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한 채와 노트북 하나가 전부였던 5년 전 오늘.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 칼럼 에세이
- 2015. 12. 9.
이불 한 채와 노트북 하나가 전부였던 5년 전 오늘.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5년 전 오늘. 어쩌면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날이다. 나는 대학 졸업식을 직전에 둔 24살의 남자였다. 친구 1명과 함께 새로운 보금자리인 태화동 살림집 월세방에 자리를 폈다.
집이 안동 시내인데 안동에서 자취를 하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나도 왜 그래야만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긴 어렵다. 집에 붙어있다가는 죽도 밥도 안될 것 같길래 별 생각없이 나왔다. 교차로, 생활타임즈 등 신문을 찾아 엄청 돌아다녔다. 지금은 안동에도 원룸이 많지만 당시엔 그렇지 않았고, 집을 알아보다보니 주인집 바로 옆에 문 한 칸을 사이에 둔 방, 반 지하, 그냥 지하, 거의 폐가같은 집도 있었다. 겨우 찾은 이 집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2층이었고, 방 두 칸에 거실 하나, 주방과 화장실이 따로 있었다. 원래는 10달짜리 사글세로 계약해야했는데 보증금 낼 돈도 빠듯한데다 목돈도 없어서 비용을 조금 올리는 조건을 달아 월세로 계약했다.
사무실 셋팅 1차 완료!! 22인치 와이드 윈도우와 맥북프로
Posted by 남시언 on 2010년 12월 8일 수요일
지금 생각해보면 이땐 아무것도 없이 그냥 무작정 자리를 폈다. 냉장고도, 세탁기도, 난방 기구도 하나 없고 노트북 한 대와 옷 한 벌, 이불 한 채가 가진 전부였다. 밥 솥 한개와 커피포트 하나를 사서 들어왔다. 반찬은 집에서 공수하고 책 가방에 빨랫감을 쑤셔 넣은 다음 주기적으로 본가에 들어가서 빨래를 해왔다. 뼈가 시릴 정도로 추웠던 겨울이라 몇 개 안되는 반찬 통은 그냥 주방 어딘가에 보관했다. 상하지 않았고 그럭저럭 먹을만했다.
입주 첫 날. 무척 추운 날씨였다. 보일러가 고장이 난 상태였는데 그걸 모르고 보일러를 켜놓고 누워 자다가 너무 추워 새벽에 깼다. PC 본체에 표시된 온도는 0도. 0도! 실내가 0도가 될 수 있다는건 이때 처음 알았다. 너무 추워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모든 옷과 이불을 껴입고 턱을 덜덜 떨면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죽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나는 컴퓨터 정보학을 전공했다. 사범대에 지원했다가 떨어지고 겨우 갔던 대학이었다. 학과 공부에 큰 관심은 없었다. 등록금 낼 돈이 없었기 때문에 세상이 무너져도 장학금을 타야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공부를 안 할수는 없었고 시험을 잘 봐서 장학금을 탈 정도로 공부했다.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공부는 쉽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엄청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많은 과목이 있었지만 그나마 Java언어에는 꽤 흥미를 느꼈다. 마침 스마트폰 열풍이 불면서 모바일 분야가 인기를 얻다보니 관련 대회도 많았다. 졸업반 일 때의 나는 학과 공부보다도 이런 대회에 나가는게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대회 준비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스타트업 위켄드 서울 최우수상, 창업아이템 경진대회 금상, 사업화 아이디어 공모전 동상, 1인창조기업 육성사업 우수콘텐츠 선정 등 나는 내 아이디어로 만들었던 모바일 프로토타입 모델만으로 여러 대회에서 수상을 하고 상금을 타기에 이르렀다. 아이디어를 현실화 시키고, 사업계획서와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무척 재미있었다(게다가 성과도 좋았다).
상상 속에서의 나는 세상에서 제일로 잘 나갔다. 하지만 현실은 별 거 없는 한심한 녀석이었다. 패기있게 시작했던 온라인 사업을 말아먹고 현금 100만원을 날렸다. 많은걸 배웠지만 그 값은 비쌌다. 그리고 나는 글을 썼다. 벼랑 끝에서 할 수 있는거라곤 글 외에는 없었다.
그리고 5년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름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추위에 벌벌 떨며 얼어 죽기 직전까지 갔던 남자는 이제 작가가 되었다. 단독저서 3권이 생겼고 블로그는 인기와 명성을 얻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뭔가가 하나씩 늘어났다. 그땐 뚜벅이에 운동화도 한 켤레 뿐이었는데 지금은 주차장에 차가 있다. 책상과 의자조차 없어서 이사할 때 썼던 박스를 세워 높이를 유지하고 방 바닥에 앉아서 작업을 했던 장소에 이제는 책상 3개가 있어 발디딜 틈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여러개의 책장과 수 백권의 책이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달랑 13인치 노트북 하나가 장비의 전부였는데, 지금은 5K를 포함한 아이맥만 2대에 기계식 키보드, 그리고 NAS를 쓴다. 장갑 2겹을 끼고도 너무 시려워서 시퍼렇게 동상이 들었던 양 손에 이제는 키보드 칠 때만큼은 장갑을 안 껴도 될 정도는 됐다. 전재산이 200만원이었는데 지금은 300만원짜리 5K 아이맥으로 이 글을 쓰고있다.
지금처럼 될 것이 운명처럼 정해져 있었던 것 같다. 좋은 사람들 덕을 봤고 또 운이 좋았다. 가끔 생각을 해볼때가 있다. 그때 사범대에 합격했더라면. 다른 사람들 말처럼 자취방을 잡지않고 집에서 무언가를 도모했다면. 졸업하자마자 그냥 쉽게 평범한 직장에 들어갔다면. 그 많은 책들을 읽지 않았다면. 글을 쓰지 않았다면...
별다른 계획없이 무작정했던게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터닝포인트였다. 5년이 흘렀다. 5년전과 비교해보니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