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 후 1년, 4000만원 대신 내가 얻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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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표 후 1년, 4000만원 대신 내가 얻은 것

바쁘게 살다보니 어느덧 사표 쓴지도 1년이 되었다. 퇴사 시점이 아니라 사표를 제출한지 1년이 되었다는 의미다. 사표제출 후 수리기간과 인수인계기간이라는 30일동안 더 근무를 했었기 때문에 명확하게 따진다면 아직 1년이 조금 남았긴 했지만 거의 1년정도 되었다.

이제 샐러리맨일 때의 내 연봉을 공개할 때가 왔다. 나름 아껴썼는데도 모아둔 돈은 없어졌고, 퇴직금이 고갈난지도 한참이나 되었다. 자유경제체제에서 돈은 필수적인 것이고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건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아래에서 따로 이야기하겠지만)죽음을 앞두고 하루만을 살아가는 나같은 사람에겐 그저 당분간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돈만 있으면 충분하다. 때로 생활유지를 위한 소액을 벌기위해 무언가를 해야하지만 내가 자유롭게하는 것이므로 전혀 슬프지않다.

내가 만약 1년동안 계속 일을 했다면 1년치 연봉과 퇴직금 1회분, 기타 추가금을 합해 약 4000만원 정도되는 돈을 벌어들였을 것이다. 1년에 약 4000만원. 공채입사가 아니었다면, 업계에서 못해도 10년에서 15년은 일해야 겨우 받을 수 있는 금액이다. 물론 그 돈이 전부 통장잔고로 남아있을 확률은 낮다. 열심히 일한 자신에게 돈으로 보상이라도하듯, 꽤 많은 지출을 했었을테니까. 지금은 경제적인 요건을 고려하여 근검절약하고 있다. 월급쟁이의 삶을 스스로 벗어나면서, 1주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생각해볼 때 연봉을 포기한 대신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4000만원보다 가치있는 것들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건 지금까지 내가 경험하고, 배우고, 터득하고, 즐긴 것들은 4000만원보다 훨씬 더 가치있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새롭게 알게된 수 많은 사람들. 처음으로 가 본 여행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내 나이보다 100배 정도 많은 수십그루의 나무들.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모든걸 혼자해야했던 해외자유여행. 그동안 찍었던 수천장의 사진들과 동영상. 잊지못할 추억들. 대화, 이야기, 소통. 내 몸뚱아리를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자유시간 등.

사람들은 회사를 그만두고 마땅한 일거리도 없이 빈둥빈둥 살아가는 나를 불쌍하게 바라보기도 하고 측은하게 보기도한다. '힘내라'는 결코 힘날 수 없는 말을 하기도 하고, 내 인생이 답답하다는듯 한숨을 쉬는 축이 있는가하면 사회적 패배자이자 사회적 이방인으로 낙인찍는 축도있다. 여태껏 인간쓰레기 취급한 사람은 없었는데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유감스럽게도 그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내 인생은 그 어느때보다 행복감에 충만하다. 마치 수호천사의 속삭임을 몰래 들었던 선지자처럼 절대 실패할 일 없다는 강한 믿음이 있다. 동시에 절대 성공하리라 장담하지도 않는다.

나는 지금껏 성공하고싶다는 일념하에 미친듯이 무언가를 해가며 자신을 혹사시키는 삶을 살았다. 이제 나는 성공을 위해 살지않는다. 실패를 위해 사는것도 아니다. 내 삶은 말하자면, 성공과 실패 중간 어디쯤 위치해있는 그곳으로 향한다. 내가 꼭 성공해야만할 아무런 이유가없다. 실패도 마찬가지다.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성공하려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자신이 하고싶은 것을 마음껏하면서 행복을 느끼고 남 부럽지않고 떳떳하게 살아가기 위함이다. 나는 지금 마음껏 하고싶은 것을 하고있고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남 부럽지않다. 범법행위를 저지르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떳떳할 수 밖에 없다. 단지 그들이 생각하는 돈 몇 푼과 화려한 직장과 직함만 없을 뿐, 현시점에서 내가 가질 수 있는 나머지는 전부 있다. 이것을 얻는데 직장생활 근 1년 반과 백수생활 1년이 소요되었고, 단순 연봉으로 계산했을 때 4000만원 정도가 투자되었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에게 회사를 계속 다니라는 둥 사표를 쓰라는둥 종용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야할 아무런 의무도, 필요도 느끼지않는다. 누군가의 인생과 내 인생은 이제 전혀 다른 것이고, 다른 차원에 있는 어떤 것이되었다. 나는 이제 나 자신에게만 포커스가 맞춰진 삶을 살아간다. 그전까지 얼마나 많은 오지랖을 부렸던가? 다른 사람들의 삶을 뒷조사하듯 살펴보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정작 내 인생은 얼마나 관심 밖이 되었던가?

