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 4] 암 덩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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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백4 - 암 덩어리

(자전적 디스토피아 소설 씨앗글)

매일 아침 이불 속에서 눈을 떴을 때, 나는 너무나도 아픈 하루를 시작한다. 밤사이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꿈 속에서 나는 악마의 지령을 받고 대화를 나눈다. 잠에서 깼을 때, 그 무엇도 기억할 수 없지만 아침이면 모든 이에게 파괴적인 일을 맡은 수행원이 된다.

아침마다 나는 상당히 아프다. 식도는 송곳에 찔린듯 따갑고 머리는 깨질듯 흔들거려 정신을 차리기가 어렵다. 팔은 하늘거리고 시야는 흐리멍텅하다. 내가 있는 장소를 인식하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정신을 회복하고 이부자리에서 일어나려하면 다리가 휘청거려 작두를 타듯 비틀거리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뜯고 생각을 해서 기억을 되살리려해도, 불태워버린 첫사랑의 사진처럼 결코 복구되지 않는다. 나는 먼 산을 바라본다. 내가 밟은 땅의 차가움을 고스란히 느낀다. 크게 한 숨 들이마신 다음 암흑의 기운을 삼켰다가 내뱉는다. 그러다가 전투 준비를 마친 군인이라도 된마냥 몽유병 환자처럼 출격한다.

나는 모든걸 잠식해버릴 듯한 웅장한 귀신의 음악을 들으면서 독백을 시작한다. 연필의 사각거리는 소리와 내면의 비명이 운율을 이룰 때 하나의 단어, 하나의 문장, 하나의 마침표가 완성된다. 결코 하지않으면 안되는 일을 하는 사람처럼 몇 시간을 그렇게 보낸다. 이때 내 영혼은 고스란히 내 것이지만 영혼의 주인이 따로 있으므로 내가 쓰는 글이란것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니라 다른 이의 것이된다. 결국 나는 보이지않는 유령의 대필가로서 독백을 하는 셈이다. 한숨을 쉬며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순간 내 눈 앞에 있는건 아름다운 사랑의 속삭임이 아니라 유령의 편지이자 암적인 글이요, 패잔병의 암호로서 나타난다. 그래서 이 독백은 내가 나 스스로에게 보내는 출사표임과 동시에 읽는 이의 정신을 갉아먹어 황금빛 영혼을 흡수할 전단지다.

나는 의도하진 않았지만 악마와 계약관계에 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고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나는 원하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그런 생각을 하면할수록 주변 사람들은 피해를 받고 우울해진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무언가를 성취하거나, 세상을 발전시키거나, 다른 이들에게 행복을 전도하거나, 문명을 이끌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서 뭔가를 훼손시키고 파괴하며, 상처를 주고 내게 운명처럼 전도된 죽음의 그림자를 다른 이에게 감염시키기 위해 잉태되었다. 전염병같은 인간으로서의 삶. 그것이 내 운명이다.

암 세포는 자신이 살기위해,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주변에 있는 모든걸 서서히 감염시킨다. 조금씩, 조금씩, 계속해서! 하나를 감염시키면 암 세포는 두 개가 되고 그 두 개는 또 다른 세포를 감염시키기 위해 활발하게 활동한다. 시간이 지나 온 몸의 세포가 암세포화되면 성채가 죽으면서 결과적으로 암세포 자신도 죽게된다. 그리곤 아무것도 남지않는다. 무(無).

'인생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행복의 정의는?'따위의 말을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저 무(無)의 상태로, 아무것도 남지않을 최종 목적지로 달리면서 동서남북 모든걸 때려부수는 미치광이일 뿐이니까. 사람들은 인생에 정답이 없다고 쉽게 이야기한다. 사람마다 다르고, 틀리며, 각자의 인생은 각자의 몫이라고 외쳐댄다. 보통의 사람들은 삶에 답이 없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기뻐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뻐하라! 인생에 답은 있다. 단 하나의 정답. 유일무이한 답. 삶의 파괴, 인생의 끝, 세계로부터의 탈주, 모든 것의 종말. 죽음.

인간 내면엔 모두 암 덩어리가 있다.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을법한 갓 태어난 신생아도 파괴의 신의 도움없인 폐로 숨을 쉴 수 없다. 사랑이 듬뿍담긴 태아조차 어미의 자궁을 찢고 양수를 터트리며 하나의 세계를 파괴했을 때, 비로소 빛을 본다. 사실상 우리 모두는 파괴로부터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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