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삶을 위한 <메모 습관의 힘>, 맛있는 책 읽기(206)
기록하는 삶을 위한 <메모 습관의 힘>, 맛있는 책 읽기(206)
요즘에는 종이책 보다 전자책을 읽는 경우가 많다. 모든 전등을 끄고 이불 속에서 누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니까. 이불 속은 안전하다. 무엇보다 따뜻하고 누워서 읽을 수 있어 장시간 독서에도 큰 불편함이 없다. 종이책을 구매해서 읽을 경우, 그 책이 책장이나 방 한 켠, 아니면 책상 구석에 쌓이기 마련이다. 그 책을 읽었든, 구매 후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든 어쨌든 쌓인다. 가끔 눈에 들어오면 무의식적으로 들춰볼 수 있고 책장에 쌓아가는 맛도 있다. 반면에 전자책은 그렇지않다. 종이책이 하드웨어라면, 전자책은 소프트웨어다. 이북 리더기를 켜지않으면 그 책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김춘수의 꽃'처럼 '내가 실행해주었을 때 그것은 책이된다'
그래도 종이책과 전자책을 번갈아가면서 읽는 편이다. 책을 읽기는 읽는데 예전처럼 블로그에 서평이 올라오지 않는 이유가 있다. 글을 쓰면 쓸수록 과연 내가 다른 사람의 글을 평가할 자격이 되는가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 그 책을 쓴 시간에 비교도 되지않을만큼 작은 찰나의 시간동안 책을 접하고 평가를 내려야한다는 사실이 너무 속물같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책 <메모 습관의 힘>을 리뷰하는 이유도 있다. 우선 책의 저자가 나와 같은 티스토리 블로거다. 한마디로 같은 업계 사람이다. 페이스북 친구이기도하고. 두번째는 이 책의 기초가 된 '메모'관련 글을 인상깊게 본 기억이 있어서다. 당시의 이 글은 관심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큰 사랑을 받았다. 그 중 한명이 나 였다.
<메모 습관의 힘>은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메모와 관련한 책이다. 실용서 같으면서도 자기계발서 같고, 메모에 대한 책 같으면서도 글쓰기에 대한 책 같기도 하다. 여러가지의 색을 지닌 이 책을 처음 받았을 때 놀랐점은 꽤나 두꺼웠기 때문이다. 무려 300페이지가 넘는 무게감있는 책이다.
꾸준하고 체계적인 메모 습관으로 삶이 달라진 저자의 이야기와 메모를 하고 그것을 다시 활용하는 방법, 메모에 쓸 수 있는 다양한 아이템들과 도구들, 소프트웨어인 노트 프로그램이나 스마트폰에서 사용 가능한 메모 앱 등을 잘 정리하여 소개한다. 일단 풀 컬러 편집이다. 덕분에 책 값은 조금 올라갔겠지만 독자 입장에선 와닿는 첨부 사진들을 볼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메모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우칠 수 있었다. 한편 책장을 덮고 내가 느낀건 '메모를 해보자!'가 아니라 '기록의 중요성'에 대한 인사이트였다. 기록. 기록의 중요성. 기록. 기록의 중요성.
메모 역시 기록의 한 단편으로 볼 때 모든 기록은 중요하다. 기록은 다양한 방식을 갖는다. 삶을 기록하거나 업무일지를 쓰는 '대단한'일부터 짤막한 일기를 쓰거나 다이어리를 쓰는 등의 '소소한'기록도 있다. 당장 할인마트에서 사야할 물품목록을 쓰는 것도 기록의 일종이다. 기록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기록은 그것을 나중에 다시 들여다볼 때 의미를 갖는다. '내가 실행해 주었을 때 책이 된' 전자책 리더기처럼, 메모 역시 '내가 다시 한 번 들여다보았을 때' 기록이 된다. 결국은 활용이다. 이때는 재활용이다.
나는 예전에 내가 직접 썼던 블로그의 글을 읽어보는 경우가 잦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내 블로그에 접속하는 일도 있다. 내가 직접 썼던 글조차 시간이 지나니 망각 속으로 사라져버려 다시금 살려내야하는 것이다. 이렇듯 '멍청한' 두뇌를 가진 인간에게 기록이란 시간을 무시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나는 올해 농작물 취재와 인터뷰, 그리고 권역조사 등을 할 때 문방구에서 산 짜리몽땅 상황수첩을 사용했다. 1,500원 짜리다. 이전까지는 아이폰의 녹음 앱을 활용해 녹취록을 만들어 썼는데, 녹취록의 단점은 주변이 시끄럽거나 할 때 잘 안들린다는 것, 특정 내용을 빠르게 들어볼 수 없다는 것(예를들어 '사과'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곳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어봐야한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중요한데 내 생각을 기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녹취록은 나와 상대방이 말하는 것만 녹음된다. 녹음 중인 아이폰에 대고 내 생각을 혼잣말처럼 이야기해도 좋겠지만 상황상 어렵다. 아무튼 올해, 그것도 올해 중후반부터 사용한 짜리몽땅 상황수첩은 자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나는 떠오르는 것들과 내 생각들, 그리고 상대방이 말한 이야기의 요약을 빠르게 메모했고 나중에 글을 쓸 때 그것을 참고했다. 현장의 느낌. 이를테면 '고즈넉한 산맥을 배경으로 한 조용한 분위기'는 현장에서가 아니면 적을 수 없는 문장이다. 녹취록에 느낌은 녹음되지 않는다. 하지만 메모장이나 수첩에는 기록된다.
이렇듯 중요한 기록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는 책이 바로 <메모 습관의 힘>이다. 저자는 메모와 습관을 하나의 콘텐츠로 보고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면 여러가지 이익이 생긴다고 말한다. 메모는 창의성과 글쓰기로 이어질 수 있다. 자료로 이용할 수도 있다. 이래나저래나 없는 것보다는 확실히 있는게 낫다.
하지만 이 메모 습관을 기른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다. 습관은 어렵고 오래걸린다. 그래서 이런 책을 통해서 '작심삼일'동안이나마 메모를 해보는 것이다. 책의 중반쯤에는 글쓰기 파트로 넘어가면서 블로그에 대한 소개와 안내가 나오는데, 살짝 삼천포로 빠지는 느낌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메모 습관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잘 다룬 책이다. 이제 연말이다. 세월이 흘러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제 책까지 출판하며 자타공 '메모의 고수'로 등극한 저자의 메모 이야기를 들어보고 자신만의 기록을 만들어보자.
메모 습관의 힘 - 신정철 지음/토네이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