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 후 1년, 밥벌이가 안되는 꿈이라서 밥을 끊었다.

들어가며 : 사표 후 1년, 4000만원 대신 내가 얻은 것 ↩ 이전 글이 포털 다음(Daum) 메인에 걸리면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많은분들이 읽어주실 줄은 몰랐기 때문에 한편으론 의아하면서도 한편으론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래의 글은 이전 글에서 이어집니다만 이전 글을 읽지않고 읽어도 괜찮습니다.


나는 이제 사회가 만들어준 직함같은건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무언가를 갖고 있는것도 아니다. 인간문화제도 아니고 무형문화제도 아니다. 나는 그냥 나일 뿐. 나는 나로서 존재한다. 지금껏 2권의 단독저서를 내면서 저자이자 작가가 되었고 각종 강연을 하다보니 강사가 되었으며, 블로그가 티스토리 우수블로그에 선정되면서 파워블로거가 되기도했다. 군복무 시절엔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었고, 학생일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나는 나'를 제외하면 그 무엇도 나를 지칭하지 않는다. 더 이상 나는 스토리텔러도 아니고 프로페셔널한 직장인도 아니다. 사표를 냈기 때문에 디지털미디어 문화콘텐츠 프로젝트 매니저는 더더욱 아니다.

나는 그저 나다. 이것이면 내가 삶을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데다 내가 무언가를 하는데 장애물이 없으므로 오히려 더 가벼운 인생을 마주할 수 있다. 가령 내가 만약 대학교수였다면 길거리에서 힙합공연을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지레짐작하기로 대학교수는 길거리 힙합공연과는 거리가 멀다. 법으로 금지되어있는게 아닌데도 대학교수는 왠지모르게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면 안될 것 같다. 노래방에서 대중가요라면 모를까. 다행스럽게도 나는 대학교수가 아니기 때문에 마음껏 길거리에서 노래할 수 있다. 이것은 통념. 통념은 도대체 누가 만들고, 누가 인정하길래 이토록 큰 힘을 발휘하는가.


실행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실행이 답이다>란 책이 있다. 책 내용은 몰라도 실행이 답이라는 말은 인생에서 괜찮은 조언이 될터다. 그렇다면 좋은 의미에서의 실행이 아니라 나쁜 의미에서의 실행, 말하자면 사회적 통념에서 거부될법한 실행도 괜찮은 조언일까? 정년 보장되고, 연봉 4000을 주는 회사에 사표를 쓰는 실행조차 답이 될 수 있는가.

사표 실행과 보류. 두가지 갈림길에서 나는 사표를 실행해버린 사람이 되었다. 무언가를 실행하는 사람의 삶은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결과가 도출되고 거기에서 많은 기회들과 경험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행에는 위험도 함께 따라온다. 실패할 위험, 다칠 위험, 죽을 위험뿐만 아니라 그 밖의 다양한 위험요소들이 하이에나처럼 도사리고있다. 그래서 실행하는 사람은 위험을 무릎쓰는 사람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위험보단 안전을 택하는 사람이라 볼 수 있다.

위험을 무릎쓰는 행위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때로는 보수적인 잣대로 한발짝 앞으로 내닫기보다 돌다리를 두드리며 안전을 검토해야할 때가 있다. 문제는 언제가 앞으로 갈 때이고, 언제가 멈춰서야할 때인지를 도대체 판단할 수가 없다는데 있다. 이런 사실을 깨닫고 난 후, 나는 점점 더 직관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직관이야말로 앞으로 갈 때와 멈출때를 알려주는 가장 정확한 신호였다. 그외엔 믿을만한 근거가 어디에도 없었다. 언제나, 어떤 경우에도 찬성과 반대가 있었다. 실행 관점에서도 찬성은 실행이고 반대는 실행하지 않는 것이었다.


밥벌이가 안된다면 밥을 끊자

"왜 죽기보다 싫은 직장에 다니면서 돈을 벌죠?"라고 물어보면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죠!"라고 간단하게 말할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 솔로몬도 해결하지 못할 법한 인류역사상 최대의 질문.

