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시언의 맛있는 책 읽기](168) 월든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 책 도서/독서 기록
- 2014. 3. 19.
[서평]월든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문명화된 사회에서 조금은 접근하기 어려운 책일 수 있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 예전부터 워낙 유명한 책이기도 하고 인기를 끄는 그린(Green)고전 이기도 했지만 법정(法頂)스님과 그의 책 <무소유>가 인기를 끌면서 함께 인기를 끌게 된 책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저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문명과 동떨어진, 한마디로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단지 월든 호수만을 옆에 낀채로 2년 2개월동안 살아가는 이야기다. 자연에서 태어난 한 사람이 자연에서 살아가는 아주 단순한 이야기. 스스로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일반적인 땅을 밭으로 만들고, 그 작은 밭에서 자기가 먹을만큼의 곡식 일부를 취하고, 가끔씩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문명과는 완전히 멀어져서 제 3자의 시각으로 문명을 내려다보고 있는 그러한 이야기다. 중후반부에 들어가면 조금은 지루해지기도한다. 자연에서 오는 여러가지 것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생각에 대한 이야기에서 중복되는 부분이 어느정도 있는 탓이다. 그 조용하고 편안함에서 오는 통찰력이란!
이것은 의도적인 삶이다. 즉, 우리가 만약 무언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주체적인 삶이자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살아가는 의도적인 삶일 것이다. 사회적인 인정 여부와 관계없이 주체적인 삶이야말로 성공적인 삶이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소로우는 매우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사회적인 성공이 인생의 성공이라 할 수 있을까? 말 그대로 우리는 자신의 행복과 꿈을 이루기 위해 한 평생을 바쳐도 엄청나게 부족한 시간을 잠시 거쳐갈 뿐이다. 그래서 소로우는 떠났다.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에겐 얼만큼의 식량이 필요한지, 얼만큼의 땅이 필요한지, 어느정도의 휴식과 노동이 필요한지 스스로 체험해보기 위해서였다.
소로우의 삶은 상당히 재미있는 모양을 띄고있다. 실제로 <월든>이라는 책이 큰 히트를 쳤기 때문에 작가로서는 속세에서도 성공을 거둔 것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 이것이야말로 아이러니다. 사회적 성공을 멀리하고 자기 내면의 삶에서 성공을 찾기 시작했을 때, 삶 뿐만 아니라 사회적 성공까지 함께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연은 항상 그대로 자신만의 시간을 따라 흘러간다. 자연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월든 호수와 월든 숲 역시 누군가의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것이 아니라는 의미는 그 누구의 것도 될 수 있음을 뜻한다. 소로우는 그러한 것에 착안, 특정한 신청절차 없이 단지 호수 옆에 살기 시작했다. 이때의 나이 28세. 과거로쳐도 꽤나 젊은 나이인데, 인생에서 한창 성공가도를 향해 달려가야할 이 시기에 오히려 문명의 부조리를 꼬집기 위해 선택한 그의 자연적인 삶에서 우리는 존경심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는 때때로 문명에서 잠시 떨어져 잠깐의 시간동안 스스로와 삶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소로우 스스로가 이야기하길 "인생을 자기 의도대로 살면서 인생의 본질적인 측면만을 보기 위해서" 월든 숲으로 향한 것처럼, 우리도 월든 숲이 아닌 자기가 할 수 있는 한도내에서의 최선인 유무형의 '숲'을 향해 나아가야한다. 여기에는 당연히 고통과 불편함이 뒤따른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돈을 벌고 사회적 성공을 취하는 것에도 고통과 불편함이 따르지 않은가? 사람들은 반대로 생각해보는데 익숙하지 않다. 오로지 한 길, 누군가가 제시해 놓은 길 또는 누군가가 이미 걸어가서 성공적인 모습을 취하는 길이 마치 자기 인생의 최종적인 목표인냥 이야기하고 또 그렇게 살아간다. 정작 자신의 인생은 어디에 있는가? 아무것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면, 살아가는 의미가 무엇인가? 아름다운 숲을 보고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황금빛의 물결을 바라보면서도 눈 빛조차 칠흙같다면, 그 인생은 정말 잘 진행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걸까?
