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많은 감사패를 받았습니다

부끄러움 많은 감사패를 받았습니다

제목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의 첫 문장을 인용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해도 종이로 된 ‘장'으로 줬다. 위촉장, 감사장, 표창장… 요즘은 경북도에서도 그렇고 안동시도 그렇고 다른 지자체에서도 그렇고 '패'를 주는게 유행인 것 같다. 해단식을 진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택배로 받았다.

아크릴로 된 약간 트로피같은 패를 더 좋아하고 실제로 예전에 티스토리 파워블로거에 선정됐을 때 아크릴 트로피를 받은게 있는데 평범한 감사패 스타일이 아니라서 좀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사실은 아크릴 패도 흔해져서 비용만 괜찮다면 유튜브에서 주는 실버버튼처럼 액자 형태로 디자인된걸 주면 영상이나 사진을 촬영할 때 배경으로도 활용할 수 있고 트렌드에도 잘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사패를 내가 받는게 아니라 반대로 내가 시청에게 줘야하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부끄러움 많은 감사패를 받은 느낌이다.

사람들이 기자 활동을 하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기자단 활동을 시작했는데 2014년 경북여행리포터(당시엔 경북관광 서포터즈)부터였다. 활동한 이유 중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은 글쓰는걸 좋아했던 까닭에 글을 쓸 소재를 얻기 위함이었다. 여행은 글 쓸 소재로 아주 매력적인 아이템이다. 수년간 기자 활동을 하면서 여기저기를 참 많이도 다녔고 그만큼 많은 공부가 되었던 것 같다.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고 좋은분들과 인연도 맺었다. 전국 팔도를 다 돌아다녔지만 주로 경상북도에서 소재를 찾았고 그만큼 경상북도를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2012년에는 IT분야에서, 2013년에는 미디어 분야에서 파워블로거로 선정되었다. 2014년부터는 여행과 음식점 위주의 콘텐츠들로 주제가 개편되었는데 블로그에 글을 쓸 목적으로 여행을 다녔다. 여행을 다녀서 블로그에 글을 쓴게 아니라, 블로그에 글을 쓰려고 여행을 다닌 것이다. 나는 원래 여행을 좋아하진 않았다. 책상 머리에 앉아서 키보드나 두드리고 엉덩이 붙이고 움직이지 않고 뭔가 하는걸 좋아했다. 여행은 귀찮은 것이었고 오래도록 이동해야하는 번거로움, 그리고 여행지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다양한 변수들은 스트레스 그 자체였다. 오래전에 사귀었던 여자친구는 주말마다 어디론가 가자고 졸라었는데, 나는 주말에는 그저 낮잠이나 자면서 쉬고싶었고 시간이 남으면 책이나 종종 읽는, 골방에 처박힌 씹선비에 히키코모리였다. 지금은 혼자서 떠나는 해외여행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여행을 사랑하는 1인이 되었다.

오래도록 기자 활동을 해오면서 많은 글을 쓰고 많은 여행지를 찾아 공부할 수 있었다. 수년간 해와서 무엇보다 익숙한 기사와 원고 쓰기 작업이지만, 2019년 내년부터는 모든 기자 활동을 그만둘 계획이다. 이제는 나보다 더 뛰어나고 유능한 분들이 내 자리를 대신 채워줄 것이다. 세대교체는 이렇게 이뤄진다.

여행지에서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고 머리로 이해하는 깊이 있는 시간을 보내는게 아니라 카메라 셔터부터 누르고 보는 나 자신이 뭔가 허무하다고 느껴졌다. 블로그 글, 그리고 기사라고 하는 것은 내가 쓰지만 남들이 보는 객체이므로 나를 위한 여행이 아니고 남들을 위해 여행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남들에게 보여주는 여행 스타일이 나쁜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나한테는 기억은 없고 사진만 남는 여행 스타일을 이제는 그만할 때가 된 것 같다.

이제 다시 좀 더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고 싶다. 하고싶은 일들은 많이 있다. 이런저런 프로젝트들도 욕심껏 벌려뒀다. 다시 예전처럼 재미있게 내 블로그에 하고싶은 말을 세상에 외치면서 글을 쓰고 싶고, 이름 앞에 붙은 '작가'라는 무거운 타이틀에 쌓여있는 먼지도 털어서 다시 책도 쓰고 싶다. 소소하게 일상 영상도 만들고 뭔가 나만의 콘텐츠를 제작해보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창의력, 그리고 창작이라고 하는 것은 고갈되는 자원이다. 그러니까 수 많은 원고와 기사들을 쓰면서 책을 쓰는건 어려운 일이다(그 기사들을 모으고 모아서 책으로 엮는건 가능하다). 책에 들어갈 창작 자원이 기사에 우선 투입되는 까닭이다. 어떤 분야에서 창의력을 발휘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아웃풋보다 인풋이 많아야한다. 두뇌는 비만일수록 좋다. 말을 줄이고 글도 줄이면서 날카롭게 생각을 벼릴 때, 비로소 제대로된 몇 글자를 겨우 쓸 수 있는 것이다.

점프를 하려면 무릎을 최대한 굽혀야한다. 인스타그램 공동 창립자 겸 CEO 케빈 시스트롬이 인스타그램을 떠나면서 남긴 성명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선 다음,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것을 이해하고 그를 세상이 원하는 것과 일치시켜야 합니다.’

이제 나는 여기저기에 소속된 기자에서 다시 한 명의 구독자로 돌아간다. 이런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하지만 도전은 언제나 흥미롭고 모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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