나는 얼마전부터 단식을 시작했다. 다이어트를 위해서도 아니고 정치적인 목적이 있어서도 아니며 건강을 위해서도 아니다. 밥먹는게 죽기보다 귀찮아서도 아니고 어떤 일을 하기위해, 이를테면 권투 대회를 나가기위해 감량과정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 자취생들이나 혼자사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나 역시 '오늘은 무엇을 먹어야할까'에 대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지금껏 스트레스를 감내하면서도 밥을 굶는것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단지 밥을 굶지않기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직장에 들어가는가. 행복을 포기하고, 자유를 포기하고 얻는게 고작 밥인 상황은 얼마나 슬픈가. 직장에 들어가는게 무조건 밥을 위해서는 아니겠지만 사실 밥벌이 관점도 무시할 순 없지않나. 나는 얼마전까지만해도 간헐적으로 단식하는 사람이나, 산속에 있는 절간에 들어가서 2박3일동안 갱생캠프처럼 굶어가며 마음 수양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해할 수 있다. 단식을 해 본 결과, 자기충만감이 장난이 아니다. '몇 끼 굶어봤는데 별거 아니다.'라는 감정부터 '밥벌이에 연연하지 않아도 괜찮네', '아무것도 아닌 밥 때문에 내가 왜 지금껏 그렇게 살았던가', 그리고 '더 이상 밥벌이에 연연하지 않고서도 나는 어떤 것을 할 수 있다'는 느낌까지. 상당히 긍정적이고 에너지넘치는 기분이 들었다. 스스로 선택한 단식의 효과였다.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돈이 안되는 일을 하지 않으려는 이유 역시 밥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나는 역으로 생각해서 먹는걸 제외하고 내가 하고싶은걸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것이 내 의지고, 목표고, 꼬르륵 소리를 음악삼아 해야만할 어떤 의무였다. 밥벌이가 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밥을 끊겠다. 아니, 끊는다기보다 줄이겠다. 하루에 2끼를 먹는다고 가정하고 하루에 1끼를 줄이게되면 짧은 기간일지라도 밥먹을 수 있는 기간이 2배로 늘어나게된다. 그러면 내가 밥벌이를 신경쓰지않고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기간 역시 2배가된다. 내가 하고싶은 일은 내 인생과도 같다. 내 자유는 내 것이고 내 시간은 내가 써야 옳다. 밥을 끊는 한이 있어도 이것은 포기할 수 없다. 그렇다고해서 일주일내내 물만먹고 쫄쫄 굶어보는 시도를 하는건 미련하다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할려면 에너지가 있어야할테고, 그 에너지는 식사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결국 최소한의 식사만을 추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비만, 당뇨, 성인병 등 현대인들의 고질병 대다수가 과식에서 비롯된다. 음식이 많아도 너무 많아 문제고, 구할 수 있어도 너무 쉽게 구할 수 있어서 문제다. 과거 원시인처럼 아침부터 밤까지 삼시세끼 먹는 것에만 해당하는 일을 한다면 또 모를까. 의도적으로 식사량을 줄이지 않는다면 고도비만, 지방간은 남의 말이 아닌 세상이다.

어쩌면 단식을 하는 일은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쨌건 건강도 챙기고 몸의 독소도 빼낼 수 있다는 이득도 있다. 배가 고프고, 쓸쓸해지는 기분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고인이 된 구본형 작가의 <깊은 인생>은 최근에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인상깊은 책인데, 그 역시 과거 무명시절 단식을 의도적으로 했었다는 부분을 읽고 나는 위로와 동질감을 동시에 느꼈다. 내가 단식을 시작했던 이유와 그가 단식을 시작했던 이유가 흡사했던 까닭이다. 의외로 작가들 중에는 의도적으로 잠깐씩 단식을 하는 경우가 많음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오늘날 잠깐의 단식은 보편화되고 있다. 단지 그 이유가 다를 뿐.


