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시언의 맛있는 책 읽기(197) :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그 어떤 책을 읽든, 심지어 가장 완벽한 고전이라 칭해지는 것을 읽어도 책의 전부를 신뢰하거나 존중하진 않는다. 가끔씩은 내가 쓴 일기이나 칼럼, 혹은 내가 직접 집필한 '내 책'을 읽을 때도 그렇다. 평론가의 입장이 아니라 한 명의 개인적 의견을 가진 독자로서 취할건 취하고 버릴건 버리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는 셈이다.


독서란 행위는 무엇보다 하나의 주제를 다양하게 조망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소위 '운명론'이라 불리는 어떤 매커니즘을 약간이나마 믿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다룬 많은 책들을 찾을 수 있다. 누군가는 운명론을 신뢰하고 누군가는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때로는 신뢰하고 때로는 신뢰하지 않는 편이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신뢰하는 쪽에 가깝겠다. 그래서 운명론을 다룬 책들을 읽는건 개인적으로 재미있다.

이번 책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역시 전체적인 맥락은 운명론에 입각한다. 무언가가 우리를 어떤 특별한 길로 이끄는 듯한 느낌이나 충동을 느낄 때, 혹은 삶을 반전시키는 사건들을 알리는 신호, 이를테면 “그래, 나는 이 일을 해야 해. 나는 이걸 가져가야만 해.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감정적 증거를 강하게 느낄 때, 우리는 운명론을 생각하게한다. 과거시점이 아니라면 이런 강한 느낌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생각들이다. 감정적 문제이고 과학적인 근거를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을 바꾼 많은 위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범지구적인 인기를 끌었던 가수나 작가, 위대한 예술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당장 코앞에 다가온 어떤 일은 마치 '운명처럼'다가온다. 구본형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운명을 가장한 필연'이다.

책의 부제목이 <천재 심리학자가 발견한 11가지 삶의 비밀>이다. 저자는 우리의 삶에는 세상의 이론이 정의내리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으며, 우리 각자에게는 ‘살아가는’ 이유가 아닌, ‘지금, 바로 이곳에 살아 있는’ 이유가 처음부터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런 이론은 단순히 사이비 종교처럼 무조건 믿으라고 강제적으로 설득시키는게 아니라 다양한 증거와 인터뷰를 근거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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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이미지를 발견하려면 대중적이지만 낡아빠진 심리학 특을 일단 옆으로 치워야 한다. 그 틀은 삶을 충분히 드러내주지 못한다. 오히려 그 틀에 끼워 맞추기 위해 삶을 재단하게 된다. 유아기부터 문제 많은 청년기를 거쳐 중년의 위기와 사그라져 가는 노년, 결국 죽음에 이르기까지 단계별로 전개 발전되는 삶…. 이것은 이미 짜놓은 지도를 따라 터벅터벅 걸어가는 일, 다시 말하면 어딘가에 도착하기도 전에 당신이 어디에 가 있는지 미리 말해주는 일정표 위에 서 있는 것과 같다. 또는 보험회사 직원이 계산해서 미리 알려주는 평균 통계수치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러한 프레임 안에서 당신의 인생 경로는 미래완료형으로 기술되며 이는 시간 순서대로 써내려가는 제출용 이력서의 경력 사항처럼 느껴진다. 이것 다음에는 저것 식으로 사건들을 죽 나열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이러한 삶은 이야기 구성이 실종된 서사와 같고, 이런 서사는 점점 더 따분해지는 주인공인 ‘나’를 붙들고 말라비틀어진 ‘경험’의 사막에서 방황한다.

이 책에는 특히 재미있는 인사이트가 나오는데 첫번째는 '원형심리학'이고 두번째는 '도토리 이론'이다. 저자는 그 두가지의 이론을 창시한 석학이다. 저자 제임시 힐먼은 바로 이 책에서 ‘나’라는 독특한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음’을 증명한다. 그리고 세상은 어떻게든 ‘내’가 이곳에 살아 있기를 원하며, 우리의 삶은 각자가 타고난 ‘영혼의 코드’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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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선명하지도 않고 확실하지 않을 수도 있다. 굳이 말하면 그 부름은 나도 모르게 작은 시냇물에 가볍게 발을 담그는 일과 비슷하다. 은연중 강둑으로 나왔다가 바람에 흔들리듯 그 시냇물을 만난 것이다. 당신은 훗날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서 ‘아, 운명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구나’라고 깨닫게 된다.

