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시언의 맛있는 책 읽기](163) 어린왕자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 책 도서/독서 기록
- 2014. 2. 19.
고전문학을 세월이 지난 다음 다시 읽어보는 것은 묘한 감정을 느끼게한다. 읽을 때마다 생각하는 것이 달라지고, 보이는게 달라진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게 되고, 하나의 문장, 일부 행간들에서 오는 감동이 그때그때 달라진다. 동시에 과거에는 이해할 수 있었던 몇 가지가 잊혀지기도 한다. 지식소매상 유시민은 자신의 저서 <청춘의 독서>에서 "같은 책을 두 번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까지 이야기한바 있다. 결국 문학작품은 읽을 때 마다 느껴지는바가 다르기 때문에 전혀 다른 책으로서 가치를 갖는다.
생택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딱 그런 작품이다. 짧은 소설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작품은 '독서인들의 등용문'이라고까지 일컬어 진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접해본 책이라는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읽었던 <어린 왕자>와 사회생활을 어느정도 하고 나서 읽은 <어린 왕자>는 전혀 다른 책으로서 나에게 다가왔다.
생텍쥐페리의 세계관에서 <어린 왕자>는 희망의 상징이된다. 세속적인 의미에서 사람들은 순수성을 잃고 살고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인생에서 중요한 것보다 중요하지 않은 것들만을 탐하는 '이상한 어른들'을 비유삼아 삶의 부조리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어린왕자는 한 눈에 알아본다. 그에게는 순수성, 상상력, 꿈, 희망, 추억, 사랑 등이 가득하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린 왕자>에서 '어리다'는 것은 순수성, 그리고 아이들을 의미한다. 하지만 '한 때 아이들'이었던 '어른들'은 본래 가지고 있던 순수성, 상상력, 꿈 등을 전혀 기억해내지 못하는 무능한 존재일 뿐이다. 대신에 돈, 명예, 지식을 얻었다. 어린 왕자가 이상한 사람들로 여겼던 탐험은 전혀 하지 않는 지리학자, 명령에만 의지하여 가로등만 켰다 껐다 하는 일꾼, 술 주정뱅이와 마찬가지로 과거에서부터 오늘날까지 어른들은 이상한 것들만을 향해 살아간다. 누군가는 앞마당에 장미 꽃을 5,000송이나 키우지만 정작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꽃은 단 하나도 없는 모순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어린 왕자가 살 던 별에는 단 하나의 장미 꽃만 있었지만 그것과 대화할 수 있었고, 그것에 '들인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그 장미 꽃은 어린 왕자와 관계를 맺게 되었다. 중요한건 바로 이 '관계'라는 것인데,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관계'는 작품 전체를 감싸는 중요한 키워드다. 어린 왕자는 그 무엇과도 대화할 수 있다. 꽃, 여우와도 대화가 가능하다. 여우에게 '관계'에 대한 지혜를 얻은 어린 왕자는 그것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어린 왕자는 독자를 위해 지구에 도착했고, 생텍쥐페리가 고장난 비행기를 고치는 사막에서 지구인들과 마주한다.
관계는 인간 사회에서 무거운 의미를 지닌다. 작품에서 '관계'의 중요성과 사회의 모순이 언급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현대사회에서 '관계'가 부족하다는 것을 뜻한다. 누군가와 인연을 맺고(그것이 꼭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소통하여 함께 한다는 것. 어쩌면 이 것이 인생의 본질이 아닐까. 이런 사상은 마치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진리를 연상케한다.
생텍쥐페리의 말처럼 어른들은 누구나 한 때 어린이였지만 그것을 기억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회생활에서는 걸핏하면 '초심 초심'떠들어대지만 진짜 초심으로 돌아갈 생각이 있는 사람은 잘 없다. 아니,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시점에서 '초심'이란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초심'이라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상한 어른들' 중 한 명은 우리들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것들을 알아버렸고, 동시에 너무나 많은 것들을 잊게되었다.
<어린 왕자>는 어린이가 주인공인 동화이지만 순수함과 상상력, 꿈을 잊은채 불필요하다싶은 것들만을 인생의 진리인냥 말하며 살아가는 어른들을 위한 거의 완벽한 동화다.
