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시언의 맛있는 책 읽기(189) : 나는 자꾸만 딴짓 하고 싶다

반응형

남시언의 맛있는 책 읽기(189) : 나는 자꾸만 딴짓 하고 싶다


글을 못 읽어 학교를 그만두었던 소심한 소년이 물리학에 심취하면서 공부에 빠져들고, 아르메니아공화국, 파리, 일본의 다양한 문화를 섭렵하면서 딴짓의 고수가 되어버린 사연. 서강대 물리학과 이기진 교수의 에세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이 책은 자꾸만 딴 짓을 해도 충분히 괜찮다는 일종의 힐링 서적이자, 삶과 함께하는 여러가지 '사물'들에 대한 통찰력있는 경험담이며, 직업이나 전공과 전혀 무관한 인생에 대한 스토리텔링이다. 저자는 이것 저것 하고 싶은 일을 마음 내키는대로 다 하면서도 충분히 활기차고 재미있게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책 밑줄긋기

직업이 물리학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철저하게 과학적 사고로 무장된 사람일 거라고 나는 자주 오해를 받곤 한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내 일상은 오히려 지극히 게으르고 비과학적이다. 실험실 문을 닫고 나오는 순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무엇이든 대충 하길 좋아하고, 공상에 자주 빠지고, 가끔 술 한 잔에 망가지기도 하고, 가장 비과학적인 것들을 상상하며 노는 것을 좋아한다.

처음 책을 접했을 땐, 이른바 에세이형태의 자기계발서적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용은 거의 일기에 가까운, 말하자면 저자가 살면서 해왔던 여러가지 '딴짓'에 대한 기록이었다. 기념품, 펜치, 자전거, 바구니, 방망이 등 소소하지만 재미있는 사연을 가진 물건들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러고보니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들에는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던가! 스마트폰에도, 안경에도, 옷에도, 반지나 시계에도, 신발에도, 장롱 어딘가에 있는, 서랍 한켠에서 먼지가 쌓여가는 그 무엇에도 스토리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물건을 물건으로만 볼 때가 있고, 스토리를 떠오르게하는 타임머신으로 볼 때도 있다. 헤어진 애인과 찍었었던 사진, 누군가가 어렵게 선물한 기념품, 생일 선물로 받은 몇 가지들. 전부 이야기 천지였다. 단지 인식하지 못한채 바쁘게 살고있을 뿐이었다.

책 밑줄긋기

내가 오래된 물건을 단순한 물건 자체로 보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안에 서로 다른 시간 여행의 축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공간이야말로 곧 벼룩시장이 아닌가. 어떤 사람에게는 버려진 물건이나 쓰레기 정도로 치부되겠지만 그곳엔 분명 서로 다른 시간의 축이 만드는 타임캡슐 같은 공간이 있다. 물리학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기적이 눈앞에서 벌어진다.

책의 주제와 포인트는 상당히 흥미로웠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다소 지루해졌다. 누군가의 물건에 있는 스토리에 공감한다는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딴 짓하며 충분히 먹고살만큼의 인생을 누리는 저자가 부러웠다. 어쩌면 책을 읽기 전부터, '당신도 딴 짓해도 살아도 충분히 좋습니다.'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듣길 바랬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은, 그저 담담하게 딴 짓하며 사는 일상을 보여줄 뿐이었다.

책 밑줄긋기

한번 이런 열정에 사로잡히면 나는 앞뒤를 못 가리는 상태가 된다. 일종의 '몰입'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남들이 보기에 이런 상태의 나는 뭔가에 미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극히 정상적인 상태다. 혼자서 "그래, 한 건 했다!" 주문을 외우면서 행복해한다. 세상엔 이런 흥분과 열정에 빠질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생각해 보면 얼마나 고마운 열정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딴짓하며 사는 삶에 대한 세계관에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책 전체를 아우르는 물건에 대한 에피소드보다 짧게 남겨진 저자의 인생관에 대한 몇 개의 문장이 기억에 남았다.

책 밑줄긋기

따지고 보면 우리 삶은, 세상과 다른 차이를 발견하고 실천하는 여정인지도 모른다. 타인과 다른 옷을 입고, 타인의 생각을 살짝 비틀어 다른 생각을 하고, 타인이 했던 방법을 발판으로 삼아 다른 필드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내고, 타인이 접근했던 길을 피해 다른 쪽으로 가면서 새로운 길을 발견하고, 타인과 다른 방법으로 특별한 사랑에 접근하고, 결국 차이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살아가는 것.

우리는 직업에 얽매여 살아갈 필요가 전혀 없지 않은가? 이제 '딴 짓'계의 고수를 만나볼 기회다.


나는 자꾸만 딴짓 하고 싶다 - 6점
이기진 지음/웅진서가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반응형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