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년의 무명생활 1지옥 같았다.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글 따위를 쓰는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내가 썼던 글이란건 내 안에서만 살아 숨쉬는 심장이었다. 인정해주는 사람 없는 지리멸렬한 시간들을 보냈다. 점점 더 사회로부터 격리된 구렁텅이로 빠져들어가는 듯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었거나 정신병자, 사회부적응자, Mr.거짓말쟁이였다. 나는 작가의 꿈을 꿨지만 작가가 아니었고 내가 쓴 글로는 한 푼도 벌 수 없었다. 내 일과의 마지막은 불꺼진 창가에 서서 초라한 눈으로 달을 바라보며 신세한탄을 하는 것이었다. 수 년의 시간을 그렇게 보냈다. 세상은 왜 나를 알아주지 않는가? 왜 나는 인기와 명성을 얻지 못하는가? 기회란건 어쩜 이렇게 나를 피해가는가? 내가 원했던건 엄청..
제목없는 청춘의 노래 학생들은 학교 공부만 열심히 잘하면 모든게 잘 풀릴 것이라고 믿거나 믿고 싶은 듯하다. 하지만 산학연계의 연결고리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문화에서 학교 이론은 말 그대로 이론일 뿐 실무와는 따로 논다. 학교에서 사칙연산을 배운다면 실제 필드에서는 벌써 계산기를 쓰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신기술이 나와있는 요즘같은 세상에 기본 구조가 되는 이론은 중요하지만 한편으론 중요하지 않기도하다. 학력에 너무 목 매일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시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진 시대다.한국에서 날고 긴다는 사람도 비행기를 타고 몇 시간 날아 외국에 도착하면 그냥 한 명의 관광객일 뿐이다. 대학졸업장이나 학위, 자기 집 주차장에 있는 고급 외제차로 외국에서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다. 대한민국의 잘나가는 대..
2,500번째 블로그 글을 쓰며... 참 징하게도 키보드를 두드렸다. 어느덧 블로그 포스트 카운터가 2,500개째라니. 2,500은 의미있는 숫자다. 뭔가 5,000이라는 대단한 수치에 한걸음 다가간 느낌이 들고 한편으론 중심이 잘 잡힌 모양새라서 굳건해 보이기도한다. 2009년, 처음 블로그를 시작할 때만해도 이렇게까지 블로그를 오래할 줄은 나를 포함한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햇수로 7년째 하고있으니 지금까지 내가 했던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오래한 것이 되었다.블로그 세계에서 나는 아무것도 걸리는것 없이 진정한 자유로움을 느낀다. 자유롭기에 마음의 부자가 되고 시간의 부자로 변신할 수 있다. 제목없는 노래라도 부를 수만 있다면 그것은 가락이고, 보는이 없는 블로그라도 글을 쓸 수만 있다면 역사가..
서른즈음에 이 글은 어쩌면 소회다. 일기일수도 있고.서른. 늙은이의 노련미와 젊은이의 패기가 상충하는 어디쯤에 위치한 나이. 어쩌면 애매하고 어쩌면 가장 중립적인 시점. 예로부터 서른은 이립(而立)이라하여 인생을 세울때라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어디인가? 나는 여전히 고등학생, 그것도 아니라면 대학생의 연장선에 있는 듯하다. 단 한가지의 인생 진리에도 도달하지 못했고, 세우기는 커녕 누워있는 인생도 찾을 수 없을만큼 막막한 기분이다. 뜬구름 잡는 심정으로 근 30년을 살아왔지만 여전히 구름 속에 있는 것만 같다.나는 동심을 잃은 것 같다. 호기심이 없어진 것 같다. 너무 빠르게 철이 들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꼬맹이 시절엔 서른살 정도되면 당연하다시피 넥타이에 정장을 입고 출근할 줄 알았다. 하지만 현..
나는 왜 책을 읽는가? 군대를 전역한 후 사회에 적응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친구도 없고, 할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기에 삶이 무료하게 느껴졌다. 전역을 앞 둔 말년병장 시절에는 사회에 나가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는데 막상 나와보니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난 그저 복학생 아저씨에 누가봐도 갓 전역한 까까머리를 가진 사회부적응자였고, 입에서 나오는 단어에는 군대 냄새가 짙게 배어있었다. 조급함도 한 몫했겠지만 뭐라도 해야겠다는 압박감에 자격증이나 따볼까 싶어 가까운 도서관에 가보았다. 머리털나고 몇 번 가지 않은 도서관이었기에 회원증조차 없었다. 회원증부터 만들었다. 나는 10분만에 도서관 회원증을 가진 프로페셔널한 남자로 변신했다!! 도서관 회원증을 손에 쥐고 알 수..
대학생 시절. 수업시간에 하라는 학과공부는 안하고 컴퓨터로 블로그나 하고있으면 어김없이 뒷통수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놀란 눈으로 뒤를 돌아보면 교수님이 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그땐 블로그란게 뭔지도 잘 몰랐다. 아니, 어쩌면 나같은 꼴통 학생이 블로그를 포함한 무언가를 꾸준히한다거나 그런 것 '따위'로 어떤 수익모델을 찾고, 어떻게 인생에 도움이 되도록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일 수도 있다. 심지어 나 조차도 장래에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계획이 없었으니 말 다했다. 교수님은 이력서랑 자기소개서나 쓰라고 압박했다. 난 졸업반이었다. 큰 마음먹고 도전했던 창업에 실패 후 몇 년이 지나 첫번째 저서 이 출간되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가난한 백수였다. 스스로 직장에 들어갈 마..
당신은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29살에 책 3권의 저자, 정부기관 일반직 4급 경력, 파워블로거 2회, 수차례의 대외 강연, 스타트업 위켄드 서울 2nd 최우수상 등... 굳이 나를 소개하자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사람들은 나의 겉모습만을 보고서 '정말 대단하다!'고 엄지를 치켜올린다. 결과만이 중시되는 세상이기에 그동안 어떤 피땀어린 노력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다. 그도 그럴것이 내 블로그랑 페이스북만 보면 거의 '백수 중 가장 잘먹고 잘노는 최후의 1인'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린다. 하지만 밑바닥에서부터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오는데는 정말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나는 한 때 너무나도 가난하여 고추장과 밥, 김치만으로 수개월을 버텨야만했다. 실외보다 더 추운 방 안에서 양 손에 두꺼운 장갑을..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어찌저찌 하다보니 20대때 3권의 단독저서를 낸 작가가 되었다. 물론 3권 모두 베스트셀러가 되거나 스테디 반열에 올라 유명 작가로 거듭난건 아니다. 잘 팔렸다면 더할나위 없었겠지만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고 책을 낼 의향이 있으므로 크게 개의치는 않는다. 내 생각을 내가 직접 표현하여 한 권 분량으로 만들어냈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신기할 뿐이다. 이따금 나는 마치 상상 속, 그것도 아니라면 너무나도 긴 꿈 속에서 살아가는 것 같다. '나 같은 사람이 책을?'이라는 생각 때문이다.처음에는 그저 책을 내는데 의의를 두고 썼다. 막연하게 '나도 책 한권...'같은 마음이었다. 2012년에 첫번째 저서 을 출간하고 작가가 되었다. 아니 '되어버렸'다. 이후 를 출간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