사회적인 바보

과거 옹기종기 모여살던 마을 동네에는 정신적으로 약간 모자라보이는 바보같은 녀석이 한 두명쯤은 있기 마련이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약자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내 눈에 그들은 참 행복해보인다. 현실에 만족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막노동이든 아르바이트든 신문배달이든 그걸하고 하루하루가 즐거워보인다. 돈에 눈이 먼 악덕업주는 그들에게 최저시급도 지급하지 않으면서 노예처럼 부려먹기도한다. 달콤한 말로 그들을 속여 그들이 뼈빠지게 모은 수십만원을 강탈하거나 절도하기도한다. 이런 소문들은 시장통에서 지내다보면 심심치않게 들을 수 있다. 그런점에서 그들에겐 보다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참 바보같지만 아름다워보이기까지하는 그들. '왜 저렇게 사냐...'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 지금 애처로워 보이는건 그들이 아니라, 직장인 일때의 나와 자신이 하고싶어하는 일들 중 아주 사소한것도 포기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그토록 똑똑하고 지식인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솔직한 인생을 비판하는데는 도가 텄지만 정작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볼 용기는 없기에 불쌍하게 보이기까지한다.

일반적인 시선으로 나를 보면, 나는 사회적 바보다. 모든걸 가질 수 없다는 세상의 진리에 의해 당연하겠지만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하고 꿈을 찾아가는 과정에선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다. 그것을 포기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따라 인생은 갈림길로 접어들고, 서로 다른 길 위에서 판가름난다.

여전히 한국에서 다양성은 진정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렇게사는 사람, 저렇게사는 사람, 우선순위가 다른 사람, 성향이 다른 사람들이 섞여 사회집단을 구성하고있지만 다수결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은 그 순간부터 바보가 된다. 예로부터 단결을 중시하고, 공통된 의견으로 똘똘 뭉친, 중국집에서 '짜장면 통일!'이 아주 멋져보이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는 탓이다. 결국 한국에서 자신의 꿈을 펼쳐보일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사회적 바보를 자처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다수결에서 빠져나오기란 쉬운 일이 아니고, 그만큼 꿈을 향해 질주하는 삶도 녹록치만은 않다.


어른의 인생

지금 우리나라에 여행 전문가 아닌 사람이 없고, 사진 전문가 아닌 사람이 없다. 여행은 문화적으로 가장 성공한 유행이고, 각 도시들은 똑같은 '문화관광'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관광콘텐츠를 개발하고있다. SNS에는 정치 전문가 아닌 사람이 없다. 그리고 우리들 주변에는 직장생활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없다. 직장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전문가처럼 행동하고 말한다. 주위엔 온통 전문가들 뿐이다.

나는 사회가 무엇이고 성공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때, 무엇이 인생이고 무엇이 행복인지, 내 일(job)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틈도없이 사회로 떠밀리듯 밀려나갔다. 단지 나이가 되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전형적인 교육과정에서 나는 삶에 있어 중요하다싶은 그 어떠한 것도 배울 수 없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직장 전문가들은 이래라 저래라 말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나는 알게 모르게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성공만을 바라보게되었다. 직장, 돈. 내가 원하는건 그런것이 아니었는데도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그걸 원하게되는. 아니, 원하는 것처럼 생각하게된다. 그렇게 살면서, 그렇게 지내면서 나 역시 직장생활 전문가가 되고, 세월이 지나 '또 다른 나'를 만났을 때, 전문가를 자청하며 그들에게 이야기하게 되겠지. "너는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평범한 삶을 살도록!"

성공을 위해 살았던 지난 날들을 되돌아보면 소중한 것들을 참 많이도 잃었다는 생각이든다. 모든게 찰나였다. 스치듯 놓쳤던 것들이 떠오른다. 어디가서 당당하게 자랑할만한 추억도 없고 경험도 없다. 많은 돈을 써가며 떠났던 여행에서 건진거라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올릴 인증샷과 피로 뿐이었다. 새롭게 알게된 사람도, 고생하며 울고 웃던 상황도 없다. 이게 어른이었고 샐러리맨의 생활이었다. 어른의 인생은 재미도 없고 흥미도 없을 뿐만 아니라 답답하고 지루했다. 하루하루가 똑같이 반복되었다. 그 무엇도 나를 흥분시키지 않았다. 흥분할만한 상황 자체가 없었다. 평이했다. 높낮이 없는 삶. 자연스럽게 나는 현실주의자가 되었다.


꿈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가?

