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시언의 맛있는 책 읽기](171)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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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장르 소설이나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에 깊은 조예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생소한 작가일 수 있는 레이먼드 챈틀러가 쓴 편지들을 묶은 책. 바로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이다.



국내 독자에게 레이먼드 챈틀러라는 이름을 널리 알린 것은 <상실의 시대>와 <1Q84> 시리즈로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일 것이다. 하루키 그 자신의 작품에서 본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작가로 챈틀러를 항상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키는 일종의 글의 멘토로 챈틀러를 꼽고 있다. 그래서 하루키의 팬이라면 챈틀러라는 이름이 완전히 생소하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많은 독자들에겐 어색한 이름. 이번 책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는 레이먼드 챈틀러의 편지를 통해 그의 사생활과 세계관, 글에 대한 애착과 집념, 일종의 자서전같은 느낌을 주는 책이다.

헤밍웨이 조차 실망스러운 정도입니다.
- 책 중에서

상당히 날카로운 비판형태의 편지들이 많다. 이것은 작가 레이먼드 챈틀러의 고유 스타일이라 할 수 있다. 상당히 독특한 스타일이 아닐 수 없는데, 글 쓰는 사람 입장에서, 평범하지 않다는 것은 많은 장점을 지닌다. 글을 대하는 자세에 있어서 챈틀러는 하루키라는 거물을 충분히 포용할 수 있을법한 집념을 보여주지만 실상 자신의 글은 조롱과 비판, 논리적이면서 유머감각이 넘치는 글을 쓰는 신기한 작가다. 그의 글 자체만을 본다면 매우 소심하고 불평불만이 많으면서도 어딘가 4차원적인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는 이상한 사람 1명으로 밖엔 상상할 수 없다. 이렇게 독특한 스타일은 호전적이며 마초적인 성향을 느끼게 하고 글 전반에 걸친 남성미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글쓰기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스타일이고, 스타일은 작가가 시간을 들여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투자입니다.
- 책 중에서

모르긴 몰라도 살아 생전에 챈틀러는 수 많은 독자들에게 상당한 비판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시류에 어긋나는(자신만의 확고한 글)스타일이 호불호를 완전하게 나누기 때문이다. 음악, 그림, 글 등 예술 영역에서 특출난 세계관은 항상 여러가지 방면에서 비판을 받곤 하는데, 그렇기에 챈틀러는 더더욱 자신의 스타일 정립에 더 힘을 쏟은 위인이다. 이런 강철멘탈은 작가에겐 필수요소가 아닐까. 독자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은 좋지만 이런 말에 이렇게 휘둘리고 저런 말에 저렇게 휘둘리며 자신만의 정체성도, 본인만의 스타일도 없는 이름모를 그저그런 작가가 얼마나 많던가!

나는 돈이나 어떤 특권 때문에 글을 쓰는 게 아닙니다. 다만 사랑 때문에, 어떤 세계에 대한 이상한 미련 때문에 글을 쓰는 거죠. 사람들이 치밀하게 생각하고 거의 사라진 문화의 언어로 말을 하는 그런 세계 말입니다. 나는 그런 세계가 좋습니다.
- 책 중에서

책 제목이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라서, 작가가 정말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는지'에 대한 에세이 집인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을 한 차원 뛰어넘는, 글쓰기와 작가 정신에 대한 숭고한 작품집이 아닌가!

실제로 글을 쓰는 것이 삶의 목적이죠. 나머지는 그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겪어야만 하는 것일 뿐입니다. 어떻게 실제로 글쓰는 일을 싫어할 수 있습니까? 싫어할 만한 요소가 뭐가 있다고? (중략) 어떻게 문단이나 문장이나 대화나 묘사를, 창조적인 무언가로 만들어 내는 마법을 싫어할 수가 있겠습니까? 글쎄, 분명히 그러면서도 성공할 수 있나 보긴 합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니 정말이지 우울하군요.
- 책 중에서

글쓰기를 싫어하는 작가라니, 말로써 마법을 창조하는 일에서 어떤 기쁨도 누리지 못하는 작가라니, 그런 사람은 나한테는 작가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 책 중에서

