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시언의 맛있는 책 읽기](183)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반응형

서평 -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는 글을 쓴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과거는 한낱 기억에 불과하고, 기억은 감정에 따라 왜곡되고 변한다. 현실 그대로를 반영하지 않는 기억의 특성은 그것을 신뢰해도 좋을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한다. 만약 내가 나를 되돌아보며 솔직담백하게 글을 쓴다면, 그 글은 우울한 분위기일까? 아니면 산뜻하고 경쾌한 분위기일까? 기억을 토대로 한 글은 때론 픽션으로, 때론 논픽션으로 점철되어 100% 믿을수도, 그렇다고 100% 안 믿을수도 없는 묘한 색깔을 가질 것 같다.

이번 책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은 윤대녕 소설가의 회고록에 가까운 에세이집이다. 월간 『현대문학』에 2011년 10월부터 2013년 9월까지 2년 동안 연재했던 글을 모은 것인데, 그 주제가 참 낭만적이다. 어릴적 살았던 집, 동네, 마을, 휴게소, 사람, 음악, 부엌 아궁이, 지금은 고인이 된 누군가와 함께했던 술집, 옛 애인, 공중전화 박스. 사람이 살아가면서 경험하고 체험하는 각종 공간에 추억을 부여했고, 그 추억을 되짚어 다시 경험하는 작가의 글이 너무나도 공감되었다. 마치 내 인생이 그렇듯, 다른 이의 인생이 그렇듯, 이렇게 살고, 저렇게 살아가는 모습들이 정겹게 다가왔다.

책 밑줄긋기

장소는 거기 그대로 있되 공간은 사라지거나 변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나 역시 나이를 먹다보니 옛 공간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많다. 어릴적 부모님과 살았던 집, 함께 뛰어놀던 동네 친구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었던 학교 운동장, 놀이터, 살면서 경험했던 많은 공간들. 아주 가끔이지만 그곳이 너무나도 생각날 때면 직접 차를 몰고 찾아가보곤한다. 하지만 너무 늦게 찾아간 탓일까. 많은 곳들이 없어졌고, 변했더라. 이제 그곳은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사라진 공간'이 되었고, 나는 그 '사라진 공간'을 바라보며 '되살아나는 기억'을 애써 끌어올려야했다. 너무 바뀌어버린 공간들 탓에 기억조차 헷갈리는지 이 곳이 그 곳같고 그곳이 이 곳같았다. 그럼에도 몇 곳은 아직 옛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었는데, 그럴때면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행복감에 젖어 한참을 바라보다 집으로 되돌아오곤 했다.

책 밑줄긋기

그럼에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휴게소, 공항, 기차역, 버스 터미널 이런 곳들이다. 말하자면 경유하는 공간이 되겠다

과거를 복원하는 일은 저자의 말처럼 아프지만 즐거운 작업임을 깨달았다. 좋아하는 공간을 다시 찾는다는 것. 공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기억을 되살리는 방법이 아닐지.

저자의 시선으로 추억 속으로 미친듯이 빨려들어가다가 토지문학관이라는 곳을 알게되었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작가, 소설가, 시인같은 예술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지원하는 곳인데 저자 역시 토지문학관에서 많은 글을 썼다고한다. 나는 그 문장을 읽자마자 마치 자석에 끌리듯 충동적으로 토지문학관으로 달렸다. 급하게 챙긴 노트북, 몇 권의 책, 속 옷과 양말, 바람막이 옷 몇 개가 내가 가진 전부였다. 차로 4시간이 걸렸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그런데 토지문학관에 도착해서 알고봤더니 연초에 미리 신청을 해서 선정이 되어야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제대로 조사도 안해보고 즉흥적으로 달려간 탓에 토지문학관과의 인연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대로 되돌아가기는 너무나도 아쉬워서 인근 민박집에서 일주일 정도를 머물면서 이런저런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한여름이라는 날씨가 무색하게 날씨는 시원했고, 바람은 차가웠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감정적으로 되살아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온라인 상의 덧 없는 공간들이 허무하게 느껴졌고, 결코 추억이 깃들지 못하는 존재하지 않는 공간은 의미를 잃었다. 카카오톡을 탈퇴해버렸고, 페이스북 계정도 비활성화시켜버렸다. 비로소 나는 조용한 공간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

책 밑줄긋기

모든 존재는 시공간時空間의 그물에 갇혀 살아가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시간과 공간이 씨줄과 날줄로 겹치는 지점에서 매 순간 삶이 발생하고 또한 연속된다. 이렇듯 시간의 지속에 의해 우리는 삶의 나이를 먹어간다. 한편 공간은 ‘무엇이 존재할 수 있거나 어떤 일이 일어나는 자리’이다. 그런데 허망하게도 과거에 내가(우리가) 존재했던 공간은 세월과 함께 덧없이(영원히) 사라져버리는 것이었다.



지나고 나면 삶은 한갓 꿈으로 변한다고 했던가. 돌아보니 정말이지 모든 게 찰나의 꿈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나는 그 꿈이라도 한사코 복원하고 싶었던가 보다. 연재를 하는 동안 나는 과거에 내가 머물렀던 곳들을 가끔 찾아가보았다. 짐작했듯 대부분의 공간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더 이상 자취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만 그곳에는 마음의 텅 빈 장소場所들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매달 한 편씩 연재를 하면서 나는 무척 행복했던 것 같다.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던 과거의 기억들을 복원하는 글쓰기가 많은 순간 내게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삶을 복원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더불어 삶이 내게 남겨준 것이 무엇인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과거의 기억을 복원하는 것이 곧 삶을 복원한다는 메시지가 미치도록 사무친다.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 8점
윤대녕 지음/현대문학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반응형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