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6.18] 기차 출장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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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소음... 적당한 시끄러움....
서울 출장 차 기차를 탓다. 청량리 행 새마을 호. 무궁화 호는 좀 많던데 새마을 호는 하루에 2대 밖에 배차가 없다. 안동에서 청량리 까지 가는 기차는 새마을 호와 무궁화 호가 있는데, 도착 시간이 약 20분 정도밖에 차이가 나질 않는다. 새마을 호도 빠른게 아닌가보다. 아니면 무궁화호가 빨라졌거나. 내 기억으론 몇 년 전에는 무려 4시간이 걸렷엇으니 무궁화호가 빨라진 게 확실해 보인다.
그런데도 가격은 8천원이나 차이가난다! 시간 선택 여지가 없으니... (적당한 출발시간에 있는 것은 새마을 호 뿐이다)울며 겨자 먹을 수 밖에.



매번 버스로 서울을 갔다. 버스로는 3시간. 출장으로 인해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는 것은이번이 처음인데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기차로는 3시간 10분에서 3시간 30분 정도 소요. 버스와 큰 차이는 없지 않을까? 라는 물음으로 기차를 타 본다.

서울 출장의 단점이라면 오고 가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많다는 것. 왕복 6시간에다가 지하철 1~2시간을 포함하면 거의 8시간 가량을 이동에만 소비를 해야한다는 것. 하루의 1/3은 잠을 자고 1/3은 이동에 쓰니 나머지 1/3로만 모든것을 다 해야한다 이론적 계산이 나온다. 이 얼마나 아까운 하루인가? 누구의 말처럼 ‘하루에게 미안한’하루가 아닐지.
 
이동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이동 중에 뭐라도 해볼까 싶은 마음에 기차를 선택햇다. 버스나 승용차에서는 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책을 보거나 문서를 읽거나 장시간 문자메시지 대화를 하는 등 시선을 집중하게되면 꼭 멀미가 난다. 희한하게 아무것도 안하면 멀미는 없다. 그러고보니 어릴적 지독한 멀미 때문에 고생한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버스든 승용차든 1시간 이상이면 꼭 멀미를 했었다. 소풍이나 수학여행이라도 갈라치면 멀미약을 2~3개 씩 가지고 다니며 항상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누군가 그러지 않앗던가? 멀미는 자신감이라고. 즉, ‘나는 멀미안해’라고 굳게 믿는 사람은 멀미를 하지 않는단다. 근데 그 말이 어느정도는 맞는것 같다. 게속 차를 타다보니 어느새 멀미를 거의 안하게 되었다. 하지맘 여전히 시선을 집중해서 글을 읽거나 하면 멀미 기운이 슬금슬금 올라온다.
그러고보면 자신감이란 얼마나 중요한가? 생각이나 굳은 믿음이라는 정신적인 무장이 신체나 삶에도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는가?
그리고... 요즘같은 세상에 거의 생물학적으로 멀미를 하지 않는 사람은 얼마나 유리하고 행복한가?

이동 중에 책도 좀 읽고 서류도 검토하고 많은 생각과 추억들을 되새겨보고자 기차를 탓다. 어느 뉴스기사에 의하면 기차에선 멀미를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동하는 8시간 가량을 그냥 허비해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비생산적인지를 알고 있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일종의 전략인데 기차 전체는 금연구역이고 지금 내 뒷자리의 어르신은 연방 도시락이며 과자 등을 잡수시며 쩝쩝 소리와 냄새를 나에게 선사한다. 나도 아침을 못 먹어 배고픈데.... 심지어 은단 까지 씹어드신다.

평일(화요일)이며 아침 시간대라 승객이 거의 없을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안동에선 그나마 빈자리가 좀 있었던 듯 한데 몇 번의 기차역을 거치다보니 지금은 빈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로 꽉 차잇다. 이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걸까? 이들은 어떤 연유로 가는걸까? 이들 모두 어떤 생각과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을까? 왜 이른 아침부터 피곤한 몸을 이끌고 기차에 올랐을까?
이상한 생각들이 머리에 멤돈다. 블로그에 연재 중인 <제 3자의 기록>은 이러한 생각들을 정리해보기에 아주 좋은 카테고리다. 하지만 남의 생각까지 내가 알 수는 없으니까. 제3자의 기록으로 연재하기에 알맞은 주제는 아니다.

