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방문자 1500만명 기념글, 절대 읽지마세요
- 칼럼 에세이
- 2018. 9. 4.
블로그 방문자 1,500만명 기념글, 절대 읽지마세요
여기까지 걸어온 오랜 기간동안 많은분들께서 도움을 주신것에 대해 우선 감사해야함이 마땅하다. 나는 무척 게으르고 나태하며 흐리멍텅한 정신상태와 믿을거라곤 거품같은 허상과 꿈 뿐이었던 철없는 학생이었는데 정말 운 좋게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눈물이 날만큼 크고 작게 도움을 주신 많은분들의 손길과 식견이 없었다면 나는 진작에 굶어 죽었거나 지하철 역 어디에서 박스를 덮고 자고있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절대로 읽지 말라고 했는데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청개구리라 할만하다.
블로그를 처음 시작했던 2009년은 나에게 터닝포인트와도 같던 해였다. 군대를 전역한 후 복학을 했고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나는 조금이나마 철이 들기 위해, 미래를 준비한다는 명분으로 도서관을 매일 다녔지만 실제 공부라고 할만한걸 많이 하진 않았다. 공부보다는 책 읽는데 흥미가 생기면서 열람실보다는 대출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주변에 그 누구도 나에게 미래지향적인 조언이라고 해 줄 만한걸 할 입장은 아니었다. 난 항상 최고가 되고싶었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 입에서 튀어나오는 이야기는 언제나 허상과 거짓으로 얼룩진 영화 시나리오 같은 것들 뿐이었다. 그 누구도 내 말을 믿지 않았고 내 이야기를 신뢰하지 않았다. 심지어 가족조차도 내가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그러나 수 년이 흐른 뒤, 나는 그때 내가 이야기했던 몇 가지는 이루었고 나머지것들은 만들어가는 중이다. 내가 책을 써서 작가가 될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단 한 명 뿐이었는데, 그것은 나 자신이었다. 나는 굳게 믿었고, 포기하지 않았고, 도전했고, 결국엔 작지만 의미있는 결과를 얻었다.
몇 년전부터는 지역에서 이름이 알려지면서 많은분들께서 내 블로그를 구독하고 꾸준히 찾아주신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오래전부터 SNS 콘텐츠에 집중해왔고 이제는 그것도 지루해서 동영상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고보면, 사람들이 알아줄만하면 다른 곳으로 튀어버리는, 도망자처럼 매체를 갈아타는 나는 언제나 이방인이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 두번째 저서인 <인생을 바꾸는 기적의 블로그>라는 책은 내가 쓴 책들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면서 가장 많은 인기를 얻은 책이기도 하고, 가장 많은 리뷰와 후기가 등록된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내가 생각하고 느낀 모든것을 쏟아부은, 말하자면 내 분신같은 책이었다. 직장에 다닐 때 집필이 마무리되면서 에필로그에는 예전 직장의 동료들과 선배님들, 그리고 내 인생의 멘토분들의 성함이 들어있기도 하다.
그 책에서도 수없이 이야기했지만, 블로그는 나에게 놀이터이자 증기기관이었고 원동력이자 원료였다. 내가 SNS를 처음시작한 이유는, 블로그에 방문자를 늘리기 위해서였다. 블로그는 여전히 나에게 장남같은 녀석이고 가장 선호하는 매체이지만 오래도록 운영하면서 겪은 여러가지 고초를 생각하면 힘에 부칠때가 하루이틀이 아닌것도 사실이다. 갑자기 생각났는데 블로그를 이토록 오래도록 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한가지는 블로그에 목숨걸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시간이 해결해주는 일들도 있는 법이다.
예전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로또복권 1등에 당첨이 되어도 다른건 몰라도 블로그는 계속 하겠다고. SNS 콘텐츠를 주력으로 만들고있지만, 지금처럼 긴 글 따위를 SNS에 올렸다간 뒤지게 욕만 먹고 읽는이없는 허세글 또는 푸념글로 치부되서 네트워크 상에서 청산될 것이 분명하다. 블로그는 읽든말든 쓸 수 있어서 좋다. 지금 이 글을 그 누구도 끝까지 읽지 않는다고해도 신경쓰이지 않는다.
20대 중후반의 남시언은 눈알에 핏줄 터지는걸 예사롭지 않게 여기던 열정으로 가득찬, 열정과 몸뚱아리 밖에 없었던 하찮은 녀석이었다. 서른 넘은 남시언은 좀 더 현명해지고 똑똑하게 일하는 법을 배워나가고 있다.
내가 요즘 느끼는 단 한가지 사실은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거나 겨우 알아차릴 때 재빨리 상승기류에 갈아타야한다는점이다. 블로그가 그랬고 SNS가 그랬고 지금은 동영상 분야가 그렇다. 남들이 어려워하고 복잡하게 느끼며 하는 사람이 많이 없을 때, 말하자면 어느정도 블루오션일 때 그 분야를 개척하고 그 분야에 도전하는 것은 가시밭길을 맨발로 걷는것처럼 매우 까다롭고 힘든 일이지만 그만큼 보상은 두둑하다. 살다보면, 물어볼 사람이 단 1명도 없는 어떤 일을 해야하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모든걸 스스로 배우고 해야하는 일들 말이다.
1,500만이라는 숫자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고수분들이 본다면 코웃음칠만한 카운트다. 만약 내 블로그의 주제가 대도시인 서울이나 일본, 미국같은 규모있는 케이스였다면 방문객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만큼 수요가 있으니까. 그러나 그런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거기엔 나보다 더 뛰어난 인물이 있고 그 사람이 나보다 훨씬 그 일을 잘할 것이다. 지금의 1500만이라는 숫자의 가치는, 인구 17만명에 1년 여행객이 500만명이 조금 넘는 안동이라는 지방 중소도시를 주제로 삼고 있다는데 있다.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안동 사람이라면, 그 누구든 반드시 내 블로그에 한 번 정도는 들어오게 돼 있고 이후에 즐겨찾기와 재방문율도 꽤 높은 편이다. 2010년에 멋모르고 창업했다가 말아먹은 후에 블로그에 본격적으로 글을 써가면서 나는 안동에서 최고로 유명한 사이트가 되고 싶었다. 미국도 아니고 안동에서 제일 유명해져봤자 뭐 있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약소해도 어느정도는 목표로 한 바를 이뤘다는 사실이 가장 기쁘다.
하찮은 블로그에 티스토리 통계상으로만으로도 1,500만명이 방문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볼을 꼬집어 보았다. 그러고보면 내 볼을 꼬집는건 간만이다. 요즘에는 인스타그램이다 유튜브다 브런치다 카카오페이지다 뭐다해서 많은 매체들이 있고 모두 블로그와 비교될만큼 좋은 서비스들이지만, 블로그에 애착이 가는건 어쩔 수 없다. 내 블로그에는 10년간 내가 살아왔던 인생이 녹아있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