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시언의 맛있는 책 읽기](175) 단 한번도 방황해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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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번도 방황해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사람들이 여행을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나 역시 어떤 여행은 A를 위해, 어떤 여행을 B를 위해, 어떤 여행을 C를 기대하며 떠나곤했다. 여행은 언제부터 시작되는걸까. '여행가고싶다'는 어설프다. '여행을 가야지!'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어디를 어떻게 갈까?'부터 진정한 시작이라고 본다. 여행이 주는 묘미 역시 다채롭다. 새로운 것을 접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새로운 것들과 조우하고 호흡하게된다. 길고 긴 거리를 비행기에서, 차에서, 배에서 보내면서도 그곳을 향해 달려간다.

여행지에 도착하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면 약간의 피곤함과 함께 '뭔가를 성취해냈다!'는 성취감이 들때가 있다. 이따금씩은 '아주 즐겁고 유쾌한 시간이었다'처럼 보람됨을 느끼기도한다. 여행은 그 내용에 따라 느껴지는바가 다른, 마치 책 읽기와 비슷한 무언가가 있다.

정확하고 완벽한 여행 계획은 안정감이 있지만 '새로운 것들과의 조우'와는 거리가멀다. 그래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색다른 경험을 기대하긴 힘들다. 요즘 힐링이다 캠핑이다 뭐다해서 주말마다 여행을 떠나는 '여행족'들이 엄청나게 많다. 나 역시 주말마다 여행을 떠나곤 했을 때, 여행지에 있는 수백명의 여행객들을 바라보며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잘 짜여진 계획과 정확한 예약, 타이밍으로 마치 기계적인 여행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내 눈에 그것은 여행이 아니라 그냥 '체험'에 가까웠다.

역마살이 낀 사람처럼 여기저기를 쉴 틈 없이 돌아다니는 타입이 있는가하면 엉덩이 무겁게 한 곳에 정착해서 꾸준히 무언가를 하는 타입이 있다. 나는 후자다. 엉덩이가 무겁지도 못하지만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애매한 위치였다. 얼마전까지만해도 나는 여행을 그다지 선호하는 편이 아니었다. 여행지까지 이동하는 시간이 아까웠고, 돈도 아까웠다. 뿐만 아니라 시간을 아껴쓰지 못한다는 느낌이 강해서(여행 계획을 세우고 거기까지 가는 시간대비 실제 여행하는 시간은 아주 짧게 느껴지기 때문에) 여행을 그다지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근래들어 여행의 묘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단, 대부분의 계획이 없는, 유명 관광지만 돌아다니는 그런 여행이 아니라 마음내키는대로 근처 아무곳이나 가보는 그런 자유로운 여행에 한해서. 이것은 일종의 '방황 여행'에 가까울 것 같다. 여기저기 '방황'하며 새로운 것들을 접하고 아무런 계획이 없었기에 아무런 기대도 없었지만 뭔가를 느끼거나 무언가를 배우면서 느껴지는 짜릿함이 나를 매료시켰다. 그래서 내가 느끼는 여행의 본질은 방황이고, 방황이야말로 여행이다.

이번 책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은 여태껏 단 한번도 방황해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잘 정리된 '방황기'기 아닐까싶다. <7년의 밤>이라는 히트소설로 수많은 독자(그 독자들에는 나도 포함된다)를 사로잡은 그녀가 평소 생각치도 못했던 여행을 떠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것도 국내나 가까운 해외가 아니라 히말라야라니...

Note

욕망이라는 엔진이 꺼져버렸다. 책상 위에 쌓아둔 다음 소설 자료와 책, 새 노트가 신기루처럼 비현실적이었다. 누군가 내 상태를 알아차릴까봐. 다시는 글을 쓰지 못하게 될까 봐. 고작 소설 몇 편 쓰고 무너지는구나, 싶어서.
"나 안나푸르나 갈거야."
선택사항이 아니야. 생존의 문제라고.

책 프롤로그 중에서

작가가 방황지로 선택했던 것은 히말라야다. 쉽게 갈 수 없는 곳. 그렇기에 더욱 매력적인 곳. 정유정급 소설작가 레벨이 아니라면 생계 걱정에 막상 떠나기가 힘들지도 모를 그런 곳으로 그녀는 향했다.

Note

나는 태어나 한 번도 대한민국을 떠나본 적이 없다. 일이 아니고는 고향이자 주거지인 전라도 땅조차 벗어나보지 않았다. 워낙 골방 체질이기도 했지만 질주하듯 삶을 살아온 탓이 더 컸다.

책 프롤로그 중에서

프롤로그의 시작 문구에서 나는 매우 강렬한 동질감을 느꼈다. 물론, 나는 2번 정도 대한민국을 벗어나 본 적이 있긴 하지만.

이 책이 매력적으로 느낀 또 다른 이유는 25쪽 가량되는 뱀처럼 긴 프롤로그에 방황기의 모든 것이 녹아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시작에서 출발하게된다. 우리는 여행을 왜 떠나는가? 즉, "어떻게 그 전설의 땅 '히말라야'로 향했을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여행기의 대부분의 것들을 알 수 있다. 그녀는 일반 작가 정도가 아니라 대히트작을 보유한 훌륭한 작가가 아니던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책 중 프롤로그에서 가장 큰 감동과 희열을 경험했다. 반면 본문내용은 그녀의 환상방황기를 에세이형태로 일기처럼 정리해둔 것이라 히말라야에 대해 전혀 정보가 없는, 심지어 지금껏 히말라야를 단 한번도 가보고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다소 거리감이 있게 다가왔다. 당장 가 볼 수 없기에, 현실적 문제들과 사회적 문제들이 옭아메는 멱살에 저당잡힌 나의 진짜 상황만이 더 괴롭게 다가왔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모두 읽고 난 후에는 오히려 홀가분함을 느꼈다. 그녀가 환상적인 방황이라 표현하는 여행에서, 전혀 상상하지 않았던 히말라야에서 느끼고 경험했던 일부분이나마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교 자체가 곤란하지만 나와 비슷한 한 명의 사람ㅇ, 내가 꿈꾸어 마지않는 작가라는 타이틀을 이미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의 '마침표'가 아닌 '쉼표'같은 휴식기에서, 작가의 말처럼 '세상에 다시 맞설 용기를 얻기 위해 떠나는 신들의 땅'에서, 작가인 그녀가 방황하며 느꼈던 어려움과 즐거운 이야기들에서, 생애최초 해외여행을 했다는 소설가의 첫 에세이 글에서, 나는 표현하기 매우 곤란한 명확하지 않은 어떤 열정과 희망 같은 것들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책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은 그야말로 여태껏 단 한번도 방황해보지 않은 많은 사람들을 위한 방황 안내서다.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 8점
정유정 지음/은행나무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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