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10년 전의 나, 지금의 나
- 칼럼 에세이
- 2020. 7. 4.
[에세이] 10년 전의 나, 지금의 나
군대를 다녀온 후 복학하고 나서 2010년이 되자 나는 졸업반이 되었다. 당시 여름~가을께 서울에 있는 몇몇 회사에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봤었고 몇 군데 합격을 하였었는데, 고민하다가 가지 않았었다. 왜 그랬는지는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하면 안될 것 같은 강한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 나는 java 프로그래밍을 전공하면서 안드로이드 계열의 애플리케이션과 모바일 웹 개발쪽에 관심을 두고 있었고 관련 공부를 많이 했었다. 지금 내 블로그에도 그때 공부하면서 기록했었던 관련 글들이 남아있다.
2010년 가을쯤이었나… 교수님의 추천으로 스타트업 위캔드 서울이라고 하는 대규모 대회에 참여했다가 최우수상을 타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고 세계관이 열렸다. 그래서 나는 취직보다 창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고, 그런 생각이 시장에서 통할지 체크해보기 위해 지역에서 열리는 다양한 공모전에 참가하였었는데 모든 공모전에서 수상을 하게 되면서 확신을 얻었다.
2010년 12월. 친한 친구 1명과 함께 월세 방을 얻어 창업 아닌 창업을 하였다. 당시 나에겐 괜찮은 사업 아이템이 여러개가 있었고, 누구라도 설득할만한 자료와 백데이터, 그리고 미래 지향적인 방향성을 갖추었지만 돈과 경험은 없었다. 처음 월세방을 얻고나서 무작정 들어갔는데, 취직 대신 창업을 하겠다는 이야기를 통해 부모님과 친척들을 설득해야했고, 안정적인 생활을 원하는 어르신들을 설득하는건 꽤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 월세방에 들어가서 찍은 이 한장의 사진은 오랜 추억이다. 책상을 살 돈이 없어서 박스를 깔아두고 방바닥에 앉아서 노트북을 해야했다. 저 맥북 하나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해도 과언은 아니다. 옆에 본체 위에 모니터가 올라간 PC는 함께 창업에 도전했던 내 친구의 것이다.
창업 자체는 쉬웠으나 그걸 시중에 통하게 만드는건 어려웠고 고객을 확보하기가 너무나도 힘들어서 정말 많은 실패를 겪었고 지역에 있는 자영자분들이 고객이 아닌 사람을 얼마나 차갑게 대하는지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그해 12월은 매우 추워서 내복까지 껴입고 하루종일 가게들을 돌아다니며 명함을 돌리고 이야기를 하고 설득해보았지만 시기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사업 아이템으로 설득하기 어려웠고 유의미한 고객을 얻지 못했다.
약 3개월 정도 지나서 창업은 실패로 돌아갔다. 고객이 없었으므로 수익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시내에서 집까지 걸어서 갔었는데, 그 길을 걸으면서 했던 생각과 주변 풍경이 아직도 생생하다. 친구와 함께 걸어오면서 창업은 실패로 돌아갔음을 인정하고 이제 각자 살 길을 모색해야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나는 학생 때 부터 블로그를 해왔었고 직장인보다는 프리랜서 또는 디지털노마드처럼 일하고 싶었었기 때문에 블로그를 통해 수익을 내고 돈을 벌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친구는 앱 개발을 했었고 실제 몇 개의 앱을 출시하기도 했었지만, 앱 자체로 돈을 벌진 못했었고 얼마 안가 개발자를 구하는 괜찮은 직장에 취직하여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책상이 없어서 박스 위에 올려진 노트북 하나가 10년전의 나를 그대로 드러낸다. 월세방에는 냉장고도, 세탁기도 없었고 이불과 노트북이 내가 가진 전부였다. 월세 내는 날이 다가오는게 두려울만큼 통장 잔고는 바닥이었고 나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한다는 일념으로 당시에 블로그를 열심히 했었다.
그때의 블로그가 지금의 남시언닷컴 블로그다. 2010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0년전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어떤 이야기를 할까 무척 궁금해지는 시간이다. 나는 과거를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때의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힘들고 어려웠지만 꿈으로 가득찼던 시기였다. 보일러가 고장난 방에서 덜덜 떨면서 밤 잠을 설치던 그때가 가끔은 그립다. 하지만 너무 힘들었어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10년은 꽤 긴 세월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순식간에 흘러간 것 같다. 나는 많이 바뀌었고... 환경도 많이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