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자의 기록 : 미래에서 과거로 부치는 편지] 장난감
- 칼럼 에세이
- 2013.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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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너무 춥다. 지구 온난화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날씨 또한 날이 갈수록 추워진다. 사람들은 이제 공기투과율이 매우 낮은 의복을 입어야만 야외 활동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다. 요즘은 속옷은 섬유질로, 겉옷은 불투명하고 얇지만 활동성이 좋은 특수제작유리로 된 옷을 입는다. 이 옷을 제작한 업체인 <36.5도씨>는 '자신의 몸을 사랑하세요. 36.5도를 지키세요. 이 유리는 활동성이 섬유질과 다를바 없으면서도 공기투과율이 거의 0%에 가깝습니다. 당신의 온도를 유지하세요. 사랑하는 가족을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도록...'라는 TV광고를 시도때도 없이 내보낸다.
나는 지금 장난감 가게 앞에 와 있다. 사랑하는 내 아들 하늘이에게 줄 장난감을 구매하기 위해서인데, 바로 내일이 크리스마스이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는 본연의 취지와는 살짝 어긋나게 '선물을 주고 받는'날로 거의 확정된 것처럼 보인다. 사랑은 선물로 표현하는게 아닌데도 말이다.
지금 이 가게 입구에는 <또 다른 나>인 남자들이 엄청난 행열을 이루며 줄을 서 있다. 마치 육군 1개 중대가 장거리 행군을 하고 있는 듯하다. 줄을 서 있는 사람 모두가 멍한 표정이다. 날씨가 추운 탓에 발만 동동구르며 빨리 이 줄이 없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옆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이는 없다. 모두의 머리속엔 '어떤 선물을 사야 아이들을 만족시키면서도 부인에게 잔소리 듣지 않을 수 있을까?'가 있을 것만 같다. 자칫 실수했다간 비싼 값을 주고 산 장난감도 잔소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차례가 왔다. 형형색색 화려한 장난감들이 눈을 핑 돌게한다. 사람처럼 움직이며 숫자를 가르쳐주는 곰돌이가 있는가 하면, 귀여운 캐릭터의 얼굴을 가진 초대형 인형도 있고, 꼬맹이들이 좋아할만한 방구만 뀌어대는 돼지가 있으며, 동화로 된 전자책을 대신 읽어주고 10D로 실제 체험까지 해볼 수 있는 텐트형 장난감도 있다.
하지만 가장 잘나가는 장난감은 뭐니뭐니해도 매 시간마다 아이들과 놀아주는 <로봇 친구 노라요>다. 이 장난감으로 말할 것 같으면 수십개의 센서가 기본탑재되어 있어서, 아이들의 체온, 맥박, 지문인식을 통한 본인 확인, GPS, 정신적 건강상태, 욕구불만 정보, 가지고 놀면 놀수록 더 정확해지는 각종 데이터베이스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최신형 로봇이자 주거형 전문의다. 거의 느낄 수 없는 전파를 내보내고 다시 그 전파를 되돌려 받아 해석하는 시스템을 통해 단지 아이가 이 로봇을 만지는 것 만으로도 대부분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고 푯말에 적혀있다. 또한 해당 정보는 실시간으로 <미리 계약된 개인 병원>에 전송되어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긴급상황을 미연에 방지해주기 까지 한단다. 물론 이 모든것을 이용하고자하면 비싼 값을 치뤄야하며, 월 별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동그란 화분처럼 생긴 <로봇 친구 노라요>는 전세계 모든 엄마들의 구매 1순위 상품이자 크리스마스 효과로 인해 재고품절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운좋게도 나는 구매할 수 있었다.
새삼스럽지만 이젠 장난감 하나에도 거의 우주같이 방대한 과학기술이 접목되어 있다. 만약 과거에 살고있는 당신이 지금 이 장난감을 본다면 과학적 충격으로 인해 기절해버릴지도 모르겠다. 구석기시대 사람에게 컴퓨터를 구경시켜준다고 생각해보라. 나는 당신이 몇 세기에 살고 있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하지만 지금처럼 과학기술이 발전된 사회는 지구 역사상 초유다. 어쨌거나 지금은 이런것들이 매우 익숙하고 전혀 어색하지 않다.
비싼 가격을 치르고 구매 한 장난감이지만 우리 아이의 안전과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 만약 우리 아이에게 감기 기운이 있다면 아이를 직접 낳은 엄마보다도 먼저 <로봇 친구 노라요>가 알아채고 병원으로 해당 정보를 전송해 줄 것이며, 3분 안에 구급차가 집으로 도착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시절 감염될지 그렇지 않을지 확실하지 않은 독감이 두려워 여러번의 예방 접종을 맞으면서 얼마나 울었던가. 그것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만약 당시의 나에게 예방접종 주사를 맞는 대신 초콜릿을 준다고 했다면 한 번쯤 고려해봤을 것이지만, 아무런 상의없이 지역의료원에 데려가 주사를 맞아야 했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분하기 그지없다.
과거에는 이러한 정보와 데이터없이 어떻게 아이를 건강하게 키웠는지 궁금하다. 아이가 울어야만 밥을 주고, 아이가 기침을 해야만 병원에 간다는 건 아이에게 너무 가혹한 현실이지 않은가?
- <미래에서 과거로 부치는 편지>에서 발췌
사진 - focusedcap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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