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10권 썼는데, 또 책을 쓰는 이유
통상적으로 250~300페이지 짜리 단행본 책 한권을 쓰려면 대략 3개월에서 6개월 정도가 소요된다. 이것도 열심히 썼을 때 기준이다. 작가들 중에서는 짬 날 때 마다 쓰는 사람도 있고, 주말처럼 긴 여유 시간에 몰아서 쓰는 타입도 있고, 여러가지 스타일이 있는걸로 알고있다. 전업작가가 아니라면 어찌됐건 단순 텍스트만 있는 단행본 역시 6개월 정도는 각오해야한다.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실용서는 어떨까? 2020년 출간했던 <파이널컷프로X으로 시작하는 유튜브 동영상 편집> 책의 경우, 644페이지, 공백포함 글자수 20만개, 1,300개가 넘는 이미지 파일 등으로 만들어졌다. 이미지가 많이 삽입되고 모든 이미지를 다 편집해야하므로 이때에는 집필 기간이 약 1년 정도로 증가하게 된다. 이것도 엄청 열심히 썼을 때 기준이다.
내가 처음 책을 출간했을 때, 내 꿈은 죽을 때 까지 내 이름으로 된 책 10권을 출간하는거였다. 그런데 40줄 전에 이미 10권을 출간하게 되었고, 이 중에서 3권이 베스트셀러에 오른적도 있어서, 이때부턴 목표가 달성되는 동시에 목표를 잃게 되었다. 책쓰는게 너무 큰 에너지를 소진하는 일이기 때문에 나는 당분간은 책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실제로 출간 제안 몇 건을 거절하였다.
책을 내서 돈을 버는게 가능할까? 아직까지는 나쁘지 않은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사람들이 "책 안 읽는다"는 얘기에 공감하는 편이지만, 광화문 교보문고나 종로 영푼문고 등에 가보면 서점에 여전히 사람들이 많은걸 볼 수 있다.
단행본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실용서의 경우에는 조금 더 사정이 나은 편인데, 교육 시설 등에서 교재 등으로 공급이 가능하다는 측면이 있고, 홍보를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서 판매량을 늘릴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 이때에는 저자의 브랜드 파워가 중요해진다.
책을 처음 쓰는 사람에게 저서 출판은 유의미하며 실제로도 유익하다. 퍼스널브랜딩의 정점이 책을 쓰는 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책을 쓰고 싶어하는 이유는 뭘까? 문화적으로 '책을 쓴 사람'은 전문가로 인식되고 사회에서 올려쳐주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너가 정말로 전문가라면 당연히 그 분야의 책 정도는 썼겠지?"를 기대한다. 전문가라서 책을 쓴 사람도 있고, 책을 쓰면서 전문가가 된 사람도 있고, 책은 썼지만 전문가가 아니라 사기꾼이 되어버린 사람도 나는 많이 알고 있다.
실익을 따져볼 때, 책 10권을 쓴 작가 입장에서 새로운 책쓰기가 유의미한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10권이나 11권이나 거기서 거기이고, 실제로 책 판매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은 제한적이며 그렇게까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돈만 생각한다면, 책을 쓰는 시간에 다른 일을 하면, 책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보다 훨씬 더 큰 수익창출이 가능하다. 그 사람이 책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전문가라면 말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작가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계속해서 출간하는 이유는 뭘까? 나는 여기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하고싶은 얘기가 있기 때문'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하고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그걸 못하게 되면 가슴이 답답하고 암걸릴 것 같고, 미쳐버릴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 말을 반드시 해야하는 사람들 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거의 필연적으로 지금 블로그나 유튜브 같은 1인미디어 채널에서 콘텐츠 생산자로서 포지션 잡고 활동하는 그룹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콘텐츠의 엑기스를 모으고, 다듬고, 정리해서 책으로 출간한다. 이때, 돈은 다음 순위로 밀려난다.
재미있게도, 콘텐츠 세계에는 생산자는 적고, 소비자는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 콘텐츠 생산자는 처음에는 돈보다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는걸 말하고 싶어 미치겠어서 콘텐츠를 만들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떤 형태로든 다시 돈을 벌게 된다. 설령 돈을 한 푼도 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관계없어져버린다. 하고싶은 얘기가 쌓이다못해 터져나오는 수준에서 책을 쓰는 전문가라면, 이미 비즈니스 세계에서 돈을 얼마든지 벌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