간소하고 간소하고 또 간소한 삶. 이것은 부유해지지 못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유한 삶보다 한차원 더 높은 단계의 수행이자 정신적 상승이다. 돈을 왕창 버는 것이 1차원적 인생이라면, 무언가를 소유하지 않고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건 2차원적 인생이라 할 수 있다. 무언가를 소유하는 이유가 행복해지기 위해서인데, 그 소유를 이루기위해 행복을 포기해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소유하지않고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행복을 포기하지 않고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소로우와 법정스님. 그리고 자발적 가난을 통해 문명과 동떨어진들 개의치않고 사회적인 시선과 성공을 스스로 거부할 용기있는 자만이 2차원적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왜 그렇게도 악착같이 살아야할까. 단 한번뿐인 인생, 평생을 말이다. 만약 이런 삶에 대해 회의감이 든다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은 간소한 삶에서 오는 철학적 의미와 삶의 본질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월든 - 전2권 (한글판 + 영문판)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전행선 옮김/더클래식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1817년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서 태어났다. 자신을 ‘신비주의자, 초절주의자, 자연철학자’로 묘사한 소로는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단순하고 금욕적인 삶에 대한 선호, 사회와 정부에 대한 개인의 저항 정신으로 잘 알려져 있다. 소로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형과 함께 사립학교를 열어 잠시 교사 생활을 한 뒤 목수, 석공, 조경, 토지측량, 강연에 이르기까지 시간제로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산책하고 독서하고 글 쓰는 데 할애하며 보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월든』(1854)은 친구이자 멘토인 랠프 월도 에머슨이 소유한 월든 호숫가 땅에 직접 지은 오두막집에서 1845년 7월부터 1847년 9월까지 홀로 생활하며 보낸 경험을 토대로 자연 속에서의 단순하고 자급자족적인 삶에 대한 내면 성찰을 담은 에세이이다. ‘자발적 고립’이라는 형식을 통해 근본적으로 모든 인간의 그릇된 사고방식과의 투쟁을 담은 『월든』은 출간 당시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으나, 20여 권이 넘는 다른 저서, 논문, 에세이 등과 함께 생태학과 환경사의 방법론을 제시한 저작으로서, 20세기 환경운동의 원천으로 재발견되었다.
부당한 시민 정부에 대한 합법적인 개인의 저항을 주장한 에세이 『시민 불복종』(1849)은 1846년 7월 멕시코 전쟁에 반대하여 인두세 납부를 거부하여 투옥을 당한 경험을 생생히 그리면서 노예 해방과 전쟁 반대의 신념을 밝힌 역작이다. 20세기 마하트마 간디의 인도 독립운동 및 마틴 루터 킹의 흑인 민권운동에 영감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1859년에는 노예제도 폐지 운동가 존 브라운을 위해 의회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노예제 폐지 운동에 헌신하며 활발한 강연과 저술 활동을 펼치다 1862년 콩코드에서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저서에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 보낸 일주일』(1849), 『소풍』(1863), 『메인 숲』(1864)이 있다.
전행선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2007년 초반까지 영상 번역가로 활동하며 240여 편의 영상물을 번역했다. 그 후 바라던 출판번역가의 길로 들어섰고, 2014년 현재는 바른번역 회원으로 활동하며 번역에 매진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무조건 행복할 것》 《지하에 부는 서늘한 바람》 《와이프 22》 《아스라이 스러지다》 《엄마와 함께한 마지막 북클럽》 외 다수가 있다.
책 밑줄긋기
나는 의도적인 삶을 살아보고자 숲으로 들어갔다. 필수적인 요건만 충족한 채 살아도 삶이 가르쳐 주는 진리를 배울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 또한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되이 살지 않았음을 깨닫고 싶었다. 삶이란 소중한 것이기에, 삶이 아닌 것은 살고 싶지 않았다.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체념한 채 살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깊이 있게 삶의 정수를 빨아들이고 싶었다. 삶이 아닌 것은 모두 파괴해 버리고 강인하게 스파르타 인처럼 살아가길 바랐다. 낫을 크게 휘둘러서 풀을 바싹 베어 내어 삶을 구석으로 몰아가 가장 기본적인 조건으로 압축해 버린 다음, 삶이 천박한 것으로 판명된다면, 그 천박함을 전부 속속들이 알아내어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또는 반대로 삶이 숭고한 것이라면 경험을 통해 그것을 알아내어 다음 번 여정에서 그 참모습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랐다.
우리는 사소한 일로 삶을 낭비한다. 정직한 사람은 열 손가락 넘게 헤아릴 만한 것이 거의 없다. 그래도 행여 손가락이 모자란다면 발가락을 쓰면 될 테고, 남는 것은 하나로 묶어 버리면 된다.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부디 바라건대, 할 일을 백 가지 천 가지로 늘리지 말고, 두세 개로 줄이자. 백만 대신에 여섯까지만 세고, 계산은 엄지손톱 위에 적어 두자.
대중의 평가는 우리 자신이 스스로 내린 평가에 비하면 나약한 폭군에 불과하다.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서 하는 생각, 그것이 그의 운명을 결정짓거나 방향을 지시한다.
왜 우리는 성공하려고 그처럼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처럼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鼓手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두라. 그 북소리의 박자가 어떻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 말이다.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