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 나는 행복해서는 안된다.
- 칼럼 에세이
- 2014. 12. 18.
나는 행복해서는 안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인생 최대의 목표를 행복으로 설정하고 신기루같은 것에 끌려 미친듯이 살아간다. 그들과 다르게 나는 행복해서는
안된다. 행복하면 안된다. 절대 행복과 친해질 수 없다. 웃고 살 때마다 항상 문제가 터졌고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줬다. 마치
악마의 손에 인생이 맡겨진 노예처럼 사소한 즐거움도 허락되지 않는다. 영원히, 평생을 쓸쓸하게, 12월에 흩날리는 눈보라같은
시간을 타고난 운명이다. 악랄한 신이 내 삶을 지켜보다가 조금이라도 암울함과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낌새가 보이면 그대로 맥을
끊는다. 미소를 지을때마다 무릎이 꺾이고 뭔가에 뒷통수를 맞은 듯 의도치않은 일이 발생했다. 그것은 심각하게 도지는 신경쇠약이나
우울함에 기인한 스스로에 대한 경고 혹은 피해나 고통이 주위 사람들에게 전이되는 전염병같은 사건들의 형태로 나타난다.
나는 남들과 교류할 수도, 그들과 행복에 관해 동질감을 느낄 수도 없다. 아니, 찰나라도 그렇게해서는 안된다.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하고 우울하게 살아야만한다. 아니 그렇게라도 살아야한다. 자기 자신에게 쓸모없음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함을, 밝은 미래가 아닌 어두운 미래를 항상 상기시키고, 수도사가 매일 아침 명상으로 심신을 단련할 때, 나는 매일 아침 진흙같은 고통의 늪에 스스로를 밀어넣어야한다.
내가 과연 누군가의 인생을 책임지거나 그들과 함께 어울릴 자격이 있는 인간인가? 누군가에게 내 계획에 참여해달라고 할 때마다 문제는 발생했고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들에서 오는 충격을 감내해야만했다. 지인들과 술을 먹을 때도, 여행에서도, 아주 사소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런 일들은 항상 일어났고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남들과 무언가를 도모할 자격도 없고 그렇게해서도 안되는, 절대 안되는, 말하자면 인생이라는 뼈에 사무치는 차가운 소용돌이에서 아주 조금의 궤도만 이탈해도 다시 복귀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사람이다. 나는 나와 비슷한 이런 사람들을 몇 명 알고있다. <데미안>의 싱클레어가 그랬고, <1984>의 윈스턴이 그랬으며, <인간실격>의 요조가 그렇다.
행복이 최대의 목표가 아닌 인생은 도대체 왜 살아야하는가? 이대로 살 수도,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는 기이한 상황에서 온 몸이 묶인 포로마냥 나는 한치도 움직일 수 없다. 아주 사소하게 있을법한 내 재능과 능력은 어디에도 쓸모가 없다. 나는 먼지처럼 흔하고, 가볍고, 부차적이라는 말에도 참여하기 어려운 시한부 인생을 타고났으므로 자살 외에는 모든게 틀린 객관식 단답형 시간 위를 달린다.
누군가 나에게 관심을 보이며 내 인생에 조금이라도 접근하게되면 그는 화상을 입는다. 나는 그들에게 경고를 하고 주의를 주지만, 그 주의를 주는 순간조차 허락되지 않기 때문에 결국엔 생채기가 난다. 어폐가 있는 인생이다. 외부에서 오는 행복이 아닌 나 자신 스스로조차 행복에서 멀어지는 길을 택하며 살았다. 작은 행복조차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찰나라도 내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기분이 들기만하면 나는 그것을 그만둬야한다. 조금이라도 남들과 비슷한 미래가, 1%라도 투명한 미래가, 앞으로의 대한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보인다면 나는 그것을 해서는 안된다.
내가 이래도될까? 지금의 내가 과연 앞으로의 삶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나는 지금 악마의 눈에서 평생을 헤엄만 치다가 비명을 지르면서 끝이 나는 정해진 시나리오 위에 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