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테마마을, 영덕 인량 전통테마마을에서 문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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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테마마을, 영덕 인량 전통테마마을에서 문향하다.

날씨가 무척 좋은 날이었다. 아니, 더웠다. 5월 中 꽤나 더운 날이었던만큼 옷은 반팔이었고 체감온도는 한여름을 방불케했다. 처음 인량마을 취재요청을 받았을 땐 그 이름이 생소하여 흥미가 생겼다. 태생이 궁금증을 못참는데다 여전히 동심과 호기심을 간직하고 있다고 믿는 한 명의 작가로서, 아니면 블로그 운영자로서의 촉이 발동했다. 궁금하기도했고 한편으론 가보고 싶었다. 사실 내가 꿈꾸는 최종적인 인생의 목표가 있다면 여행하면서 글쓰는 삶일지도. 나는 이런 조용하고 자유로운 취재활동이 좋다. 급하게 살고싶지 않은건 현대인들의 소망이다. 인량마을은 경북 여행 좀 다녔다고 자부하는 나도 처음듣는 곳이었기에 희소성 콘텐츠란 관점에서도 만족스러웠다. 더욱 조용한 취재를 위해 평일 오후에 시간을 내어 방문코자 했지만 급한 사정이 생기는 바람에 주말로 일정을 변경했다. 어느덧 주말이 왔고, 차에 시동을 걸고 영덕 인량마을로 향했다. MP3에선 최신가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비게이션에선 2시간이 소요된다는 안내음성이 나왔다.

취재 요청을 받고 편집 스타일을 조금 알아둘까해서 컬처라인 홈페이지와 받아온 도서 자료를 일부 검토하였다. 익히 다녀본 곳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어서 기쁜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소개 글들로 정형화되어 있는 것 같아 아쉬웠다. 가령, 인량마을을 취재한 후 사진 첨부하고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인량마을 소개 글과 역사에 대한 내용을 상세히 소개하는 식이었다. 음? 나쁘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좀 더 실험적인 시도를 해보고싶었다.


다양성이야말로 문화의 핵이다. 보편적인걸 거부하고, 통념을 깨고, 색안경을 타파하는게 문화인이 할 일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런 다양성은 요즘같은 소셜미디어 시대에도 어울린다. 그래서 이번 글은 단순히 인량마을을 소개하는게 아니라, 인량마을에서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어설프게 버무린 수필같은 스타일로 선택했다.


보통 영덕이라고하면 고래불같은 동해바다를 품은 해수욕장, 강구항으로 대표되는 영덕 대게, 영덕의 랜드마크인 해맞이공원 등을 떠올린다. 최근에는 해파랑길과 블루로드가 정비되면서 선택지가 조금 늘긴 했지만 항구도시인 영덕에서 전통마을이라니! 초등학생이 엄마 립스틱을 몰래 바른것마냥 어색함을 느끼면서 인량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에서 주차공간을 찾지 못해 한참을 망설이다가 나라골보리말체험학교에 주차한 후 움직였다. 나라골보리말체험학교는 마을고택 탐방과 떡 다식 만들기 같은 전통체험, 보리밟기 및 수확, 여치집 만들기 등의 체험을 해 볼 수 있는 곳이다.


처음 가 본 인량마을은 역사와 전통이 숨쉬는 마을이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후보에 올라도 손색없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까닭에 관광객들의 발길은 없었다. 인량리에 사는 할배(할아버지) 몇 명이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바삐 가는 모습이나 주민들이 큰 나무 그늘에 앉아 더위를 식히는 모습이 내가 인량마을에서 본 사람들의 행동 전부였다.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급하게 움직이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나는 마치 이방인이 된 듯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인량마을을 휘젓고 다녔다.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문득 느낀점이라면 미처 생수 한 병 준비 못했다는 것. 근처에 슈퍼같은건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보니 내 입 속은 사막화가 이루어져 한 여름 강아지처럼 '헥헥' 거려야만 했다.


