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시언의 맛있는 책 읽기](116) 청춘인문학
- 책 도서/독서 기록
- 2012. 5. 14.
많은 용기와 위로, 그리고 응원이 절실한 청춘들은 양질의 책에서 인생에 대한 시각을 얻을 수 있다.
<청춘인문학>은 그러한 현실을 살아가는, 무언가를 갈망하는 청춘들의 갈증을 해소하고자 인문학적인 논리를 펼치고 있다.
그렇다면 인문학적인 논리란 무엇일까?
이 책을 읽고자하는 독자라면, 인문학적인 통찰력이 어떤것인지 무척 궁금할것이다.
인문학이란, 이름에서 나타나는것처럼 인간에 대한 연구를 하는 학문이다. 대체적으로 철학이나 언어, 문학, 고전 등이 인문학에 속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인문학은 정확하게 정의되어 있지 않다. 워낙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으며, 모든 인간들의 삶에 깊숙히 포함되어 있는 그 어떤것을 연구하는것이 인문학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숨을 쉬는 이유를 알든 모르든 숨은 계속해서 쉬고있는것처럼, 인문학도 그냥 당연하다는 듯한 느낌. 또는 세상 전체를 지배하고있는 큰 손이라는 느낌의 학문이다. 때문에 제대로된 정체성을 정의하기 어렵다가, 그나마 자연과학이 발전하면서 비교급으로 정의할 수 있게 된 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쉽게 생각해서, 모든것을 관찰해서 수치화시키고 데이터로 이야기하는것이 과학이라면, 모든것을 생각이나 사고의 깊이, 현재에 대한 예측이나 치열한 고민들로 이루어진것이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인문학은 유동적이다.
이 책 <청춘인문학>에서는 인문학적인 토대위에 현재의 청춘들의 문제점을 올려두었다.
한마디로 이 책은 '청춘들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담론이다.
책 표지와 본문 내용의 사진을 보고 느낀 독자들도 있겠지만,
개인적인 느낌으로 이 책은 일단 '조금은 교과서'적이다.
인문학적인 스타일로 인해 책 내용도 조금 교과서적이지만, 우선은 책에서 풍기는 향기가 교과서처럼 느껴졌다.
책이란것은 책장에 꽂아두고 구경하는것이 아니라, 내용을 읽고 핵심을 자기것으로 만드는것에 그 목적이 있다.
따라서 책에서 느껴지는 교과서적인 감각을 좋아할지 말지는 독자의 성향 몫이다.
나는 학창시절 교과서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간만에 교과서를 읽는다는 망상에 빠져들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 <청춘인문학>에서 가장 좋아하는 꼭지가 바로 여기다.
' 대학의 종말 '
블로그에서 연재중인 칼럼 <청춘 칼럼>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있고,
또 개인적인 강연에서도 동일한 내용을 어필한적이 있다.
한마디로 대학에 대한 부분만큼은 저자와 나의 생각이 비슷했다.
현존하는 청춘들의 문제들 중 대부분의 것들은 대학과 연관이 있다.
예를들면 입시, 취업, 스펙 등이 대학과 무관하지 않다.
대학을 터미널로 하여 학생들은 등록금으로 인한 빚쟁이로 사회에 진출하고, 기득권은 거기에서 빼먹는 차익으로 더욱 견고한 기득권을 행사하게 된다. 대학이 대학으로서의 역할을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생기는 불합리한 조건이다.
이 불합리한 조건의 피해자는 고스란히 청춘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것이다.
<청춘인문학> 중 '대학의 종말'에서는 위와 비슷한 내용을 이야기하는 논리를 찾을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아직도 대학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이 부분을 읽어보라.
이 책이 좋은점 중 한가지는 청춘 개인에게 포커스를 두고있지 않다는 점이다.
최근들어 나오는 많은 자기계발 서적들 중 청춘을 타겟팅한 책을 보면, 대체적으로 청춘 개인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경우가 있다. 물론 개인도 발전을 해야하는것은 맞지만, 청춘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적인 문제점이라든지, 무슨무슨주의로 인해 사람들이 이상하게 반응하는 현상이라든지, 무엇이 청춘들의 생각을 지배하는지, 인문학적인 여러 사상가의 사상들과 현재의 청춘 문제를 동시에 비교해볼 수 있다.
아쉬운점은 논조가 조금 딱딱하다는것이다. 논조라기 보다는 논리 자체에 딱딱함이 묻어있는 느낌이 들었다. 인문학적인 내용들로 점철되어 있으므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쨋거나 그런 느낌은 들었다.
꽤나 어려운 용어들도 눈에 띈다.
평소 독서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술술 읽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반면에 평소 독서를 즐겨하지 않는 독자라면 턱턱 막히는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정도는 읽을 수 있어야 현대를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지 않을까?
만일 이 책을 읽다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과 문장들이 자주 나오는것처럼 느낀다면, 좀 더 많은 책과 철학적인 내용의 공부가 필요하다는 계시로 생각하고 독서에 시간을 투자하면 좋을것이다.
많은 청춘들이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위해 방황을 정당화하고 있다.
물론 일정부분 방황하는것은 나쁜 선택이 아니다.
문제는 방황이 방황으로 끝난다는데 있다. 방황을 했으면 방황하면서 얻었던 어떤 경험이나 실력이나 생각이나 사고의 깊이가 늘어나야 한다. 그것도 다른 사람 눈에 띄도록 늘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방황했던 그 세월이 고스란히 사라진것이나 다름이 없다.
저자가 이야기하는것처럼 좀처럼 성장했다거나 제대로 된 시간을 보냈다고 느끼기 힘들어하는 많은 사람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 그들의 세월은 고작해야 돈 몇 푼에 맞교환되었거나 '방황했다'는 정당함에 포장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제는 바껴야 할 것이다.
<청춘인문학>의 내용을 빌리자면, 자신 안의 삶을 어떻게 키우고, 어떻게 삶에 기여하고, 삶이 어떻게 자라나는지, 실력은 어떻게 쌓이는지에 대해 중점을 맞춰야 한다. 한마디로 조금씩 조금씩 발전하고, 점점 더 좋아졌다고 자부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내용은 이 책의 핵심 메시지다.
비록 책의 느낌이 교과서적이긴 하지만, 내용 자체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청춘인문학>은 일반적으로 알고있는 '~~하라'는 식의 내용보다는, '이런이런 문제가 있다. 그것은 이렇기 때문이다' 정도의 내용들로 채워져있다. 정답을 제시해주는 느낌을 얻지 못했다. 결국 문제를 제시하고 거기에 대한 정답은 독자에게 남겨두는 형태다.
이 정답에 대한 여백은 생각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준다.
따라서 정답을 얻고자 한다면 필히 조금의 생각을 해야할터다.
청춘들이 코 앞에 마주한 현실적인 부분들을 이 책은 꼬집어준다.
이 책에는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인사이트들이 집약되어 있다.
행동강령을 강요하기보다는 문제점을 알려주고 당신에게 선택을 요구하는 <청춘인문학>
현실에 불편함을 느끼고, 분노를 체험하고, 돌파구를 마련하고 싶은 청춘이라면 일독해볼만하다.
청춘인문학 - 정지우 지음/이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