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는 '긴장'하고 프로는 '흥분'한다 수 십 혹은 수 백명의 청중이 저마다의 눈으로 한 곳을 응시한다. 그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다. 다리를 꼬는 이, 하품을 하는 사람, 팔짱을 끼는 축이 있는가하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축도 있다. 주최측의 소개가 이어지고 나는 천천히, 하지만 느리지않게 무대로 올라간다. 옷차림은 내가 입을 수 있는 가장 신사적인 모습이다. 사람들은 등장하는 나를 보면서 강사가 젊다는 사실에 매번, 그리고 살짝 놀란다. 모름지기 연단에 오르는 강사라고하면 백발이 성한 노인이거나 어느정도 연배가 있을법하다는 통념이 있는 탓이다. 나는 자신감에 찬 미소를 띄며 입장한다. 화장실 거울 앞에서 재차 확인했다. 넥타이의 적당한 조임은 알 수 없는 긴장감을 준다. 단추 흐트러진 곳 없고..
버스에서 치킨 냄새를 맡다 술 약속이 있어서 차를 놔두고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가고 있었다. 차로가면 금방이지만 주차문제를 해결해야하고, 대리운전을 해야하는 등 신경쓰이고 복잡한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주차공간은 항상 부족하고 차와 사람은 언제나 많다. 이럴 때 버스나 택시를 타보면 아주 편하다는걸 알게되는데,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동안 조급함을 없애는게 쉽지가 않다. 우리는 너무 급하고, 너무 빠르게 살고있다.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버스는 에어컨을 켜지않고 창문을 열어두고 있었다. 빈 좌석이 많아 자리를 잡고 앉아 음악을 들으며 목적지로 향하는데 어디서 치킨 냄새가 났다. 분명 치킨이다. 절대 다른 음식일리 없는 독특한 향 때문에 나는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디서 나는 냄새지?3칸 정도 앞 좌석에..
수 년의 무명생활 3 - 노력으로 안되는 것도 있다 백수라면 백수고 프리랜서라면 프리랜서, 이도저도 아니라거나 아직 명칭이 없는 직업군을 가진 이런 생활에선 일감이 몰릴때 확 몰리고 없을땐 아예 없기 마련이다. 욕심을 좀 부려 모든 일거리에 대해 승낙하고 싶었지만 그러지않기로 했다.회사를 그만두고 블로그를 대대적으로 업데이트하면서 블로그 제목에 이름을 넣은 것이 아주 좋은 효과를 나타냈다. 개인브랜드화에 이보다 더 좋은 상품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어린시절엔 특이한 이름 때문에 곤혹을 치르곤 했었는데(병원 같은데서 차트를 적을 때 이름을 말하면, 항상 두 세번은 반복해서 말해야만 제대로 적혔다) 지금은 독특한 이름 덕분에 사람들에게 쉽게 각인되고 차별화할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검색 포털에 '남시언'..
"여기서 도대체 무얼하고 있는거요?" "아무것도"그렇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일을 하고 있었다. 아니,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표현하는게 맞겠다. 글을 쓰는 일이든, 그림을 그리는 일이든, 음악을 만들든, 선거에 나가든, 술잔이 식기전에 적장의 목을 베는 일이나 천하통일 역시 관계자가 아닌 이상 아무 일도 아니다. 그 일이란게 얼마나 중요한지의 여부를 떠나 관련이 없으면 끝인거다. 아무것도. BK LOVE 노랫말처럼 "내 친구는 아직 그녈 사랑해요"라고 하더라도 내 일이 아니라면 사랑조차 아무것도 아닌 일이된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좋아하고 만족한다면 된거다. 인간의 욕심이란건 끝이 없는 탓에 만족하려하면 할수록 보다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농가 취재를 다니면서 항상 작물을 키..
수 년의 무명생활 2수 년은 참 긴 시간이었다. 나는 극심한 외로움을 겪으면서 공포영화도 못보는 주제에 귀신이라도 만나고 싶어질만큼 쓸쓸했다. 서른줄 친구들의 대화 주제는 항상 월급, 직장생활, 결혼, 연애, 정치, 자동차, 부동산, 적금 따위였다. 그런 것들은 나와 전혀 관계가 없었고, 내 귀에는 배부른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고개를 몇 번 끄덕이는 것 밖에 없었다. 내 무명생활은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대지였다. 이 대지가 현실에 존재하는 내 땅이었다면 난 재벌이었겠지. 대한민국에서 20대 끝물 남자가 적금하나 없다는 사실을 떠들고 다니면 인간쓰레기를 증명하는 짓밖에 안되는 까닭에 돈과 관련된 얘기가 나올때면 침묵으로 일관했다. 꿈, 세계관, 창조적인 지식근..