챈틀러는 글과 글쓰기를 통한 창작의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는 글쓰기를 마법으로 부른다. 상황 묘사, 문장, 대화, 스토리 진행, 플롯 등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소설은 말 그대로 마법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글을 통해 어떤 세계를 창조하는 창조주가 되며, 누군가를 태어나게 하고 죽일 수 있는 마치 신과 같은 능력을 갖게 된다. 어린이도 신이 될 수 있고, 눈이 침침한 100세 노인도 얼마든지 신이 될 수 있다.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엄청나게 많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어떤 분야에 정통해서 선구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글쓰기를 즐겨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글쓰기는 지루하고 어렵고 골치아프며 오래걸린다. 꾸준히 글을 쓰는 사람은 더욱 없다. 힘드니까. 글쓰기를 행복해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글과 행복은 진정으로 글을 통해 홀가분함을 맛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별개의 영역에 있는 문제다. 결국에 작가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지만 작가는 많지 않고, 글쟁이는 언제나 소수가 된다. 독자는 많다. 평론가 비평가도 많다. 글을 읽는 것, 그리고 평론하고 비평하는 것과 글을 직접 쓰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 작가는 언제나 상하좌우 모든 방면에서 반대와 비판, 욕설에 부딪히지 않을 수 없다. 역사가 그랬고 세상이 그렇다. 그 힘들고 고통스러운 행군을 참아내고 이겨낼 때, 진정으로 작가가 된다. 챈틀러가 그런 사람이다. 그의 글은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에서 정확하게 드러난다.

나 역시 현재까지 2권의 저서를 출판한 저자이자 글로써 내면의 이야기를 하길 좋아하는 1명, 그리고 작가라는 무거운 타이틀을 거침없이 사용하는 사람이지만 하루키나 챈틀러 뿐만 아니라 당대의 위대한 작가들의 글 앞에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들만큼 글과 사랑에 빠지지 못했고, 그들의 열정에 비하면 내 것은 그저 작은 불씨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의 나로선 작가라는 타이틀의 무게를 결코 견딜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부끄러운 작가다. 아니, 어쩌면 작가 견습생 정도가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나는 글을 사랑하는가?'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내 글을 어떻게 다듬을 수 있는가?'
'원하는 메시지를 완전하게 전달할 글을 쓸 수 있는가?'
'책 2권에 만족하여 작가적 매너리즘에 빠진 것은 아닌가?'
등등. 이 책을 읽는 내내 위와같은 물음표를 떨쳐낼 수 없어서 힘들었다.


이번 책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는 나에게만큼은 '나는 어떻게 글을 쓸 것인가?'가 되었다.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 10점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안현주 옮김/북스피어


레이먼드 챈틀러

작가소개

1888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나 열두 살 때 영국으로 이민을 가, 거기서 덜위치 대학을 졸업했다. 작가가 되려고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교사와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던 그는 1912년 다시 미국으로 돌어가 캘리포니아에 정착을 했다. 1차 세계대전 중에는 캐나다 육군에 복무했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석유회사에 몸담고 중역의 자리까지 올랐으며, 1924년에 시시 파스칼과 결혼했다.

1930년대 초에 우울증이 발병하자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저작에 몰두하고, 「블랙 마스크」 같은 통속 잡지에 단편소설을 기고하기도 했다. 그는 1938년에 단편소설 16편을 발표했으며 첫 장편소설 창작에 착수해 1939년 <빅 슬립>을 발표해 큰 호응을 얻었다. 마찬가지로 호응을 얻은 작품으로는 <안녕, 내 사랑아>(1940), (1942), (1943), (1949), <기나긴 이별>(1954) 등이 있는데 모두 유명한 사립탐정 필립 말로우를 등장시킨다.

그의 작품 가운데 여러 편은 영화화되었고 같이 호평을 받은 작품을 영화대본으로 쓰기도 하였다. 미국 추리작가협회 회장을 지냈던 그는 말년에 극심한 우울증과 쇠약증에 시달리다 1959년 캘리포니아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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