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치킨 냄새를 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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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치킨 냄새를 맡다

술 약속이 있어서 차를 놔두고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가고 있었다. 차로가면 금방이지만 주차문제를 해결해야하고, 대리운전을 해야하는 등 신경쓰이고 복잡한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주차공간은 항상 부족하고 차와 사람은 언제나 많다. 이럴 때 버스나 택시를 타보면 아주 편하다는걸 알게되는데,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동안 조급함을 없애는게 쉽지가 않다. 우리는 너무 급하고, 너무 빠르게 살고있다.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버스는 에어컨을 켜지않고 창문을 열어두고 있었다. 빈 좌석이 많아 자리를 잡고 앉아 음악을 들으며 목적지로 향하는데 어디서 치킨 냄새가 났다. 분명 치킨이다. 절대 다른 음식일리 없는 독특한 향 때문에 나는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디서 나는 냄새지?

3칸 정도 앞 좌석에 어느 아저씨가 치킨 봉지를 들고 버스를 타고 계셨다. 봉지에는 OO치킨이라고 적혀있었다. 누가 먹을지, 어떤 사람과 함께 먹을지, 무엇과 함께 먹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순간 아저씨의 사랑스러운 마음이 내게 전해졌다. 어떤 생각을 하고있을까? 토끼같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즐거운 상상이나 사랑하는 부인과의 오붓한 식사일지... 요즘엔 보통 배달해서 먹으니, 다소 이국적인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과거엔 아버지 월급날이나 퇴근 길에 통닭 한 마리 봉지에 들고오는 아날로그적인 문화가 많았던 것 같다. 현대화되면서 요즘 집에 세계문학전집이 없듯 치킨을 들고오는 거뭇한 손을 찾아보기도 어렵다. 그래서 더 특별했던 버스의 치킨 냄새였다.

나는 그 치킨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눈 빛과 깜짝 놀라 맛있게 먹을 가족을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아저씨의 옷차림은 남루했고 사무직이라기보다는 몸을 쓰는 일을 하시는 것 같았다. 그 치킨은 폭염주의보가 있던 한여름 땡볕에서 열심히 일한 댓가였다. 피부가 검게 타서 없어져버릴 듯한 날씨를 견뎌낸 선물은 꽃다발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치킨이 식기전에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고 싶은 아저씨의 조용한 눈 빛은 창 밖을 응시하며 아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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