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0번째 글
올해 초에는 무슨 생각에서였던지(지금은 기억도 잘 안나지만) 블로그를 반으로 쪼갠 다음 특정한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싶었다. 지금의 블로그는 온갖 잡다한 내용이 다 들어있는 잡화상같았고 복잡해보였다. 누군가 “무슨 주제를 가진 블로그죠?"라고 물었을 때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었기 때문에 표현에 어려움이 있었고 무엇보다 두 군데 모두 잘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지금 이 글의 카운터가 3,400번인건 하나의 블로그에 대해서다. 여기저기 합치면 약 100개 정도 더 늘어날텐데 그렇게 하기는 번거로운게 사실이라서 글 카운터는 항상 본진 블로그의 글만 셈한다. 어쨌거나 블로그를 쪼개고 나서는 글이 분산될 수 밖에 없으므로 100단위 기념글의 시기가 평소보다 늦어졌다. 지금은 두 개를 그대로 이어갈지, 아니면 합칠지 다시 고민 중이다.
지금까지 내 아이덴티티를 알렸던건 페이스북도 있겠지만 역시나 블로그다. 블로그는 여전히 내가 가장 사랑하는 매체이고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내 블로그에 접속한 사람들은 내가 요즘에 무엇을 먹고 무엇을 생각하며 어떤 일을 하고 사는지 대략적으로 알게된다. 내가 곧 내 블로그고 블로그가 곧 나인 셈이다.
처음 블로그를 쪼갤 때 놓쳤던 사실 중 한가지는 일회성 검색이 아니라 즐겨찾기나 RSS 구독, 주기적으로 직접 타이핑해서 접속하는 사람들의 행동패턴이다! 그들은 습관처럼 네이버에 내 이름을 검색한 다음 블로그 링크를 누르거나 즐겨찾기 폴더에서 내 블로그를 클릭하거나 이메일이나 RSS로 구독하며 새로운 글이 올라왔을 때 그 자리에서 바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경향을 보인다. 나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검색을 통해 들어온다고 생각했고(90% 이상 실제로 그렇다), 블로그를 반으로 갈라도 어쨌든 검색은 되기 때문에 관계없을 것으로 쉽게 판단했지만, 몇 달이 지나 따져보면 해보면 반드시 그렇지만 않다는걸 알게됐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유령 독자들이 최근에 이야기하는 바에 따르면, "요즘은 왜 남시언닷컴 블로그에 맛집 안올라와요?"다.
이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재방문하는 사람들이 내 글을 즐겨찾는 궁극적인 이유는 콘텐츠의 품질 때문이라기보다는 내 이름 때문인 것 같다. 오래도록 이름을 내걸고 블로그를 운영해온 까닭에 약간의 브랜드가 생긴것일까? 남시언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올린 글은 인기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누구도 그 글을 선호하지 않는다는게 내 결론이다. 올해 초의 나는 어쩐 이유에서인지 고스트 라이터(유령 작가)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두 개의 블로그를 켜두고 고민하고 있는 이유는 기술적인 문제 때문이다. 여기에는 HTML5와 마크다운 언어, 네이버의 위치정보와 스마트에디터, 구글 애드센스 등 여러가지 장단점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뭔가를 해보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걸 실제로 '하는'사람은 소수다. 어떤 분야든 시작은 쉽다. 그런데 몇 개월만 지나면 다들 떠나고 아무도 없다. 시작이 쉬울수록 빨리 포기한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은 꾸준히, 오래도록, 매일같이 하는 행위다. 이것은 습관, 지속력, 지구력으로 부르기도하지만 용어는 중요치 않다. 9년동안 쉬지않고 했다. 이 글은 10년째, 그리고 연말을 앞둔 3,400번째 글이라서 좀 더 의미가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