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시언의 맛있는 책 읽기(201) -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
- 책 도서/독서 기록
- 2015. 5. 28.
남시언의 맛있는 책 읽기(201) -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
책 제목을 처음 마주한 후 느꼈던 감정은 자기계발서적 또는 경제/경영 서적이라는 인상이었다. 하지만 내용은 그것과 전혀 무관한 사랑을 주제로한 소설이다. 토머스 하디의 소설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의 반전은 제목에서부터 시작된 셈이다.
일단 책이 다소 두꺼운 편이다. 분량이 꽤 된다. B6 사이즈 600페이지 정도에 촘촘한 텍스트로 구성되어 있어 스르륵 훑어보는 독자 입장에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질겁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용 전개가 빠른편인데다 '사랑'이라는 주제로 여러 일상적 사건들이 교차하고 있어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이 책은 19세기 영국 작가 토머스 하디가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예술세계에선 작품의 제목을 따라간다는 풍문이 있는데 토머스 하디 역시 이 책을 통해 '성난 군중으로부터는 멀리'떠났고, '성나지 않은 대다수의 군중에겐 가까이'갔다 하겠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러브스토리 10'(가디언 선정),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피터 박스올)에 꼽히기도 했다는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건 2015년, 그러니까 올해에 곧 동일한 제목을 가진 영화(캐리 멀리건 주연)가 개봉한다는 사실이다. 아직 개봉일이 표시되지 않고 국내에 개봉할지도 미지수지만 기대치는 높다.
사랑에 미친 4명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현명함에 미모까지 겸비한 여인 밧세바 에버딘과 각양각색의 매력을 갖춘 3명의 남자들이 치열한 사랑싸움을 벌인다. 독자 입장에선 누가 좋은 사람이고 누가 나쁜 사람인지 쉽게 알 수 있지만 에버딘은 그렇지 못해 아쉬움과 탄식을 자아낸다. 바로 이 부분이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의 매력이다. 결국 좋아보이는 사람이 아닌 자신이 끌리는 사람과 결혼에 성공하지만 파국으로 치닫게되면서 독자들을 한편으론 웃게하고 한편으론 울린다.
작가가 남자인점을 고려하면 매우 이색적인 소설이다. 여자의 심리상태를 그 어떤 소설보다 잘 나타낸 듯하다. 보통 남자와 여자는 이성을 보는 눈이 다르다고 알려져있는데,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 씁쓸한 뒷맛이 남지 않을 수 없다. 페미니스트 문학이고 러브스토리이며 독자의 견해에 따라서는 해피엔딩이 될 수도 있고, 베드엔딩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에버딘은 거의 모든걸 갖추고 있지만 사랑하는 남자만은 갖추지 못했다. 그녀는 주변 남자의 감춰진 장점을 보지 못했고, 감춰진 단점도 보지 못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든 것들과 감춰진 모든 것들 사이에서 불행은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소설에서 남녀관계는 참으로 묘하게 흘러간다. 너무 성실하고 착해서도 안되고, 너무 평범하고 솔직해서도 안되는데다가 너무 여자를 잘 알아서도 안되는, 잘못도 없지만 답도 없는 이상한 상황이 연출된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모습, 말하자면 현대인들의 사랑과 매우 흡사해서 현재적 의미를 갖는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 책에서 표출된 토머스 하디의 우주와 풍경 묘사는 독자로 하여금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아름다운 문장은 책의 분위기와 완벽하게 어울리면서 상상의 이미지를 신속하게 그려버린다. 별다른 생각없이도 상당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들었던 생각은, 책의 주인공이 사실 작가 자신의 상상모델이 아닐까 하는 점이었다. 즉, 토머스 하디는 마치 자전적 소설처럼 자신의 모습을 주인공으로 투영한 것이 아닐런지.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 아니면 전부인지는 독자가 판단할 몫이다. 독자들은 어쩌면 이 책에서 본인과 똑같은 남자 주인공 또는 여자 주인공을 만날지도 모른다. 이번 여름엔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사랑의 바보'가 되어보는건 어떨까.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 - 토머스 하디 지음, 서정아.우진하 옮김, 이현우/나무의철학 |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