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자의 기록] 생강 500원 어치
- 칼럼 에세이
- 2012. 8. 21.
안동에는 5일장이 선다.
요즘은 재래시장이 많이 비활성화 되었기 때문에 장날인지도 몰랐다.
그 날… 마침 나는 시장에 있었다.
어떤 할머니가 양손 가득 짐을 들고 내 앞을 지나고 있었다.
맞은편 난전(길에 펼쳐놓은 가게)에는 여러가지 채소들이 즐비해 있었다.
"이거 생강 500원 어치만 주소"
"500원 어치는 못파니더"
짧은 두마디 대화를 끝으로 양손 가득 짐을 든 할머니는 되돌아서서 가던 길을 재촉했다.
아마 그 생강은 1,000원 단위로 판매하는것 같았다. 담겨져있는 양으로 미루어보건대, 아마 1,000원어치는 판매할것이다.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온 몸을 휘감았다.
시선을 아래로 내려봤다.
그때 내 손에는 무려 4,500원짜리 아이스커피가 있었다.
사실 평소에는 별 감흥없이 식사후나 간식으로 사먹는 카페에서 파는 그런 커피말이다.
순간 들고있던 커피를 집어던지고 싶었다.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많은 어르신들은 절약이 몸에 배여있다못해 아예 철철 넘친다.
우리들이 보기에는 아주 쪼잔해 보인다든지 구두쇠같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어르신들이 보기에는 우리들이야말로 낭비문화에 찌든 세대라며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산업사회로 들어서기 전의 대한민국에서부터 지금껏 살아왔기에 무조건 아껴쓰고 무조건 절약하는것이야말로 왕도로 삼을것이다.
현대인들 중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남는 반찬을 봉투같은곳에 몰래 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어르신들 중 몇몇은 몰래 몰래 그렇게 하신다. 여기에는 어떤 행위를 나쁘다고 비난하거나 좋다고 권하거나 하는 문제보다 더 큰 의미가 있는것 같다.
예전에 읽은 경제학 서적 중에 한 구절이 생각이 난다.
'푼 돈을 아끼면 무조건 부자가 된다.'
그러나 촌에 사는 할머니들보다 푼돈을 아끼는 사람을 나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그들은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푼돈을 아끼는데도 불구하고 왜 부자가 아닐까. 누군가는 그런 할머니들이야말로 진짜 부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들이야말로 소수다. 대다수의 어르신들은 하루에 버스가 딱 두번밖에 없는 구석진 촌에서 다 무너져가는 폐허같은 곳을 홀로 지키며 살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경제학 서적은 기본적으로 중산계급 이상을 독자 대상으로 하고있는듯하다. 하긴, 500원을 아끼려고 생강을 사지 않는 사람이 10,000원이 넘는 책을 어떻게 사볼것이며, 그들이 그렇게 한가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한글도 제대로 모를 확률이 높다.
우리들은 많은 교육을 받았고, 언어를 읽고 구사하는데에 지장이 없으며, 500원 정도는 얼마든지 투자할 수 있다. 그리고 돈은 절약하기보다는 재테크를 통해 굴려서 불리는것을 정석으로 삼고있다. 밥 값과 맞먹는 커피를 수시로 사먹고, 길에 떨어져있는 10원짜리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항상 돈이 없다며 투덜거린다.
그렇다면 진짜 돈이 '있는'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생강 1,000원 어치를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