나는 곧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30세에 죽을 수도 있고, 80세에 죽을수도 있다. 운이 좋아 120세까지 살 수 있다고해도 어쨌거나 곧이다. 만약 내가 살아갈 날이 누군가에 의해 점지되어 있고 나만 그것을 모른다고해도 어차피 곧이다. 내가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만났던 보호수 나무들의 나이는 수백년이 기본이었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찰나의 삶을 사는건가. 말없는 나무조차 나보다 훨씬 오래살아간다. 인생은 짧고 해야할건 많다. 하고싶은건 더 많다. 그렇기때문에 하기싫은 일을 참아가며 낭비할 시간따윈 이제 없다.

누구나 하루를 살아간다. 나는 이제 하루만 살아간다. 죽음이 코 앞인 시점에서 중장기계획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사람들은 10년 뒤의 계획을 세운다. 5년뒤 계획을 세운다. 사람들과 뭉쳐 으쌰으쌰해가며 3년뒤에 해외여행을 가자며 '해외여행 계'를 만든다. 50년뒤에 태평양에서 보트를 타고 낮잠을 잘 목적으로 로또복권을 사는데 1년에만 50만원을 넘게쓴다. 실행불가능한 계획을 세우느니 침대에 흩어진 머리카락을 세어보는게 더 낫다는 생각이다. 엄청 멀리있는, 심지어 상상조차 불가능한 그런 계획은 계획을 세울때를 제외하면 쳐다보는 경우가 거의없다. 나 역시 과거에는 그랬다. 적금을 붓고, 재테크를 공부하고, 돈을 모은답시고 인생에서 다신 없을 소중한 기회를 수없이 날려먹었다. 이자가 조금 높다는 이유로 여기저기 은행을 전전했고, CMA통장, 실비보험, 그외 백과사전분량의 약관을 가진 다양한 파생상품의 정보를 찾는데 시간을 허비했었다. 돈을 써야한다는 이유로(돈을 모으기위해) 참석하지 않았던 여행, 술자리, 모임이 얼마나 많았던가.

나는 더 이상 1년 뒤의 그 무엇도 계획하지않는다. 3년이나 5년, 10년 같은건 내 사전에 없는 단어가 되고있다. 감히 누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오늘 하루만을 바라보고 살아간다. 내일 해가 뜨고 내 신체가 다시 눈을 떠서 심장이 움직이고 두뇌의 뉴런들이 활발하게 활동한다면, 나는 다시 또 하루를 살아간다. 그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그것을 한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 때쯤 하루 일과를 돌아보며 '과연 나는 오늘 하루동안 후회할 일을 만들지는 않았는가?'라고 생각하며 복기한다. 자연스럽게 나는 모든 것에 초연해졌다. 바로 옆에서 교통사고가 나든 지진이 나든 옆 집이 불타든 나는 차분하게 대처할 수 있다. 뉴스에선 쉴새없이 사회적, 인간적 문제점들을 꼬집고 고발한다. 뉴스만 보고있자면 이 세상은 인간이 도무지 살아갈 수 없는 척박한 땅이자 30일안에 망할 것 같은 곳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좋은 사람, 좋은 환경, 좋은 곳들이 가득한 아름다운 지상낙원이자 공중정원으로 세상은 바뀐다. 하루를 살아가는 삶을 의도적으로 수행하면서 나는 <그리스인 조르바>가 되었다. 나는 그 무엇도 바라지않고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않는다. 그래서 자유다.


좋아하는 일, 사랑하는 일, 싫어하는 일

내가 좋아하는 일, 사랑하는 일, 그리고 싫어하는 일을 구태여 구분지을 필요가 있을지에 대해서는 좀 더 많은 연구가 있어야할 것 같다. 나는 그냥 끌리는대로, 말하자면 억지로 어떤 시스템이나 틀에 집어넣어 판단하지않고 그냥 즉흥적으로 무언가를 한다.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할 때 그것이 과연 옳은가 판단하는데 엄청난 시간을 소비한다. 예를들어 기타를 배우고싶은 사람은 '내가 과연 기타를 잘 연주할 수 있을까'에서부터 '기타로 돈을 벌 수 있는가', '도대체 기타로 할 수 있는 일이 뭐야?'로 진화했다가 '안그래도 바쁜데 내가 기타를 쳐야할 이유가 있을까'로 바뀌고 '기타같은거 안배워도 사는데 지장은 없으니까', '내가 지금 기타를 배워서 뭐하겠다는거지?', '기타 잘 치는 사람은 엄청 많잖아?'로 성채가 되었다가 결국엔 '기타말고 다른건 없을까? 일단 좀 더 생각해보고 결정하자'로 직관에게 죽음을 선고한다. 그리고 기타는 영영 배우지 못한다. 여행, 도전, 연애, 섹스, 직장같은 어떤 결정에 이런 프로세스는 어디에나 통한다. 과연 옳은일이란 무엇인가? 기타를 배우고자하는 사람에게 중요한건 기타를 연주하는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가 아니라, 오늘 하루 기타를 연주했는지 아닌지밖에 없다. 나머지는 아무런 쓸모도, 가치도 없는 것이다.