작품에서 <어린 왕자>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이해하고 있는 다른 별에서 온 금발의 아이였지만, 실제로는 생텍쥐페리 내면에 숨겨진 순수성을 가진 또 다른 자아였을지 모른다. 내 안에 있는 <어린 왕자>는 어떤 모습일까?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1900년 6월 29일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나 가족 소유의 성에서 세 명의 누이 및 남동생과 함께 목가적인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가 사망한 후 르망으로 거처를 옮겨 엄격한 예수회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다섯 아이 중 셋째였지만 가문의 대를 이을 장남이었기에 가족들은 비행을 극구 만류했으나 군 복무 기간 중 조종사 훈련을 받고 1923년 제대할 때까지 모로코와 프랑스 상공을 비행했다. 가족들뿐 아니라 약혼녀였던 여류 작가 루이즈 드 빌모랭도 조종사를 직업으로 삼는 것에 반대했다. 그녀를 위해 제대 후 평범한 직업을 갖기도 했으나 결국 파혼에 이르고 만다.
그러다 1926년에 단편 <조종사>를 출판함과 동시에 라테코에르 항공 회사에 취직하면서 생텍쥐페리 본인으로서는 가장 행복하고 안정된 시기를 맞게 된다. 당시에 주어진 주된 임무는 초창기의 구식 비행기를 타고 멀리 떨어진 아프리카 식민지나 남아메리카까지 우편 항공로를 개척하는 일이었다. 이 시기에 사하라사막이나 안데스산맥 같은 험난한 환경에서 직접 경험한 일들이 <남방 우편기>(1929), <야간 비행>(1931)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같은 시기에 휴머니즘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짧은 글을 여러 편 쓰곤 했는데 이를 읽어본 앙드레 지드가 그것들을 한데 모아 장편소설로 발전시키라 강하게 독려하였고, 10여 년 후 <인간의 대지>(1939)라는 작품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아카데미 프랑세즈 그랑프리의 영예를 안겨 주기도 했던 이 작품에는 1935년 1월 30일에 파리-사이공 간 비행시간 신기록을 수립하던 중 리비아의 사막에 추락한 후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던 경험도 생생하게 담겨 있다. 2차 대전 중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중에도 <전투 조종사>(1942),<어느 인질에게 보내는 편지>(1943), <어린 왕자>(1943) 등의 작품을 꾸준히 집필하였다. 1944년 7월31일 오전, 유년의 고향을 우회한 후 예정된 고도보다 낮게 정찰비행을 하던 중 에 독일군에게 공격을 받고, 니스와 모나코 사이에 있는 해안가에 추락하여 길지 않은 생을 마감하였다.
베스트트랜스
세계 여러 곳에 숨겨진 작품을 발굴·기획하고 번역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번역뿐만 아니라 창작 집필을 하며 우리 콘텐츠를 국외에 알리는 일에 열정을 쏟고 있다. 베스트트랜스는 기존의 번역가가 번역한 작품을 편집자가 편집하는 방식을 탈피한 새로운 번역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번역가와 편집자가 한 팀을 이뤄 잘 읽히는 작품으로 다듬기 위한 번역과 책임편집이 동시에 이뤄지는 방식이다. 번역 단계에서는 직역직해가 아닌 원문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우리말의 장점을 살려 좀 더 매끄럽고 유려한 문장으로 손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레 미제라블 명문·명대사》는 편집 단계에서 꼽은 주요 명문과 어휘를 보기 쉽게 엮은 책이다. 《레 미제라블》도 읽고, 어학서로도 활용할 수 있게 만든 참신한 어학서이다.
책 밑줄긋기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4시가 가까워 올수록 나는 점점 더 행복하겠지. 그리고 4시가 다 되었을 때 난 흥분해서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할 거야. 아마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알게 되겠지!
네가, 황금빛 머리카락을 가진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그렇게 된다면 정말 근사할 거야! 왜냐하면 역시 황금빛으로 물든 밀밭이 내게 네 추억을 떠올려 줄 테니까. 그러면 나는 밀밭 사이를 불어 가는 바람 소리도 좋아하게 되겠지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많지 않다.)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도 오아시스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지.
어린 왕자 - 전2권 (한글판 + 영문판)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베스트트랜스 옮김/더클래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