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라! 나의 20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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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라! 나의 20대여...

나는 지금 29살이고 곧 서른이 된다. 내 아버지가 서른때 나를 낳았으니 나는 곧 내가 태어났던 해의 그와 같은 나이다. 어린시절 아버지는 크고 건강한 용감무쌍 호랑이 같았다. 지금의 나는... 들고양이 같다.

나는 20대가 되기 전까진 나의 20대를 상상한 적이 없던 것 같다. 단 한번도! 어른이 되면 어떨까...같은 생각자체를 안했나보다. 노느라 바빴으니 그럴만도 했겠다. 상상여부에 관계없이 내 20대는 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많은 일들로 가득찼다. 대학에서 공부를 했고 군대를 다녀왔으며 블로그를 시작하고 책을 썼고 강의를 하고 돈을 벌기도 했다. 회사에 취직했다가 그만두기도 했고 귀 빠지고 처음 해외도 다녀오는가 싶더니 나중에는 여러번 가게되었다. 운전면허를 따고 장롱에 방치했다가 나중에 자동차를 샀고 경제활동이란걸 해보기도 했다. 술을 마시고 디스플러스 담배를 피웠다. 원래는 시즌이나 던힐을 피웠었는데 저렴한 가격에 매력을 느껴 군대에서부터 디스플러스를 피워댔다. 하루에 한 갑 정도. 참 많이도 피웠던 담배를 지금은 전자담배가 대체하고 있다. 담배와 술은 내 20대의 변함없는 친구였고 동반자였으며 한숨이었고 기쁨이자 낙이었다.

군대 일병 말 무렵. 부대에는 미친듯이 눈이 왔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아버지가 운명했다. 그 날 새하얀 세상 위에서 가장 어두운 남자는 나였다. 휴가증을 들고 집으로 되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청승맞게 소리없이 '펑펑'울었다. 하지만 아버지라는 큰 사람이 화장대에 들었다가 한 줌의 재로 되돌아 왔을 때, 그리고 그의 고향에 그것을 흩뿌릴 때엔 침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나는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고 현실 구분조차 불명확했으며 오열하는 친척들을 퀭 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가슴이 뻥 뚫렸고 내 모든 신체기관이 마비된 듯 신기하게도 울지 않았다. 물론, 며칠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내 20대를 되돌아보면 나는 참 어리숙했다. 패기와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조급함만이 나를 감쌌다. 거짓말 투성이인 어린시절을 보낸 것 같아 후회스럽고 나 자신에게 부끄럽다. 열등감과 부러움으로 얼룩진 학생때의 기억은 20대의 나를 채찍질했고, 금방 뜨거워지는 냄비처럼 금방 식어버렸다. 내 청춘은 미지근하게 그렇게 흘러갔다. 나는 웃고 울고 소리치고 노래하며 춤추었다. 비틀거리며 길거리를 걷다가 전봇대를 부여잡고 구토를 하고 연탄재를 발로 걷어차기도 했다.

고등학생 때 까지는 여자 손도 못 잡아본 나도 20대부터는 몇 명의 애인을 사귀게 되었다. 청춘 남녀들이 대개 그렇듯 누군가와 사귀었다가 헤어지고 또 다른 누군가와 연애했다. 잘생긴 것도 아니거니와 돈도 없는 남자를 그녀들이 왜 좋아했는지는 오리무중이지만 좋아해주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된거다. 행복한 시간과 슬픈 이별을 거치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또 언제그랬냐는 듯 20대를 살아갔다. 애인과의 섹스는 나를 정복자로 만들었고, 이별 후의 추억은 나를 패잔병으로 만들었다.

대학생 땐 딱히 할 짓도 없어서 도서관에 박혀 살았다. 도서관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책 보는 것 뿐인데, 전공서적은 너무 재미가 없어서 일반서를 읽었다. 소설이나 자기계발서적, 실용서 등 재미있어보이는 것 위주로 찾다보니 꽤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도립도서관에는 시험 공부나 외국어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고 나처럼 일반서를 읽는 이는 드물었다. 특히나 열람실에서는 더 더욱.

그땐 걷는걸 좋아해서 어지간하면 걸어다녔다. 거리를 걸으면서 mp3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주변을 둘러보는게 좋았다. 거리는 매번 다르니까. 거리는 춥거나 더웠지만 색다른 황홀을 보여주었다. 많은 사람과 많은 차, 많은 건물 사이에서 나는 걸었다. 구불구불, 참 많이도 걸어다녔다. 지금은 나이를 먹었는지 그때 어떻게 그 먼 거리를 걸어다닐 수 있었지는 이해가 안간다. 참 어이가 없다.

졸업 후 창업을 했다가 실패했다. 명예훼손 문제로 사이버수사대와 법원에 불려가기도 했다. 새로운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든든한 우군과 날카로운 적군도 얻었다. 신선한 책들을 접했고 재미있는 영화도 많이 봤다. 맛있는 음식도 자주 먹고 새로운 장소, 새로운 사람, 새로운 무엇을 경험했다. 20대 후반부에 들어서는 여행도 많이 다녔다. 원체 이동하는걸 싫어했던 나였지만 여행에 매력을 느꼈다.

그대는 과연 20대를 열심히 살았는가? 청춘을 청춘처럼 보냈는가?라고 누가 물어본다면 글쎄. 청춘은 청춘을 보내는 방법을 잘 모르기 마련이니 그럭저럭이라고 대답할 순 있겠다. 평범하지 않았지만 평범했고, 치열했지만 치열하지 않았다. 뜨거운 것 같았는데 사실은 미지근했고 화끈하면서도 이글거리는 시기를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그냥 딱딱했다. 그냥... 그런 것 같다.

작년 이 맘때쯤. 눈보라 휘날리던 그 때 들었던 음악을 다시 찾아 들었다. 넬(nell)의 <기억을 걷는 시간>. 친구 녀석의 스마트폰에서 우연하게 들려왔던 노래. 문득 들은 멜로디에서 작년 그때의 기억과 감수성이 살아난다. 감정이 눈보라처럼 휘몰아쳐 들어온다. '불과 1년 전이지만 그땐 참 풋풋했지'란 생각이 들자마자 기분이 묘하게 슬퍼졌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어서가 아니라 지나가버린 시간이 그리워서일 것이다.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돌아갈 수 없다는 현실이 아프다. 정확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미묘한 기분이다. 음악엔 추억이 묻는다. 사진과 영상으로 대체할 수 없는 고요한 기억은 음악으로만 되살아나는 듯하다. 제목 그대로 '기억을 걷는 시간'이었다.

이제와서 아무 소용이 없다는걸 알지만 이제서야 알게 되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이제야 느낀다. 그땐 참 못났고 우스웠지만 따뜻했고 예뻤다는 걸. 왜 이제서야 아는걸까. 왜 사람은 지나고 난 뒤에야 알게 되는게 있는걸까. 바보 같았지만 즐거웠다는 걸.

사람은 되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있다. 되돌아간다해도 나는 지금의 내 인생을 변함없이 선택할 것이다. 그때의 내 인생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20대 청춘이니까. 마치 '다음 생애도 우리 부부로 만납시다'라고 이야기하는 노년부부의 일기처럼 다음생일지라도 이 지긋지긋하고 고통스러운, 하지만 아련한 내 20대를 다시 살아갈 것이다.

잘가라! 청춘. 나의 20대여. 이제 다시는 20대가 20대의 이야기를 쓸 순 없지만. 잘가라! 청춘. 나의 20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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