기차와 지하철에서 읽기 위해 두꺼운 책 2권을 가방에 쑤셔 넣었다. 게다가 가방에는 각종 서류며 출장 업무에 필요한 많은 것들이 들어잇다. 간만에 가방이 비만이 되엇다. 무겁다. 하필 비가 오는 관계로 우산까지 있으니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예전 기차에서는 오징어, 땅콩, 사이다, 삶은 계란, 귤, 특산품 등을 작은 리어카(사투리로 구루마)에 싣고 각 객차 통로를 왔다리 갔다리 하며 판매했었고 그것을 사먹는 것 또한 하나의 재미요소 중 하나였다. 요즘 꼬맹이들은 이런 경험이 없겟지. 요즘에는 자판기로 대체되고 특정 객차 일부를 개조하여 열차카페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거기에서 음식이며 과자 등을 판매하고있다. 한마디로 열차 안에 편의점이 있는 것이다. 가끔씩 열차카페 직원분이 구루마를 끌며 "따뜻한 커피 있습니다"를 속삭이며 통로를 지나가긴 하지만 예전의 어떤 낭만적인 느낌은 없다. 어차피 열차카페에 음식이 다 있으니까. 거기에는 별 쓸모가 없어보이고 사양도 무척이나 낮아보이는 낡은 유료 인터넷 PC와 미니노래방 같은 것들도 있다.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같은 무선인터넷 계기들이 대중화 되었기로서니 기차에도 무료 와이파이 설치가 필요치 않을까싶다. 물론 터널이나 산 속 철도 구간에서는 불통이겟지만.

열차카페에서 배가 고파 몇가지 음식들을 구경해보는데 한식도시락이 내 시선을 사로잡앗다. 가격은 7500원. 비싸다. 어떻게보면 저렴한 것 같기도 한데.... 7500원을 지불하여 아침을 때워야한다는 생각을 하니 뭔가 모르게 돈이 아까워 발걸음을 돌렸다. 만약 친구와 동행 했었다면 몇가지 음식을 구매했을터다. 어떤 음식을 같이 먹는다는 것은 배를 채우는 의미 그 이상이니까. 함께 먹는 것은 문화이자 소통이며 특정 공감대를 형성하는 좋은 시스템인 것 같다.

혼자 기차를 타고 가며 덜컹덜컹 소리에 창밖을 보고 있자니 육군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자대로 이동하는 열차 일명 ‘자대열차’에서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당시에 점심으로 전투식량을 먹으며 얼마나 많은 걱정과 고민을 했던가. 그때는 나 자신이 마치 팔려가는 소 같다는 느낌을 받앗다.
갑자기 왜 그때의 추억이 생각나는지... 우리들 모두는 알게 모르게 기차에 많은 추억을 갖고 있나보다. 버스나 승용차에서는 이러한 추억이나 낭만보다는 척박하고 지루하고 재미없는 아스팔트 공장의 개미 같다는 느낌인데 말이다. 왜 그런 차이가 나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거나 그런 것 같다.

문득 시계를 본다. 벌써 1시간 째 이 글을 쓰고잇다. 글을 쓰니 시간이 참 잘 가는군. 아무튼 낭만적이고 감수성 흘러 넘치는 기차 출장이다. 비오는 창 밖의 풍경이 그러한 환경을 더욱 가속한다.

상대방에게 기차를 타고 왔다고 하니 엄청 오래 걸린것처럼 이야기한다. 따지고보면 버스나 기차가 큰 차이가 없는데도 말이다. 아마 인식의 문제인 듯 하다. 즉 버스는 빠르고 기차는 느리다는 선입견이 이런 상황을 만드는게 아닐까.
버스는 지루하지만 빠르다. 기차는 조금 느리지만 덜 지루하다. 하지만 더 느리기 때문에 지루하다. 뭐 이런 생각들?

무궁화호를 타고 복귀하려햇으나 일정이 조금 일찍 끝나면서 다시 새마을호를 타고 복귀하고 있다. 열차카페엔 오전에 봣던 그 아주머니가 그대로 계신다. 한마디로 이 기차는 내가 아까 탓던 기차인 것이다. 열차 번호는 1071과 1072로 다른데 왜 같은지는 모르겠다

역시나 적당한 소음과 적당한 시끄러움이 공존하는 곳. 이 역으로 오는 지하철 40분 동안은 북적북적한 인파들 중심에서 책 한 챕터를 해치웠다. 어쩌면 이것만으로도 출장의 효과는 봤으리라.

확실히 현대인들은 여유 없이 살고 잇다. 지하철을 타고 오고가며 본 약 80분 이상의 시간동안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딱 1명, 신문을 보는 어르신을 3명 본게 고작이니까. 모든것을 더 빨리 더 급하게 하는 시스템이 고착화되엇고 현대인들에겐 숨돌릴 틈이나 어떤 정신적인 발전을 위한 자유가 없는 것 같다

대개의 출장도 그런것 같다. 여유잇게 미팅하고 여유잇게 식사도 하면서 한다면 좀 더 유익한 시간이 될텐데, 급하게 미팅하고 급하게 식사하며 급하게 다시 되돌아와서 또 일상으로 복귀해야한다. 짧은 시간안에 많은것들을 해치워야하므로 애로사항이 많고 길을 해메거나 생리현상 등으로 불가피하게 늦어지는 경우가 생길법도 한데, 이런 변수가 발생할 경우 전체 일정이 모조리 뒤로 밀려버리니 삶의 기본욕구보다 일이 먼저가 되버린듯 하다.

결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출장이었다.
역시 기차가 좋다.

2013.6.18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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