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0개의 글을 쓰면서
- 일기
- 2016. 6. 1.
2900개의 글을 쓰면서
블로그에 2,900개의 글을 썼다. 이 글의 번호는 2901번이다. 이렇게 보니 죄수번호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국회의원 0선 당선!’처럼 권위 있는 번호 같기도 하다. 요즘 날씨가 무척 더워서 에어컨을 켜두고 글을 쓴다. 아직도 20대 중후반 때만큼의 효율과 생산성은 나오지 않지만, 최대한 근접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마침 내일부터는 6월이 되면서 봄이 끝나고 여름이 시작된다. 올해 여름도 고통스러울 만큼 더울 것 같지만 잘 버텨낼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겐 에어컨이 있으니까.
올해 목표 중 한 가지는 블로그 글 3,100개를 돌파하는 것인데 지금 진행 상황으로 봐서는 아슬아슬하다. 2016년도 초반을 넘어서 중반으로 접어들었다. 올봄에는 작년보다 글을 쓸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도무지 집중하지 못하고 불필요한 시간을 보낸 것 같아 안타깝다. 초반에 못한 콘텐츠 생산을 중후반에 몰아서 할 작정이다.
3000고지에 9부 능선을 넘은 2900이라는 숫자는 의미 있다. 우선 블로그에 글 2900개를 썼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나 자신에게 격려할만한 수치다. 글 숫자는 시간을 품고 있으므로 그만큼 오래도록 블로그를 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블로그는 한 가지를 오래도록 하지 못하고 쉽게 질려 하는 내가 거의 유일하게 오래도록(그중에서도 다른 것보다는 좀 열심히)한거다. 블로그는 멀티미디어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확장성이 높은 매체이므로 정신이 산만하거나 집중을 잘 못 하는 사람도 자신의 포트폴리오나 커리어, 글, 일기, 대다수의 정보처리 경험을 잘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내게 블로그는 취미 이상이다. 처음에는 사소한 호기심으로 시작했다. 사람들은 블로그라는 걸 잘 몰랐고 그땐 나도 그랬다. 블로그를 직업으로 삼고자 했던 건 아니지만, 사람들은 블로그 같은 걸로 뭘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사회에서 존경받고 칭송받는 컴퓨터 관련 학과 대학교수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나에게 일장연설을 했지만, 짱구처럼 날 말리진 못했다. 나는 그냥 내가 조사하고 익힌 정보나 지식을 블로그에 올리고 사람들이 그걸 보는 행위 자체가 즐거웠고 보람찼다. 일종의 콘텐츠 큐레이션이다. 그래서 계속했다. 가능성은 애초부터 있던 게 아니라 그렇게 생겨난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을 좇다 보니 이제는 일이 되었고 떼려야 뗄 수 없는 무언가가 됐다.
그 당시에 다른 사람 의견에 귀 기울여 내 생각을 고쳐먹었다면 2,900개의 글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지금 이 글도 쓸 수 없었을 터다. 나쁘지 않은 평범한 직장인의 생활을 영위하며 지갑은 지금보다 좀 더 두툼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껏 내가 했던 수많은 경험과 만났던 사람들을 알지 못하는 세계를 상상하니 소름이 돋는다. 그래서 나는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언제나 선택에는 책임이 뒤따르고 그것은 내 몫이다.
바보들만이 다른 사람 의견에 휘둘린다. 쉽진 않지만 흔들리지 않도록 부여잡아야 한다. 그것만이 기개를 세우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개척자가 지녀야 할 정신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유명해지면 길거리에 오줌을 싸도 사람들은 박수를 치기 마련이고, 그때가 되면 ‘난 예전부터 네가 그렇게 될 줄 알았다’는 전혀 신빙성 없고 무성의한 말들을 듣게 될 테니까. 가능성이란 건 스스로 만드는 거지 남이 만들어주는 게 아니다. 남들이 안 하는 건 다 이유가 있다는 매우 흔한 소리가 내 귀에는 블루오션이라는 말로 들린다. 남들이 안 하기에 내가 하는 것이다. 그 누구도 ‘안하는 이유’를 말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문제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요즘 업무차 미팅을 가서 명함을 교환하면서 상대방이 자주 하는 말이다. 유명하지도 않고 TV 출연도 거의 안 하는 데다가 흔하지도 않은 내 이름을 본 기억이 얼핏 난다면 필시 블로그나 페이스북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내 블로그에 접속해본 적이 있을지 모른다. 사람들은 내 블로그에 수시로 방문하여 정보를 얻지만, 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래서 본명이 걸린 블로그를 익명으로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의 홍수를 넘어 재앙 수준인 오늘날 자신의 글이 공개됨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독도보다 외로운 새벽 시간을 보내면서 2,900개를 썼다. 애착이 있어서인지 나는 세상에서 내 글이 가장 재밌다. 오늘은 그동안 썼던 내 글들을 천천히 읽어보려 한다. 내 모든 추억이 담긴 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