인량리전통마을은 500년된 기와집들이 즐비해 있었다. 그간 선비 정신에 기초한 문과 도가 전통으로 지켜져 내려오며 '작은 안동'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는데, 그것보다 더 압권이었던건 주변을 휘감고 있는 산맥의 풍채였다. 나는 그 웅장한 산새에 크게 놀랐다. 북쪽으론 칠보산과 등운산이 장군의 위용을 뽐내며 당당히 서 있었고 남쪽으론 들판이 탁 트여 있었다. 이 모습은 매우 한국적이면서도 또 이국적으로 다가왔다. 그 모습이 학이 양쪽 날개를 펼치는 듯한 형상이어서 산 아래의 마을인 인량리를 나래골 또는 익동(翼洞), 비개동(飛蓋洞)이라고 불렀다는 안내 문구가 떠올랐다. 과거 창수면 제일의 규모를 가진 명문지가 바로 인량 1, 2, 3리 마을이었다고 하니, 이곳에서 배출된 인재들은 풍경의 기운을 받은게 분명하다.


문화해설사도 아닌 사람이 'OO당'은 누가 짓고, 'OO고택'은 역사가 어쩌고 그러면 딱 '꼰대'소리 듣기 좋은 세상이다. 이런 내용은 현장에 있는 이정표와 안내판에서 얼마든지 읽을 수 있으므로 관심있으면 직접 가서 읽어보면 된다. 영덕문화관광 홈페이지나 컬처라인 홈페이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오히려 이 곳이 훨씬 정리가 잘 되어 있다). 우리가 여행을 하는 이유는 현실을 벗어난 곳에서 색다른 기분과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그런점에서 볼 때 인량마을에서 느끼는 감정이란건 전통가옥을 앞에 두고 그 깊은 역사를 상상하며 묵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는 500년된 기와집 입구에서 찰나를 살아가는 삶의 허무함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얻었다.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테마마을이었다. 조용해서 좋았다. 도시의 소음은 사람을 금새 지치게 만드니까. 마음 같아서는 인량마을에 눌러앉아 6개월정도 먹고 놀면서 글만 쓰고 싶었다. 그만큼 조용함이 매력적이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와 깔깔 거리는 웃음소리가 없어서 안타까웠다. 주의력결핍장애를 가진 사람도 인량마을에서만큼은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고요하고 기운이 좋다.


대부분의 종택에서 현재도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부를 완벽하게 둘러볼 순 없었고, 방해나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마을이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있다보니 꽤나 시간이 소요되었다. 어떤 곳은 한옥스테이 안내판을 걸었고, 몇 곳은 '사람이 거주 중입니다'라고 경고문구를 걸어두기도했다. 삼벽당 마당에서는 운 좋게 펌프를 발견했다. 요즘 아이들은 모르겠지만 수도가 보급되기 전에 물을 이용하던 주요 수단인데, 마중물을 넣어야하는데다 리듬을 타야만 제대로 물이 올라오는 까다로운 녀석이다. 나도 어릴때 몇 번 보고 그 이후부터는 못 보다가 보물을 발견한 해적처럼 펌프를 찾고는 환호성을 지르며 추억에 젖었다. 하지만 수도관이 폐쇄된지 오래라 직접 길어 올릴 순 없었다.


초입부터 곳곳에 벽화가 있었다. 귀여운 매력을 느끼다가도 전통마을에서 알록달록한 벽화를 만나니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자가용만 타고오지 않았다면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 용암종택을 앞에두고 막걸리 한사발 시원하게 들이킨 후 노래 한소절 읖조리고 싶었다. 사랑채가 팔작지붕으로 되어있어 독립된 것처럼 보이는 지족당에선 사랑하는 사람과의 좋은 시간이 떠올랐다.



오봉종택의 솟을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건물의 미(美)는 대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잔치를 벌여도 좋을만큼 깔끔했다. 이렇게 좋은 풍경을 단순히 눈으로만 봐야한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문화행사가 접목되고 마을 전체가 콘텐츠화되어 실제로 인량마을에서 잔치를 여는건 꿈일까.

매번 똑같은 곳만 가면 질리는 법이다. 갈데 없다고 하소연 해봤자 남는건 낮잠 뿐이니 색다른 여행지를 찾는 사람들이라면 영덕 인량리 전통테마마을로 향해보자. 책 한권 들고 시원한 나무 그늘 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추천하고싶다. 아! 생수 한 병 정도는 꼭 준비하시길!

  • 이 글은 컬처라인 문화포커스 2015년 전반기호 기고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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