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자의 기록] 침묵의 대답
- 칼럼 에세이
- 2014.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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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상태. 즉, 침묵은 대답이 될 수 있는가? 만약 침묵이 대답이 될 수 없다면 침묵은 왜 필요한가?
# 상황
A와 B가 마주앉아 있다.
A가 B에게 어떤 질문이나 이야기 혹은 그 무엇이든 말을 한다. 일반적인 상황에선 B가 그에 걸맞는 맞장구라든지 적절한 말을 통해 대답을 할 것이다. 하지만 B가 침묵한다면? B는 대답을 한 것인가? 하지 않은 것인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대답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자.
1. 대답은 대화에 꼭 필요하다.
2. 하지만 대답은 꼭 육성을 통한 언어로만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춤 같은 몸 짓이나 글같은 텍스트로도 대답이 가능하다. 편지를 쓸 수도 있고 채팅으로 대답할 수도 있다. 만약 육성을 통한 언어전달만이 대답에 한정된다면 우리는 언어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든지 멀리 떨어져있는 그 누군가와는 영원히 대화할 수 없어야 할텐데, 그렇지 않다.
3. 눈에 보여야 하는 것도 아니다. 꼭 글로만 대답을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언어를 사용할 수 있고, 소리를 지른다든지 환호성을 통해 대답을 대신할 수도 있다.
4. 이러한 대답이 상호 반복될 때, 그것을 대화라고 부른다. 따라서 편지로도, 채팅으로도, 언어로도, 춤으로도 얼마든지 상대방과 대화가 가능하다.
5.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대답이란건 상대방으로 하여금 <무언가를 느끼게>하면 성립한다.
대답은 상대방이 무언가를 느끼게 되면 일단은 완료된다. 따라서 침묵을 통해 무언가를 느끼게 할 수 있다면 침묵은 대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침묵을 통한 대답은 자신이 생각한바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상대가 제멋대로 판단해버리는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자신이 의도한바를 느끼게할 수만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확률은 낮다. 결국 이러한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 언어나 글을 쓰는 것이다. 하지만 언어나 글 역시 잠재적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사람은 얼마든지 <거짓말>을 통해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의도적으로 느끼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할 수 있다. 상대방은 그것을 들으면 '사랑받는'것으로 느낄터다. 잘못된 대화. 잘못된 대답이 만든 현상이다.
침묵은 그 자체만으로 자신과 상대방의 생각을 자극한다. A가 B에게 질문을 했는데, B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침묵 중이라면, 세계 최고의 속사포 랩퍼가 전달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생각들을 A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 이를테면 A는 다음과 같은 생각들을 할 것이다.
'저 사람이 왜 대답을 하지 않는걸까?'
'내가 이상한 말을 한 건 아닐까?'
'무슨 생각을 하길래 대답을 하지 않는걸까?'
'내 말에 기분이 상했다면 어쩌지. 난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말이야.'
'어떤 대답을 할까? OK? NO? 아니면 또 다른 아이디어? 그렇다면 또 다른 아이디어는 뭘까?'
'내가 질문한 것에 나 스스로 한번 대답해봐야겠다. 그래, 이런 일들을 예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말을 무시하는건가?'
'그게 아니라면 왜 침묵하는 것이지? 나는 대답을 듣고 싶어.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때로 침묵은 대답이 될 수 있다. 그 어떠한 말보다 더 진실하게 마음을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확인이 안되기 때문에 의심많은 인간심리가 그것을 참지 못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침묵은 대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성만 있다면 침묵은 그 어떠한 단어나 몸 짓보다 더 진심을 전달할 수도 있다. 적어도 거짓부렁을 침묵을 통해 전달할 수는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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