사건으로 인해 수감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친구의 죽음이 자신과 연결되어 있다. 죄책감 뿐만 아니라 후회, 친구를 잃게됨으로써 자신 역시 친구가 아니게 되어버린 현재. 그들은 여전히 친구일까? 그렇지 않은걸까?




친구 없는 친구는 친구가 될 수 있는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러한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고 있다. 이준석은 자신을 불러주는 곳이 아무곳도 없다며 한숨을 내쉰다. 과거가 오버랩된다. "니는 친구 있나?"란 이준석의 질문에 "죽었다"는 최성훈 대답에 의미는 '더 이상 친구가 없다'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곤 최종 장면에서 누군가가 이준석을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부른다. 가자!"

김춘수의 유명한 시 <꽃>에서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멋진 구절이 나온다.
우리를 친구라고 불러주는 사람이 있을 때, 비로소 나는 그 사람의 친구가 된다. 반대로 나 자신이 누군가를 친구로서 불러줄 때, 그 사람은 내 친구가 되는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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