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술먹기 위해 간 포장마차
- 일기
- 2013.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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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수 개월 전... 어느 날 촬영되었음)
때론 그런 날이 있습니다. 오늘처럼 비가 부슬부슬 오는 밤 늦은 시간이나... 무언가 생각할 것들이 많거나... 아니면 그냥 심심해서라던지 입이 심심해서 등등 갑자기 술 한잔 하고 싶어지는 날이.
대부분은 일찌감치 친구들이나 지인들과 약속을 잡는 등의 활동으로, 아니면 억지로라도 아는 사람을 끌어내어 술 한잔 하면 될테지만... 전혀 예정에도 없이 갑작스럽게 술 한잔 하고 싶어지는데 시계를 보니 이미 늦은 시간. 그리고 평일. 이러면 다들 직장인이고 다음날 출근을 해야하는 상황인지라 막상 연락하기가 껄끄러워 지는 것도 사실이죠.
몇 달 전 어느 날. 갑작스럽게 소주 한잔이 하고 싶어지더군요. 아무런 이유 없이.
평일이고 이미 자정을 향해 가고 있는 시간이라 누구에게 연락하기도 뭐 한 상황.
몇 년전부터 '혼자 포장마차 가보기!'가 개인적인 도전 과제였었는데 이번에 큰 마음먹고 용기내어 실천해보았습니다.
저희 집과 그렇게 멀지 않은 어느 포장마차에 진격의 방문!(예전엔 진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포장마차였는데, 최근에는 리모델링을 했는지 조금 현대식으로 바뀌었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부분. 옛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역사와 인테리어를 가진 포장마차가 그립습니다)
적당한 가격에 적당한 양을 가지고 먹기에도 편한 닭똥집과 소주 주문.
혼자 먹어보았습니다.
평일이라 그런지 손님들도 그렇게 많이는 없고 1~2 테이블 정도 왔다갔다 거리더군요. 나름 괜찮았습니다. 좀 청승맞다고 해야되나... 조금 그런 부분은 있더군요. 스스로 생각하는 그런 이유겠지만... 왠지 모르게 주변 시선의 따가움이 느껴지고... 마치 실성한 사람이거나 사랑했던 연인과 헤어진 직후여야만 될 것 같은 이상한 기분까지...(드라마의 나쁜 영향일지도...)
확실히 혼자 먹으니까 빨리 취합니다. 소주 2병 후딱 먹었네요. 시간은 미처 체크하지 못했는데 약 1시간~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집에서 혼자 술 먹을땐 TV를 본다든지 하면 되지만, 포장마차 등에서 먹을 땐 소주 마시고, 안주 먹고... 그 다음 할 게 없어요. 술 기운이 덜 올랐을 때엔 그저 스마트폰에 머리 박기 시전. 쓸데없이 메신저도 들어가보고 SNS도 들어가고... 블로그 댓글도 확인했다가 앱스토어도 들어가보고 근 1년 사이에 거의 실행하지 않던 에버노트 앱도 실행해서 예전에 무얼 적었었나 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소주 1병이 넘어가면서 슬슬 술기운이 오르니까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나 자신에게 '내가 왜 이러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종료해버렸습니다. 이어서는 그저 술 먹고 안주 먹고 멍~~~하니 있거나 이런저런 생각의 나래를 펼치기도 했었죠. 진짜 드라마나 영화에서 혼자 소주 먹던 그런 장면들을 상상하면서 말이죠.
그러다가 갑자기 혼자 술 먹으로 포장마차까지 와 놓고서는 그걸 또 뭐 자랑이라고 나중에 블로그에 올리겠다고 테이블을 사진 찍고 있자니 허허허 웃음이 나더군요. 술도 취했겠다 혼자 허허허 웃어봤습니다. 시간은 많지, 얘기할 사람은 없지, 할 얘기는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애매하더군요. 느낌이 참 묘했습니다.
문득 '늦은 저녁에 소주 한잔 같이 할 사람이 없는걸 보면 나는 참 외롭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오늘 같은 평일에 이렇게 늦은 시간에 소주 2병 먹는 내가 더 이상한 듯'이라는 이상한 생각도 들고.... 차라리 오늘 같은 날은 조금 참았다가 내일 지인들과 먹으면 될 걸 왜 이 궁상을 떨고있나 생각도 들다가....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등등... 이런저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주 2병 먹고 맥주 1병 더 먹을까 생각했는데, 취기가 좀 오르기도 했고 시간도 꽤 늦어서 집으로 복귀 결정! 계산 후 혼자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가다보니, 우리내 아버님들이 모두 이렇게 힘들게 사셨던 건 아닐까 싶더군요. 옛말에 아버지가 이해되기 시작하면 나이가 든 것이라 했는데, 그 말이 참말인가 봅니다.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고, 지금보다 쪼~~~금 더 용기가 생긴다면 다시 한번 해보고 싶어지기도 하네요.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소주 5~6병을 혼자 꿀꺽할 용기는 아직 없지만.(꽐라되면 챙겨줄 사람이 없으니 ^^;)
근데 요즘에도 가끔씩 그런 날이 있습니다.
자정 가까운 시간. 소주 한잔 기울이며 자신의 꿈과 포부, 걱정거리들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할 시간이 필요한 날이요. 일반적으로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하는 얘기에는 이런 것들이 불포함되어 있기 때문이겠지요 아마.
어쩌면 저는 소주 한잔이 그리운 것이 아니라, 평소에는 이야기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이야기할 상대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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