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도대체 무얼하고 있는거요?"
"아무것도"
그렇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일을 하고 있었다. 아니,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표현하는게 맞겠다. 글을 쓰는 일이든, 그림을 그리는 일이든, 음악을 만들든, 선거에 나가든, 술잔이 식기전에 적장의 목을 베는 일이나 천하통일 역시 관계자가 아닌 이상 아무 일도 아니다. 그 일이란게 얼마나 중요한지의 여부를 떠나 관련이 없으면 끝인거다. 아무것도. BK LOVE 노랫말처럼 "내 친구는 아직 그녈 사랑해요"라고 하더라도 내 일이 아니라면 사랑조차 아무것도 아닌 일이된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좋아하고 만족한다면 된거다. 인간의 욕심이란건 끝이 없는 탓에 만족하려하면 할수록 보다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농가 취재를 다니면서 항상 작물을 키우게 된 계기를 묻는다. 사과 농장에선 왜 복숭아가 아니고 사과냐 묻고, 복숭아 농가에
가서는 왜 사과를 키우지않고 복숭아를 택했느냐 묻는다. 딸기, 참외... 모든 농장주에게 같은 질문을 하는데, 되돌아오는 대답
역시 같다.
"어릴 때부터 그 과일을 좋아해서요..."
더 이상의 질문은 필요가 없다. 나는 농가에서 소소한
행복과 목표달성으로 인한 성취감에 의해 크게 감동받는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무엇하나 쉬운게 없으므로 좋아하는 과일을 키운다는건
사실상 상당히 어려운데, 작은 꿈일지라도 이루어낸 것이나 다름없음을 느끼고는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농장을 벗어난다.
글쓰는 일이란건 매우 지루하고 답답하면서도 고전적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보다 화려하고 보다 자극적이며 보다 동적인 것에 익숙해져있다. 이제 글을 읽는 행위는 불편하기까지하다. 그래서 글쟁이는 어디서나 환영받기 어렵다. 쉽게 말해서 관심있는 이를 제외한 대중들은 글쓰는 일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 이해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니까. 하지만 나는 글 쓰는걸 좋아하기에 계속해서 쓴다. 좋아하는 과일을 키우는 농부의 마음과도 같다. 글쓰기에 추호도 관심없는 사람에게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백번 이야기한들 상대방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글? 메신저나 SNS에서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거다. 창작은 여전히 수준낮게 평가된다. 특히 글이란건 시각적 효과가 거의 없으므로 가장 낮은 위치를 지키고있다. 글은 밑바탕이자 배경으로 밖에 평가되지 않는다.
잘해서 재미를 느껴 열심히 하는게 아니라 좋아하기에 잘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남들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나는 이게 좋다. 어릴때부터 글쓰는 일을 좋아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딱 이거야!'라는 느낌은 없다.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연신 구슬땀을 흘리면서도 환하게 웃는 농부처럼, 나는 오늘도 변태마냥 소소한 홀가분함과 쾌락을 느끼며 키보드를 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