나에게 1년치 연봉인 4000만원은 엄청나게 큰 돈이다. 정말 꾹참고 4년 정도만 일했다면 나름 평범한 집 한채는 구매할 수 있는 돈을 모을 수도 있을지모른다. 아니, 씀씀이가 동시에 커지는걸 고려한다면 7년 정도는 잡아야겠다. 어쨌든 기나긴 인생에서 잠깐의 인내심만 가지면 나는 내 이름으로 된 집을 가질 수 있다. 그러면 나는 이 지긋지긋한 월세생활을 청산하고 안락한 보금자리를 얻게될 것이다. 집을 얻고나면 끝인가? 그렇지않다. 집이 있으면 당연히 결혼이나 더 좋은 집을 바라게될테고 그러면 나는 계속해서 일을 해야한다. 더 좋은 집을 얻거나 결혼을 하게된다면, 식구가 생기기 시작하면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어깨에 메고서 더 열심히, 더 죽도록 일해야한다. 내가 지금 자유롭게 살고, 1년동안 50번 넘게 여행을 다니며 여기저기를 쏘다니는 것도 따지고보면 이 지긋지긋한 월세방 덕분이다. 월세방은 나에게 애증의 존재이자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소모품이다. 그래서 나는 월세방에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으므로써 초연해진다. 만약 내 이름으로 된 집이 있다면 하루가 멀다하고 바뀌는 부동산 시세 그래프에 하루 2시간은 투자해야만 했을 것이다. 집을 얻을 목적으로 7년 정도 일하고자 했던 계획이 70년짜리 계획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정신적 살인자

집과 직장이 구분된 것처럼 여겨지는 대한민국의 문화에서 회사라는 울타리는 상당히 견고한 편이다. 직장인일 땐 회사나 업무와 관련되지 않은 사람들이 귀찮게 연락오는 경우가 거의없다. 직장 안에서는 전쟁같은 일을 처리해나가야하지만 직장 밖에서는 아주 평안한 시간이 찾아온다. 이것은 매우 편한 삶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그것때문에 수많은 기회들이 허공에서 분해된다. 반대로 직장의 울타리 밖으로 나오면 주위에서 시도때도없이 무언가가 치고들어온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식사요청을 하는때도 있고(어떻게 알았는지 알 수가 없지만), 점심을 사 줄테니 이틀동안 자기네집 청소나 좀 도와달라는 제안이 들어오기도한다. 하지만 이런 일들 덕분에 두 가지 지혜를 터득할 수 있게된다. 첫번째는 거절하는 지혜. 두번째는 수 많은 기회들 중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고르고 골라 선택할 수 있는 지혜.

보통 20대가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게될 땐 사회경험이 전무한 상태다. 그래서 아직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잘하는지, 어떤 일을 싫어하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고있다. 경험보다 더 큰 스승은 없다. 20대엔 사회경험을 쌓아가며 여기저기 취업해보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체험해보는것에 가까운 시절이다. 일을 하다보면 처음부터 딱맞게 자신의 일을 발견하는 행운을 얻은 사람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첫직장에서 패배감을 맛본다. 자신이 생각했던 일은 이런게 아니고, 지금껏 학교에서 착하게만 큰 학생에게 회사라는 곳은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한다. 그래서 그만두거나 이직을 결심한다. 이때 인생선배라는 사람들은 끈기가 없다니, 참을성이 없다니, 젊은놈이 뭘 모른다니, 사회경험이 부족하다니, 변덕스럽다니, 남들은 다 하는데 왜 너만 특출나게 그러느냐니 하면서 젊은이의 개성을 학살해버린다. 이런 행위는 정신적 살인이다. 청사 입구에 내걸린 비전 현수막에는 '창의적 인재'라고 떡하니 적어놓고, 실제론 창의든 나발이든 직장상사 입맛에 맞지 않으면 모조리 퇴출당한다. 이 시점에서 젊은이는 또 한 번 패배감을 맛보면서 확인사살 당함과 동시에, 자신도 그들처럼 정신적 살인자가 되던지, 살인을 당해서 사회적으로 피해자가 되는 기분을 느끼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하는 공황상태에 빠지게된다.

그러나 만약 그 젊은이가 정신적 살인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살아남아 자신의 창의성을 고수할 수 있다면, 스스로 정신적 살인자가 되는 대신 정신적 치유자가 되는 삶을 선택한다면 직장에선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들을 경험할 수 있게된다. 내가 4000만원을 들여 백수로 1년동안 살아본 결과, 직장인이 아니어도 누구나 적극적으로 인생을 살아간다면 기대하지 않았던 수 많은 일들이 자신을 기다리고있다!

직장인일땐 그저 평범하고 중간정도의 위치가 가장 좋은 것이라 생각했다. 나서지않고 그렇다고 완벽하게 뒤처지지도 않은. 그저그런 인생이었지만 나름 만족스럽다고 여겼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인생은 여행이자 도전이었다. 중간정도가 아니라 모든게 불타서 없어질만큼 무언가에 집중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었다. 지금껏 망설이고,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걱정하면서 보낸 시간들이 아까워서 미칠지경이다. 역설적이게도 망설이고 두려워하고 걱정하면서 보냈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은 그것이 불필요하다는걸 깨닫게 되었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중간에 끊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Featured photo credit: plaits via flickr 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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