힐먼 교수는 현대인들이 방황하는 이유가 삶이 말하는 커다란 끌림, 혹은 운명을 이끄는 키워드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현대 과학과 심리학의 그늘 아래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자기계발 시장이 커짐과 동시에 그들의 공허함과 목마름이 심화되고 있는 이유 또한 여기서 찾고 있다.

힐먼 교수는 “인식하는 방식 자체가 바로 존재하는 방식”이라 일갈하며, 상식을 파괴하는 상상력을 가지라고 말한다. 살다보면 세상이 간혹 “운명이군”이라는 문장 하나로 정의 내려질 때가 있으며, 인생은 때때로 절대적이며 피할 수 없는 끌림과 충동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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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운명을 인식하는 감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런 유형의 신호와 회상은 폭력적인 공포의 기억만큼이나 강렬하게 한 사람의 일대기를 채우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상대적으로 불가사의한 이런 순간들은 옆으로 밀리곤 한다. 우리 인생론은 이런 불가사의한 순간보다 과거의 상처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즉 그 과거의 상처를 극복해 나가는 ‘영웅적인’ 존재로 인생을 설정하려 한다는 뜻이다. 어린 시절의 상처와 분노의 여신이 던지는 돌팔매에도 우리는 처음부터 고유의 기질을 드러내는 이미지를 타고나며, 그 기질은 어느 정도 변하지 않고 지속되는 특성을 보인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질의 힘에 대해 이야기한다.

확실히 어떤 운명적인 사건은 많은 시간이 흐른뒤에야 판결난다. '그래, 그때의 그 일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지'같은 식이다. 당장은 '지금의 일이 나를 어떻게 만들것인가?'를 그 누구도 확답할 수 없다. 따라서 운명이라고 하는것은 기본적으로 과거완료형이기 때문에 지금 하는 어떤 일에 완벽한 합목적성을 부여하는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결국 중요한건 자신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직관을 따르는 일이다.

오늘날 운명론 같은건 인기가 없다. 거의 멸종했다고봐도 무방할 것 같은데 분명한 것은 그걸 믿고 따르는,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성공했거나 아니면 자신의 직관을 믿고 세상을 바꾸는 많은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대중들은 신년운세나 타로카드 점 같은건 의외로 잘 믿으면서도 인생에 절대적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는 운명에 대해서는 그다지 믿지않는 모습이다. 어중간하고 불확실한 것보다는 확실한 것을 원하는 인간 심리기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때문이리라. 예를들어 좋은 학교에 들어가면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이고, 공부를 잘하면 좋은 직장에 갈 것이고, 좋은 직장에 가면 좋은 반려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판단하는 식이다. 모든걸 프로세스화 해버린다. 다른 세대들보다 훨씬 더 불안한 요즘 대한민국의 2030 세대가 특히 그렇다. 모든게 로드맵이고 모든게 프로세스화되어있다. 이것이 무조건 나쁘다는건 아니지만 다양성이 사라지고 모두가 똑같은 프로세스를 똑같이 따라하다보니 프로세스화할 수 없는 어떤 일을 마주했을 때 문제가 생기는 건 좋은 현상은 아니라고 본다.

실제든 아니든 힐먼 교수의 끌림과 운명의 키워드 이론을 응원하고 싶어진다. 내 인생의 과거를 돌아보면 오히려 운명적으로 했던 많은 일들 덕분에 오히려 프로세스화되었던 것 같다. 나는 과거 모 대학 사범대에 원서를 냈다가 후보 1번으로 보기좋게 떨어졌지만, 그랬기 때문에 현재 작가가 되었다. 만약 합격했다면 나는 작가는 커녕 글 같은건 쓰지 않는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운명론은 특히 안 좋거나 기분 나쁜일이 발생했을 때야말로 당장의 실제적인 도움이 된다.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는걸 무척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상대방이 약속시간보다 30분 늦게 도착한다고 급하게 이야기하더라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만약 내가 30분 뒤에 딱맞춰 나왔다면 다른 사람에 의해 교통사고가 났을지도 모를 일이므로, 지금 여기에서 남는 30분을 어떻게 잘 활용할지 생각해보자."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싶다면 내가 누구인지부터 알아야할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당신의 특성이 곧 당신의 운명"이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 8점
제임스 힐먼 지음, 주민아 옮김/토네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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