"제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진심으로 그렇게 이야기한다. 운이 좋은 극소수를 제외하면 젊을 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경우는 잘 없다. 모르기 때문에,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평범하게 살아가면서 찾아보면 가장 좋겠지란 생각으로 살아간다. 계속해서 적극적으로 찾아나가는 사람은 한동안 바보취급당한다.

위대한 화가, 예술가, 작가, 싱어송라이터, 랩퍼, 연예인, 여행자,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무명시절이나 초창기에 어려운 시절을 경험한다. 그들은 꿈을 위해, 하고자하는 목표를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스스로의 인생을 도박에 걸듯 삶에 베팅한다. 자신의 심장을 뛰게 하는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한편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한 행동도 멈추지 않는다.

그 일을 정말 좋아하는지, 사랑하는 일인지 판단하는 잣대는 '그 일을 위해 어떤 것도 감수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예를들어 뮤지션이 되고싶은 사람은 음악을 만들고, 장비를 구매하고, 길거리 공연을 하고, 데모CD를 제작하기 위해서 일정한 돈이 필요하다. 더불어 생활비도 필요하다. 그들은 음악에 투자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파트타임 일을 찾거나 새벽부터 신문배달, 우유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남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쪼개 미친듯이 음악에 몰두한다. 만약 정식 직장에 들어간다면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보다 확실하게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음악생활에 있어서 보다 쾌적한 환경을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하지않는다. 돈보다 음악하는 시간, 음악을 즐기는 과정 자체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즉, 최우선순위가 음악이된다. 나머지는 최우선순위를 위한 일련의 작업일 뿐이다.

스티브 잡스는 "과정이 곧 보상이다."라고 말한다. 나는 연봉 4000만원에 가까운 직장에서 일하며 돈 맛을 꽤 본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도 직장만 있지 직업은 없었다. 퇴사 후 지금은 백수로서 연봉 0원이지만 이 과정은 너무나도 흥분되고 즐겁다. 어떤 밝은 미래가 확보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다. 내 삶을 내가 원하는대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 과정 자체가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나는 과거 넥타이맨이었지만 지금은 최저시급에 딱맞는 아르바이트를 할 각오도 되어있다. 꿈을 위해서라면 아르바이트가 대수겠는가. 허드렛일은 충분히 감당할 자신이있다. 남들의 시선 때문에, 나의 꽤 괜찮았던 과거때문에 현실에서 무언가를 하지못한다는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말로만 그런게 아니라 진정으로 그렇다. 나는 내가하는 모든 일을 사랑한다. 사랑하는 일만 하고있는 것이다. 블로그에 장문의 글을 남기는 것은 내 생활의 일부이자 내 삶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일 중 하나다. 하루를 끝마치고 잠자리에 들때마다 나는 내 블로그를 훑어보며 '와! 내가 이렇게 멋진 글을 쓸 수 있다니!'하면서 감탄한다. 길거리 힙합 공연이 끝난 밤거리에서는 '와우! 내가 꿈꾸던 그런 일을 내가 직접 하고있다니!'라면서 꿈같은 현실을 맛본다.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달콤해서 잠자는 시간조차 아까울 지경이다. 나는 매일 새벽 1시쯤에 잠들어서 6시쯤에 일어나 하루를 다시 시작한다.

'컴퓨터처럼 인생에도 포맷이 있다면 어떨까'라고 생각한적이 있다. 모든걸 초기화시키고 새롭게 출발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인간관계든, 나의 재능과 적성이든, 커리어든, 지식와 정보든. 싸그리 원점으로 되돌리고싶었다. 꼬이고 꼬인 실타래의 처음과 끝이 보이지않아 결코 풀 수 없을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인생의 포맷은 가능하지않았다. 그래서 주변환경을 바꾸고 나 자신의 마음가짐도 바꾸기 시작했다.

직장생활을 하기 전의 나와 직장생활을 경험하고 난 뒤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화려한 직장경험이 있었기에 앞으로의 삶을 더욱 제대로 맞이할 수 있게되었다. 사표 후 1년. 연봉 대신 얻었던 경험들은 연봉보다 훨씬 귀중한 것이었다. 새로운 출발. 아니, 다시금 출발. 재미있게 살자. 흥분되는 삶을 살자. 멋대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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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콘텐츠 크리에이터. 작가. 강사. 파워블로거 me@namsieon.com, skatldj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