수 년의 무명생활 1지옥 같았다.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글 따위를 쓰는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내가 썼던 글이란건 내 안에서만 살아 숨쉬는 심장이었다. 인정해주는 사람 없는 지리멸렬한 시간들을 보냈다. 점점 더 사회로부터 격리된 구렁텅이로 빠져들어가는 듯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었거나 정신병자, 사회부적응자, Mr.거짓말쟁이였다. 나는 작가의 꿈을 꿨지만 작가가 아니었고 내가 쓴 글로는 한 푼도 벌 수 없었다. 내 일과의 마지막은 불꺼진 창가에 서서 초라한 눈으로 달을 바라보며 신세한탄을 하는 것이었다. 수 년의 시간을 그렇게 보냈다. 세상은 왜 나를 알아주지 않는가? 왜 나는 인기와 명성을 얻지 못하는가? 기회란건 어쩜 이렇게 나를 피해가는가? 내가 원했던건 엄청..
제목없는 청춘의 노래 학생들은 학교 공부만 열심히 잘하면 모든게 잘 풀릴 것이라고 믿거나 믿고 싶은 듯하다. 하지만 산학연계의 연결고리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문화에서 학교 이론은 말 그대로 이론일 뿐 실무와는 따로 논다. 학교에서 사칙연산을 배운다면 실제 필드에서는 벌써 계산기를 쓰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신기술이 나와있는 요즘같은 세상에 기본 구조가 되는 이론은 중요하지만 한편으론 중요하지 않기도하다. 학력에 너무 목 매일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시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진 시대다.한국에서 날고 긴다는 사람도 비행기를 타고 몇 시간 날아 외국에 도착하면 그냥 한 명의 관광객일 뿐이다. 대학졸업장이나 학위, 자기 집 주차장에 있는 고급 외제차로 외국에서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다. 대한민국의 잘나가는 대..
2,500번째 블로그 글을 쓰며... 참 징하게도 키보드를 두드렸다. 어느덧 블로그 포스트 카운터가 2,500개째라니. 2,500은 의미있는 숫자다. 뭔가 5,000이라는 대단한 수치에 한걸음 다가간 느낌이 들고 한편으론 중심이 잘 잡힌 모양새라서 굳건해 보이기도한다. 2009년, 처음 블로그를 시작할 때만해도 이렇게까지 블로그를 오래할 줄은 나를 포함한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햇수로 7년째 하고있으니 지금까지 내가 했던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오래한 것이 되었다.블로그 세계에서 나는 아무것도 걸리는것 없이 진정한 자유로움을 느낀다. 자유롭기에 마음의 부자가 되고 시간의 부자로 변신할 수 있다. 제목없는 노래라도 부를 수만 있다면 그것은 가락이고, 보는이 없는 블로그라도 글을 쓸 수만 있다면 역사가..
서른즈음에 이 글은 어쩌면 소회다. 일기일수도 있고.서른. 늙은이의 노련미와 젊은이의 패기가 상충하는 어디쯤에 위치한 나이. 어쩌면 애매하고 어쩌면 가장 중립적인 시점. 예로부터 서른은 이립(而立)이라하여 인생을 세울때라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어디인가? 나는 여전히 고등학생, 그것도 아니라면 대학생의 연장선에 있는 듯하다. 단 한가지의 인생 진리에도 도달하지 못했고, 세우기는 커녕 누워있는 인생도 찾을 수 없을만큼 막막한 기분이다. 뜬구름 잡는 심정으로 근 30년을 살아왔지만 여전히 구름 속에 있는 것만 같다.나는 동심을 잃은 것 같다. 호기심이 없어진 것 같다. 너무 빠르게 철이 들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꼬맹이 시절엔 서른살 정도되면 당연하다시피 넥타이에 정장을 입고 출근할 줄 알았다. 하지만 현..
나는 왜 책을 읽는가? 군대를 전역한 후 사회에 적응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친구도 없고, 할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기에 삶이 무료하게 느껴졌다. 전역을 앞 둔 말년병장 시절에는 사회에 나가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는데 막상 나와보니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난 그저 복학생 아저씨에 누가봐도 갓 전역한 까까머리를 가진 사회부적응자였고, 입에서 나오는 단어에는 군대 냄새가 짙게 배어있었다. 조급함도 한 몫했겠지만 뭐라도 해야겠다는 압박감에 자격증이나 따볼까 싶어 가까운 도서관에 가보았다. 머리털나고 몇 번 가지 않은 도서관이었기에 회원증조차 없었다. 회원증부터 만들었다. 나는 10분만에 도서관 회원증을 가진 프로페셔널한 남자로 변신했다!! 도서관 회원증을 손에 쥐고 알 수..